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ror No.1

Mirror No.1 외전.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

Mirror All 모나 2021. 2. 16. 17:47

  실종자는 사라졌던 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숨만 끊어져 돌아왔습니다. 고다밍 경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는 슬플지언정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부패한 시신이 걸치고 있는 옷자락으로부터 신원 불명의 시신에 이름이 붙게 되기도 하니까요. 같은 옷을 입고 소지품 하나 사라지는 일 없이 그저 딱 목숨만 잃고 돌아온 피해자를 보고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시신의 부패 정도입니다. 최후 증인이 첫 번째 실종자를 목격했다는 시간과 시신의 부패 정도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실종자는 최후 증인이 살아 움직이는 걸 목격했다는 시간보다 훨씬 이전에 사망했음이 분명합니다.

 

  이쯤 하니 경찰 내부에서도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입니다. 경찰서는 부산스럽기만 하고 마땅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빠진 퍼즐이 있는 건 분명한데 아무도 그 한 조각을 찾지 못하는 통에 반나절 가까운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마을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버스가 끊어지고, 짐을 모두 비스트리츠에 두고 이동해 왔던 탓입니다.

 

  여관으로 돌아가니 모르는 여자가 하나 카운터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관 주인 되는 노인과 독일어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브라이언을 교회에 두고 움직이진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더군요. 창백한 얼굴을 한 그 여자는 어설프게 문간에 멈춰선 저를 밀치듯 떠나고 여관 주인은 씩씩대는 숨을 몰아쉬며 험악한 말로 추정되는 몇 마디를 웅얼거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제법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노인은 손녀딸 된다는 여자가 박차고 나간 문간을 푸근한 눈두덩으로 한참 노려보다가 대답했습니다.

 

  “직장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니까 싫다고 고집을 부리잖습니까. 요즘 같은 때에 그런 직업은 위험하다니까는….”

  “손녀분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어도 괜찮을까요?”

  “산 위에서 일합니다.”

  “산?”

  “네, 산 위.”

 

  이곳에서 오래도록 지내다 보면 혀에 익는 관습적 표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를테면 노인이 씨근덕거렸던 ‘산 위’라는 단어가 그런 편인데, 그건 그 여자가 등산가라는 걸 의미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숲 너머 산 위에는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고다밍 경, 알고 계셨나요? 모든 시체는 저 산 위 저택에 사는 악마의 권속이라는 낡은 전설 말이에요.

 

  후에 경찰에게 어째서 숲 너머 저택에서 오래도록 명맥을 이어온 네크로맨서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위험능력자로 등록된 인물은 신세대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며, 192지구가 보유하고 있는 역대 네크로맨서의 능력 범위를 염두에 두었을 때 현존하는 유일한 네크로맨서는 마을까지 실을 연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행정적 답변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첫 번째 실종자와 사하르 아델하이트는 세라 아델의 장례식 이후로 직접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가 실종되었던 날의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첫 번째 실종자는 살해당한 게 아닙니다. 조사 결과 확실한 물적 증거가 발견됐어요.”

  “그렇지만 시체는 걸어 다닐 수 없어요. 첫 번째 실종자가 우연히 산길에서 사망했다손 쳐도, 그 시신을 무슨 수로든 아델하이트가 입수하기만 했다면 판은 깔린 셈이 아닌가요?”

  “그랬다손 쳐도 시신은 마을까지 진입하지 못해요. 그 작자의 능력 범위가 거기까지 닿지 않으니까. 시신에 딱히 아델하이트의 흔적이 남은 것도 아니고. 확고한 증거가 없다면 심증만으로는 잡아 심문할 도리가 없습니다.”

 

  고다밍 경, 저 또한 이 판단이 제법 위험한 판단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보고 메일을 미리 보내지 않았던 점을 부디 용서하세요. 밤이면 사람이 어둠 속에 녹아 사라지는 비극을 끝내기 위해 제가 여기에 왔다는 사실 또한 참작해주시기를.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히어로의 본분이 아니던가요?

 

  악마의 저택에서 무사히 돌아온다면 꼭 발송 버튼을 누르겠습니다.

