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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7학년 STORY] 아이아이에

Mirror All 모나 2023. 1. 2. 20:01

  슬리데린 휴게실의 벽난로가 타올랐다. 라이언은 사지를 소파에 아무렇게나 걸어 몸을 내맡기고 한참을 N.E.W.T 과정에 해당하는 필기 요약을 읽었고,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천장은 높고 어두웠다. 창밖으로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정적을 긁는다. 슬리데린 기숙사를 마치 거대한 어항 혹은 수조처럼 만든 저 검은 호수엔 별의별 게 산다고 했다. 산다는 수중생물의 종류는 매해 늘어났다가 줄었고, 새 학년이 되어 돌아오면 없던 것이 생겨나기도 했다. 10대 청소년을 모아둔 학교다. 근거 없는 호수 속 생물 괴담은 확대 재생산되기 일쑤였다. 부유하는 언어를 토대로만 호수를 상상하라면, 넓고 정적인 민물이 아닌 온갖 괴물이 들끓는 바다에 가깝다. 그렇다면 지금 라이언이 몸을 누인 호수 속 기숙사는 키르케가 산다던 아이아이에인가? 실없는 상념.

 

  아무도 없는 휴게실 소파에 장신을 눕혀두고 호수를 쳐다보다가,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본다. 온기로 뺨이 녹았고, 그제야 느릿느릿 깨달았다. 담요 없이 깜빡 잠이 든 통에 몸이 차가워졌구나. 지금이라도 필기구며 양피지를 챙겨 옆구리에 끼고 침대로 옮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방금 불편한 꿈으로부터 깨어나 정신은 물에 적신 솜처럼 무겁고, 움직일 기력이 들진 않았다.

 

  슬리데린 기숙사에서 눈을 붙일 적이면 간혹 난처한 악몽이 기습했다. 11살 적엔 씩씩한 척해도 이 어두컴컴한 지하 기숙사가 마음에 차지 않았더랬다. 그가 나고 자란 공방은 채광이 좋았다. 떠다니는 먼지를 하나하나 셀 수 있었을 만큼. 그는 11살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직전까지 어린 그웬과 이층침대를 나눠 썼다. 잠들기 전, 소등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멀리 들리는 경험부터가 생경했다. 슬리데린에 올 줄 알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서 난생처음 고집이란 걸 부렸던 기억이 났다. “이런 건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아, 라이언….”, “그치만 이게 없으면 못 잘 것 같단 말이에요, 호그와트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요….”

 

  무심코 눈살을 찌푸린다. 어머니와 입학 전에 나누었던 대화는 기억이 나는데, 어머니와 함께 가방에 집어넣겠다고 낑낑댔던 물건이 뭐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커다랗고, 멍청하게 생긴 물건이었는데. 그보다, 학기 말엔 가방에 공간이 남았을 터다. 학교에서 잃어버렸던가, 트렁크 가방 하나 가득 들어갈 만큼 커다랗던 물건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옛말도 다 거짓말이구나. 분명 무식하게 커다란 무언가였는데.

 

  “…가드너 선배.” 기억의 실을 더듬다 보면 누군가가 그를 호명한다. 시선을 들어 올리면, 소파의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어 서서 턱을 괴고 있는 슬리데린 후배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휴게실 혼자 쓰세요? 자꾸 그러시니까 후배들이 선배를 쫓아내는 거예요.”

  “…후배님, 친구들이 선배를 잡아다가 기숙사 밖에 내다버리고 있으면 좀 말려주셨어야죠.”

  “그 애들이 제가 말린다고 듣나요?” 그 슬리데린 후배는 생김부터 태도에 이르기까지 모난 구석 하나 없었다. 특별히 유난스러운 혈통우월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뜨거운 투사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미적지근하고 둥근 사람.

 

  “그보다 여기서 주무시면 가위눌리실걸요. 선배, 추운 거 싫어하시잖아요.” 그는 말했다.

 

  라이언은 그를 똑바로 마주 바라보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깔고 또 저 멀찍이 솟은 창 너머로 시꺼먼 물살을 보고,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별이 내리지 않도록 어두운 지하 기숙사의 천장을 보고, 하얀 얼굴을 한 후배를 보고, 아무리 눈을 굴리고 머리를 쥐어짜도 7년이나 먼지를 묵은 기억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치우는 것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체념하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면, 머리칼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그래, 아무려면 어떠랴? 잊어버린 걸 보아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닐 터다. 무엇이 그를 버티게 했는가, 무엇이 되었든 그는 여기에 서 있지 않나. 더는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를 띄우는 어리석은 이는 하지 않을 테다. 이곳이 어느 님프의 섬이든 상관없이 정박한다. 이타카는 물론이요, 그는 트로이아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침대로 돌아갈 테니까요.” 불시에 잊어버린 것이니 별로 중요하진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