본문 바로가기

커뮤니티 로그

[제임스] 그 거짓말 같은 평온함

  사감 교수는 항상 맛있는 줄 모르겠는 사탕을 한 바구니씩 사무실 한가운데 두곤 했는데, 그날은 사정이 조금 나았다. 마주 앉은 교수가 권한 쿠키는 덜 달았고, 차는 향이 깔끔했던 덕이다. O.W.L을 치던 해 이래 매년 한 번은 하던 진로 상담이다. 나는 매해 빠지지 않고 진로 상담마다 언성을 높일 일이 있었는데, 까닭에 사감 교수가 사랑하는 모호한 맛의 사탕엔 질렸고 벽마다 걸어둔 장식이며 버젓이 전시한 퀴디치 우승컵의 각도마저도 기억에 박혀 빠질 줄을 몰랐다. 울긋불긋한 벽지로 둘러싸인 공간 한가운데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교수는 나를 호명했다. “윈프리드.” 7년을 다녀서 내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도, 몇 해 전 퀴디치 우승컵을 안고 기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도 없이 교육자답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는.

 

  “그래도 N.E.W.T 과정은 잘 듣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쪽지 시험에서도 성적이 괜찮다고 들었다. 특히 마법약 교수님께서 네 성적 향상은 가히 기적적이라 할 만 하다고 하더구나.”

  “가르쳐주는 애들이 잘 가르쳐주더라고요. 에로스도 그렇고, 얼마 전엔 슬리데린의 마리안느한테도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아, 걔한테 시험 족보를 받았다는 뜻은 아니고요, 물론.”

 

  이제 와서 사감 교수 앞에서 반듯하게 앉는다고 회복될 이미지는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목덜미까지 오던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앉아 편한 방식으로 컵을 잡고 차를 마시면, 교수는 맥없이 웃었다.

 

  “네가 퀴디치 할 때도 두루 넉살 좋게 굴었으면 해적이란 별명은 안 붙었을 텐데 말이다.”

  “저 원래 그리 사근사근한 놈 아닌 거 제일 잘 아시잖아요. 퀴디치 그만두란다고 사감 교수 멱살 잡는 미친놈이 둘씩이나 있었으면 교수님 머리가 그거보다 더 빠지셨을걸요.”

  “그래도 요즘은 제법 즐겁게 웃고 다니지 않니?”

  “우울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저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애들이 많길래. 웃기라고 반장 주신 거 아닙니까? 전 그렇다고 이해했는데요.”

  “뭐, 우리 기숙사 반장이 대대로 좀 유쾌한 애들이긴 했지.” 사감 교수는 나의 삐딱한 자세를 교정할 생각까진 없어 보였다.   “그보단 네가 아이들을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 앉히면 노력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넌 퀴디치 하나 빼고는 유독 포기가 빨랐으니까, 스승으로서 좀 안타까워야 말이야. 하자면 하는 애가…. 뭐, 그 얘긴 지금 우리가 나눌 주제는 아닌 것 같구나.”

 

  교수는 자세를 조금 더 바로 해서 앉았고, 사무 책상 서랍에서 양피지 몇 장을 꺼내 넘겨보았다. “쿠키 먹어도 좋단다.” 말하기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못 먹는 거 넣으신 건 아니시죠? 얼마 전에 마법약 교수님께 당했거든요.” 양피지가 넘어가는 소리 사이로 사감 교수의 탁한 웃음소리가 섞였다. “하여간 의심도 많지.” 베어 무니 평범한 생강 쿠키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네 보호자인 설리번 씨께 답변을 받았단다. 그 노인께서는 네가 퀴디치를 계속하기를 희망하시는 것 같더구나. 원한다면 졸업하고 재활에만 임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럴 줄 알았어요.” 나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던 오른손을 일부러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점에선 양보할 생각 없습니다. 하물며 은인의 의견이라도요.”

  “퀴디치를 포기한 건 아닌 것 같던데? 지금도 가끔 날아다니지?”

  “돈 모아서 언젠가 파이어볼트를 사는 게 꿈이긴 하죠.”

  “드디어 미련을 버렸니?”

  “아뇨, 재활을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고요.”

 

  어거스터 설리번은 말했다. ‘이건 너와 나의 잇속이 맞물려 성사된 거래’라고. 그렇지만, 그 말에 속아줄 만큼 나는 더는 절박하지 않았다. 선장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무심하고 관심 없는 서늘한 얼굴을 하고선, 그저 어린 마법사의 안위를 살피고 계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날부로 피코드 호마저 뛰쳐나왔을 테니까.

 

  “재활하는 동안 피코드 호에서 신세는 갚고 싶다는 말이에요. 설리번과 니키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더군다나요. 동등해지고 싶다고 느끼니까.”

  “고집하고는. 가끔은 친절에 기대도 될 텐데. 그건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게 아니란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몇 년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잘해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리고선, 덧붙이는 실없는 말. “제 오른팔이 예전만큼 움직이는 날이 올 거란 보장도 없고요. 기약 없이 피코드 호에 업혀 가고 싶진 않은 거죠.”

 

  사감 교수는 편지와 나를 느릿하게 번갈아 바라보았다. 차는 식고 쿠키는 줄었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이어, 사감 교수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널 미워해서 퀴디치를 관두라고 한 건 아니었단다. 선생님 마음 알지? 나중에라도 널 퀴디치 월드컵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당분간은 다이애건 앨리에서 볼 일이 더 많겠다마는.”

  “저도 교수님 미워해서 멱살 잡았던 거 아닌데요. 아시죠?” 그렇게 맞받아치고 나면 어쩐지 웃음이 번졌다.

 

  “졸업하기 전에 가게 주소나 적어주고 가렴. 네가 사고나 안 쳤는지 가끔 보러 가야겠다.”

  “아, 오시면 환영하죠. 교수님 보시기에 재밌는 거 있으면 따로 빼둘 테니까요.”

  “하여간,” 그러고선 결국 교수도 맥빠지는 웃음을 짓는다. “어디에서든 너라면 잘 해낼 것 같아 한시름 덜었다. 미리 졸업 축하한다, 윈프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