 

  L.웨스텐라

 

* * *

 

  조너선 하커는 B급 드라마라면 무엇이든 좋아해서 장르를 불문하고 유치하고 진부하다고 소문난 것이라면 어떤 드라마든 장바구니에 넣고 쉬는 날마다 시청했다고 자부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사랑스러운 것은 어디까지나 허무맹랑하기 때문이다. 포크레인을 몰고 와 결혼을 방해하는 시아버지를 생매장했더니 좀비 닌자로 되살아났다는 시놉시스는 코미디 B급 드라마이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지, 현실로 넘어오면 코미디를 넘어 난감해지기까지 했다. 오늘 하커는 그런 난감함을 다른 곳도 아니고 경찰서에서 느껴야만 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시체가 움직였단 말인가? 이 작자는 경찰이랍시고 파란 제복을 입고 사무용 데스크에 앉아서는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이 움직여 다음 실종자를 살해했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정말, 그 결론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난감하네. 설마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브라이언은 무슨 B급 영화도 아니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그렇게까지 클리셰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커 또한 그의 반응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런 문제였다면 지금쯤 교회의 공동묘지에 있는 시신들은 전부 벌떡 일어나 마을 골목골목을 배회하고 있었어야 했다.

 

  “뭔가 원한 관계 같은 건 없나? 자기야, 뭐라도 좀 더 말해줘 봐요.” 하커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브라이언이 대뜸 사무용 데스크에 손을 짚고 몸을 기울인 채 채근하자 경찰은 미동도 없는 딱딱한 시선으로 제 할 일만을 했다.

 

  “저희 측에서 협력 요청한 히어로 사무실을 등에 업었다고 기고만장해지셨군요, 칸 씨. 일반인에게 이 정도 공개한 것만으로도 많이 알려드린 편입니다만.”

  “기회가 왔을 때 물어야지. 나만 오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고 새침하게 자판기 커피나 뽑아주는 거 뻔히 아는데. 그러지 말고 뭔가 더 있었을 거 아닙니까? 피해자의 당일 동선이라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식품 물류업자니까 늘 돌아다니는 루트대로 움직였죠. 마지막 거래처까지 크게 평소 동선에서 벗어난 바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을에 있는 식당들 한 바퀴 돌고, 시내 한 번 오고. 그 정도였죠.”

 

  금테를 두른 안경 너머, 브라이언의 눈이 새삼스러우리만치 둥글게 변했다. “트럭은 발견됐나요?” 그의 한 톤 낮은 목소리가 한 토막 의심을 논할 때 하커가 고개를 들었다. 제 옆을 쳐다보면 자기니 달링이니 되지도 않는 호칭을 들먹여가며 대화를 밀고 당기던 이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발견은 됐습니다.” 경찰은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놓고는 서류를 살펴보기를 그만두었다. “숲에서요. 나무를 들이받고 찌그러진 채로.”

 

  첫 번째 실종자의 확정 사인은 사고사라고 했다.

 

  경찰서를 나서기 전, 큼직한 보폭으로 하커를 따라나서던 브라이언은 데스크에 앉아 있던 경찰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 트럭은 산 위까지 다녔나요?” 불편한 기색 어린 질문에 경찰은 어깨를 으쓱했다.

 

  “산길은 차가 다니기에 좋지 않아요.”

  “그렇지만, 산 위에도 사람이 살잖아요. 저택이 있죠?”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저택의 사용인들이 숲까지 내려와서 물류를 받아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그 산길은 차가 진입하기엔 너무 좁아서요.”

  “아직도 사용인이 있다, 이거죠.”

 

  경찰은 서의 문을 닫고 완전히 빠져나가려는 그에게 민간인이 이런 사건에 깊이 연루해서 좋을 것 없을 거라는 마지막 충고를 했다.

 

  “패트릭 씨, 당신이 유별난 거야 세상 사람이 다 안다지만 목숨은 하나잖아요.”

 

  브라이언은 무심코 알았다는 메마른 대답만을 내놓았는데, 서의 유리문을 닫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차. 패트릭이라니. 그 이름은 비스트리츠에선 금기 중의 금기요, 조너선 하커에게 알려져서 하등 좋을 것 없는 이름이었는데!

