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니저 어르신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꼿꼿함이 느껴지는 필체로 양피지 세 장 가득 채우도록 훈계가 담겨 있었는데, 수업에 들어오기 직전에 받은 그 편지를 펼쳐보진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 모든 사태는 당신이 던진 한마디 질문에서 시작했건만, 나는 또 무슨 정신으로 당신께 자문을 구한답시고 기나긴 편지를 적어 샤를에게 물려 보냈을까. 밤이 깊고 새벽이 가도록. 동이 트고 해가 하늘을 주행하도록. 구태여 번민할 이유 하나 없는 자리에 태어난 나는 왜 번민하는가 말이다.
쥬디스와 대화를 나누며 막연히 짐작했던 공포의 모습이 있었다. 산골에서 자란 내가 벌레며 개구리 같은 걸 무서워할 수는 없는 일이고, 모가지가 잘리다 만 유령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고성을 누비며 10대를 소비하고 있는 마법사가 귀신이라고 무서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이 나올 거라고 예감했다. 쥬디스 웨더와 윌리엄 시어스. 내가 유일하게 편한 말을 골라 사랑하게 된 이들. 그 애들 모두에게 버림받는 건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라서, 마법사 문화와 머글 문화 모두에게 밀려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악몽과도 같은 공포였기에 그 애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얄팍한 짐작만을 했다.
인간의 심연이란 알면 알수록 모르겠구나.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 것 같았다. 나를 주시하고 있는 시선들도 알 게 뻔했다.
비난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한다, 테오필. 네가 오래된 숲에 살며 그리워한 것이 또래 친구들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네게 전하고자 했던 바는 다름이 아니라, 어설픈 논리로 그들을 이해한다 말했을 때 누군가는 반드시 너에게 속게 된다는 거다.
혁명을 위해 너의 성을 무너뜨리고, 네가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둘 모두를 품에 안겠다는 알량한 생각은 그만두려무나. 사랑하는 이들을 기만하지 말고 똑바로 너를 주시하고 보여주고, 그런 너를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이라면 쳐내고 정리해라.
그렇게 해도 네 곁엔 사람이 남는다. 도리어 잃은 것보다 많은 게 남을 거다. 솔직하게 괴물로 전락해도, 너를 키워낸 우리는 영원히 너의 편일 테니 말이다.
나의 그림자까지 쫓아다니는 비난이 무엇인지 알았다. 사실은 그 사람이 나의 진심을 의심했던 이유를 알았고,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지를 알았다.
묻건대, 답하라. 너는 우리를 배신할 각오를 품고 사랑을 논하느냐.
“…도저히 모르겠네.”
저건 나의 미래다. 약속된 타락이다. 저 빌어먹을 보가트는 사람 하나를 보란 듯이 가지고 놀고 있다.
“교수님, 좀 도와주실래요?”
너는 결국 포식자로 태어났고, 모두를 상처 입히게 되어 있다는 것. 뻔한 메타포.
“…더는 머리 아프고 성가셔서 못 해먹겠다고요. 저걸 애들 앞에 전시해버리면 어떡해요? 내가 저게 아니라는 증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할 말이 있더라도 이대로 심연에 묻어두고,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모르는 채 사랑할 순 없을까. 너희가 날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구태여 지팡이를 들어 숲의 어둠을 걷어내고 전락한 나를 보지 말란 말이다.
악은 왜 이다지도 내게 매혹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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