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고요해졌다. 이 거짓말 같은 평온을 무엇이라 정의 내리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제임스 윈프리드는 생각했다. 무언가 딱딱한 것이 뚝 분질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묵직한 침묵 이전에 그를 시달리게 했던 소란이, 바로 몇 분 전까지 그를 온통 뒤흔들었던 격정이 먼 과거로 후퇴한 것 같았다. 마치 바닷물이 쓸려나간 것처럼. 혹은 드디어 기나긴 폭풍이 가라앉은 것처럼. 해무가 걷히고 광막한 수평선이 보이는 것 같던 그 기분. 격분이 가시고 나면, 차라리 맑아지는 이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무슨 만용을 부려 여기까지 찾아왔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당신께서 자식의 은인마저 노름판의 한 줌 판돈으로 바꿨음에도 혈육이기에 자식은 곤란해진 어미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할, 그 순진해 빠진 정신머리는 대체 어디서 기인하던가 말이다. 천륜인가, 도덕률인가. 윤리를 믿었나, 오래도록 인류가 구축한 가족애라는 신화를 신앙했나. 설마 제 어미에게 지팡이를 쳐들고 위협을 일삼던 당대의 패륜아를 믿었나? 아니, 언제는 그가 달리아 윈프리드의 사고 체계를 이해했던가?
그것과 오래도록 언쟁했던 것 같다. 설리번을 팔았느냐고 물으니 몸을 잔뜩 웅크리고 주저앉아 어머니인지, 망령인지, 이젠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를 그 지독한 여자는 울었다. “너, 넌 항상 그런 식으로 날 못살게 굴지. 어떻게 엄마한테 그럴 수가 있니?” 그런 말을 했다.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마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가엾다는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서는 “그 이상한 노인네가 엄마보다 더 중요했다는 거니?”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는 것이다.
위즌가모트 청문회가 끝나고도 제임스는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제 어미에게 내보일 수 있었던 단 한 토막 정이었다.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예언가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아도 눈에 선한 미래였다. 왜냐하면, 살면서 단 한 순간도 제임스 윈프리드는 격노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까닭에.
사람은 손쉽게 죽었다. 무슨 주문을 생각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그저 문득 정신이 들고 나니 눈앞에 드디어 그 빌어먹을 여자가, 사람 아닌 망령이, 그의 바다를 온통 뒤흔들던 끔찍한 고래, 그래, 달리아 윈프리드는 차디찬 시신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고, 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팔아치웠던 아버지의 유품을 닮은 물건. 혹은 죽은 설리번이 어린 그에게 부디 아버지의 유품을 잃어버린 일을 애석하게 여기지 말라며 그 유품을 모방하여 완성해준, 이제는 다소 설리번의 유품인 것만 같은 그 지팡이. 이 여자와 자신은 애초에 종부터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뿐인 증거품.
숨통을 끊어 놓으면 밀려드는 묵직한 정적. 차라리 밀려드는 벅찬 해방감과 자유, 그런데도 잔재하듯이 내려앉는 여운 같은 분노가 있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지독한 존속 살인 현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일몽처럼 내려앉는 환청이 있다.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직전, 차라리 완벽했던 소년 시절의 목소리.
“어느 순간부터 생존 전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물론 네가 저 여자를 죽인 것에 유감을 느낀다는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설리번을 가족처럼 사랑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비참하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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