 

  “그래, 댁이 빌어먹을 문제의 패트릭 칸이시겠다.”

 

  버스 정류장은 경찰서 맞은편에 있었고, 거기서도 버스를 타려면 40분은 하커와 있어야 했다.

 

  그의 이름은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대학 시절 학생회장을 지내며 저지른 한 가지 사건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통에 특히나 구세대라면 패트릭 칸이라는 네 글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작년 겨울 이 작자가 학생총회에 붙인 최후의 의제로 인하여 세상의 판도가 틀어진 것이다. 머지않아 구세대는 세계정부에 진출한다. 패트릭 칸이 학생총회를 통해 학교의 문을 구세대에게 열어놓는다는 것은 그만한 파장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조너선 하커는 그의 네 글자 이름을 듣자마자 한 가지 거짓말을 간파해내고야 말았다. 구세대라는 알량한 거짓말.

 

  대화가 필요했다. 그는 필연적으로 조너선 하커보다 훨씬 많은 사실을 알고 의심하고 있었을 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코메트리가 정말 이것밖에 몰랐을 리가 없었다.

 

  산 위에 무엇인가가 있다. 패트릭 펠릭스 칸이 트럭의 이동 경로를 의심했다면 분명하게도, 저 산 위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 * *

 

  전쟁 영웅이었던 헤르만 아델하이트와 페넬로페 아델하이트 부녀를 제외하자면, 아델하이트 가문의 ‘네크로맨서’가 실제로 사람을 몇이나 잡아 먹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잡아먹었는지조차 모를 일이라고 사하르 아델하이트는 생각했다. 사람을 무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실을 당기는 건 머리가 깨질듯하고, 때로 토할 것 같은 감각까지 불러일으켰다. 이럴진대 수천에 가까운 인형의 실을 당기고 조율했다는 헤르만 아델하이트는 괴물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건 정말이지, 오래 익히고 숙련할 만한 일이 못 되었다.

 

  마땅히 교육받은 일이 없어 그는 자신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죽을 때까지 모를 거라고 자부했다. 어쩌면 다룰 수 있는 인형의 수가 좀 더 많을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훨씬 먼 거리까지 실을 늘이고 시신의 사지를 움직일 수 있을는지도.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는 지금 자신이 타고난 것이라면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껴안은 채 소사할 생각에만 잠겨 살았다. 인형과 연결되면 끔찍하리만큼 새빨갛게 물드는 머리칼, 녹색 눈동자, 제 삶에 지독하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르는 우울, 헤르만 아델하이트로부터 대물려 온 흑마술 같은 초능력, 어느 날을 기점으로 타오르기만 하는 분노.

 

  “우리는 모두 공범인 걸까요?” 오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재 바닥에 늘어져 누워 있으면, 방 안을 환기한다는 목적을 가진 사용인이 딱히 허가도 구하지 않고 서재에 발을 들였다. 모로 누워 퇴창을 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사하르 아델하이트의 하얀 머리칼이 눈가루처럼 흐트러졌다. 저택에 남아 있는 사용인은 역병으로 죽은 주인 부부로부터 입은 은혜가 두터운 사람들뿐이었다. 딱히 그들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후손을 예뻐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마을 하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책망하지도 않았다.

 

  “공범이겠지.” 사하르는 새벽에 내린 눈 때문에 새하얗게 얼어버린 저택 바깥 숲을 응시하며 대답한다. “그래도 당신들을 팔진 않을게.”

 

  산 아래에 여관을 하는 조부모를 두었다던 사용인은 밀짚 같은 머리칼 사이로 힐끔, 제 곁에 모로 누워 꼼작도 하지 않는 어린 고용주를 내려다보았다.

 

  “유폐해둔 사람은 어쩌시려고요? 런던에서 왔다는 그 여자도 당신의 수성의 범위에 들어가나요?”

 

  살인자는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쎄.” 그 여잔 나더러 사람이라던데. 그렇게 생각한 건지, 그러길 바랐던 건지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