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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7>성인] 그대들은 나의 피터 팬 아닌 신데렐라.

Mirror All 모나 2021. 8. 3. 22:42

  “당분간 교회에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는 에든버러가 좋다고 했다. 북방의 아테네이고, 문학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미래가 싫지 않다고. 파밀라 헤이드리언은 처음 마주했던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늘어놓은 모든 사랑과 낭만이 거짓말일 거라고 넘겨짚지는 않았다. 지금, 에든버러를 떠나야겠다고 작별을 말하는 남자는 그러기엔 어리고 서툴렀다. 그렇게 해서 얻을 것도 없었다. 그가 설령 차별주의자여도 파밀라는 그에게 세를 놓았을 것이었다. 파밀라에게는 젖먹이가 하나 있었고, 마법사 사회와는 연고가 끊어진 지 오래였으며 남은 것이라곤 남편의 무덤과 에든버러에 세를 줄 수 있는 집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전쟁에 나갑니까?” 파밀라의 아이가 요람에 잠들어 있었다. 그들 모녀가 살던 집 2층에 세 들어 살던 남자는 파밀라보다 스무 살은 어렸고 전장에 끌려가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나이처럼 보였다. 거실에 빛을 드리우던 창마다 노을이 아롱졌다. 남자는 파밀라가 내 온 차를 느리게 마셨고, 또 느릿하게 호흡하며 말을 엮었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네요.” 대답마저 미온적이었다.

 

  “난 당신이 그런 일엔 관심이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오크나무로 만든 식탁에 찻잔을 내려두었다. 식탁보 덕분에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내가 페러그린이니까?” 남자, 테오필 페러그린은 납득하는 눈치였다. 파밀라는 내려둔 찻잔에 손을 둥글게 말아둔 채로 기묘하다고만 생각했다. 스큅으로 태어나 머글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그렇게 에든버러에 녹아 산 지 20년이다. 남편이 병을 얻어 죽고 나니 잊고 살았던 마법사 사회가 사람 모습을 하고 나타나선, 2층 방을 내어달라는 말을 했던 거다.

누가 듣고 있었더라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겠지. 그들 사이에는 페러그린이라는 이름 한 토막만 언급해도 알아차릴 수 있는 배경지식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파밀라는 스스로가 정녕 원하던 대로 머글이 된 건지 영영 되다 만 괴물인 것인지 모르겠다는 상념만이 들었다.

 

  “그냥, 파밀라 씨 앞이니까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전쟁이고 정치고 관심이 없어요. 문학만 할 수 있다면 그 땅이 영국이건 프랑스건 독일이건 런던이건 에든버러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도 마법사 사회로 돌아간다고요?”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겨서요.”

  “…알다가도 모를 양반. 전쟁 나가 죽으면 아무도 안 알아줘요.”

  “죽기 전에 도망쳐야죠.” 테오필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늘 농담처럼 꾸며 말했다. “그 정도 신념까진 없는지라.”

 

  파밀라는 이제 스무 해 하고도 몇 년 간신히 더 살았을 그를 가만 바라보다가 시선을 미끄러트렸다.

 

  “그 정도 신념으로 전장에 서느니, 그냥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고 서점을 돌고 사람 만나고, 그렇게 사는 게 당신 행복 아니겠어요?”

  “걱정도 많으셔라.”

  “다 아들 같아서 하는 소리예요.”

  “파밀라 씨도 아셨잖아요. 이 새장이 아주 끈질기다는 것.”

 

  창 너머로 낙조가 지고, 지붕이 그려내는 선 넘어 밤하늘이 밀려들었다.

 

  “한 번 연루되면 빠져나갈 도리가 없어지는 덫이죠. 파밀라 씨도 못 한 걸 제가 해낼 수는 없는 일이고요.”

  “나보다 스무 살은 젊은 사람이.”

  “나는 새장 그 자체잖아요, 파밀라 씨. 순수혈통 마법사가 마법사 사회와 유리될 방법 같은 건 애초에 없어요. 우리는 그 사회에 묶여서 태어났습니다.”

 

  아침이면 검은 부엉이가 예언자 일보를 물고 날아들었다. 샤를의 부리에 물린 빳빳한 조간신문은 마치 모두가 영원히 신데렐라일 수는 없다는 선고처럼만 느껴졌다. 눈을 감고 모르는 체, 사랑과 우정만을 논하며 서로를 기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종이 치면 무도회는 끝난다. 여명을 넘어 동이 트면, 우리는 서로의 초라한 모습만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고.

 

  “이 남루한 전쟁이 종식되기만을 바라야죠. 아름답지 않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순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