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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No.9/Mirror No.9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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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No.9 1-1. Snowwhite(完) 와이엇 윈프리드에게는 웬만하면 약점을 잡혀서 좋을 게 없다는 말이 극단에 꽤 오랫동안 떠다녔다. 말을 만든 게 누구인진 몰라도 로즈 헌터는 제작년 말부터 그 말이 신빙성이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딱 한 번 무대에서 선배의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졌을 뿐인데 그는 그 사소한 실수를 지금까지 들먹이며 놀려대기 바빴다. 그 이후 로즈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의 앞에선 절대 실수하는 일 없으리라 몇 날 며칠을 다짐했더랬다. 그러나 그러한 결심은 하기는 쉽고 이루기는 어렵다. 아무리 처음이었다고는 해도 호언장담을 했는데, 예상과 다른 곳에 떨어져버리다니 이는 또 몇 년 와이엇이 그녀를 놀리며 괴롭힐 만한 사안이었다. 공식 대입은 꽤 잘 했지만 암산이 틀렸다. 물론 다행히 거하게 엇나가지는 않았다. 창은 깨졌고 ..
Mirror No.9 1-1. Snowwhite(4) 그녀는 연구가 완성된 이후의 자신을 여러 번 상상했다. 리히트 대학의 시계탑에서 내려다보는 프림데 시는 그녀의 고향에 비해 바라보는 경치가 좋진 못 했다. 가엾은 땅이다. 연민은 쉽게 차올랐다. 그 땅은 강수량이 줄어든지 너무도 오래되었다. 명석하다는 그리폰들이 이루지 못 할 꿈을 꿔야 할 만큼 오래되었다. 그녀는 시계탑 내부와 황야를 나누는 유리창을 새하얀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구해야 할 땅은 저 너머에 있고 그 땅을 구할 지식은 그녀의 머릿속에 있었다. 남작은 리스크는 커도 좋다고 했다. 그 땅의 식수난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갈아 넣을 수 있다고. 기후를 지배하는 마법이 신의 영역이라면 그 신의 영역에 닿을 때까지 지원해줄 의향이 있다는 의사도 밝혀왔다. 그 말을 믿고 연구를..
Mirror No.9 1-1. Snowwhite(3) 숙소는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하루를 쉰만큼 점검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A는 주 관객층이 어린아이들인 인형극 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의 팀은 하루 더 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시간이 퍽 남았지만 오늘부터 공연 재개를 해야 하는 연극 팀은 사정이 달랐다. 공연 리허설부터 조명 체크, 동선 체크, 무대 장치 점검까지 저녁 공연을 위해 반나절은 꼬박 투자해야 하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A는 오늘까지 쉬는 날이라는 사실도 무색하게 숙소 룸메이트들의 등쌀에 못 이겨 아침 일찍 눈을 떠야 했다. 그들의 아침 식사며 옷매무새를 봐주다 보니 얼굴 구석구석 묻어있던 잠이 홀딱 달아나고 말았다. 문가에서 배웅까지 해주고 나니 그 때에서야 숙소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A는 숙소 안을 제 어깨 너머로 한 번 돌아다보..
Mirror No.9 1-1. Snowwhite(2) 동행한 지 몇 시간 만에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A의 고향 슈니플로케는 악명만 높았지 제대로 알려진 바는 하나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레오폴트는 슈니플로케의 지형, 관광 포인트 무엇 하나 숙지하고 온 게 없어 보였다. A가 무엇을 추천하고 보여주든 그는 난생처음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굴었다. 체험에도 적극적이었다. A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슈니플로케는 A의 고향이었다. 슈니플로케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그 땅을 욕하는 것과 타지 사람이 그 땅을 욕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외지인이 슈니플로케를 알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A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차 한 잔 정도는 제가 살게요, 하는 건방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상상했던 것..
Mirror No.9 1-1. Snowwhite 영원히 타오를 것이라고 약속했던 불길은 5년 만에 잡혔다. A는 역한 냄새와 산더미 같은 재만 간신히 남기고 불씨까지 사그라진 화로를 생각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슬슬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구름보다 조금 낮은 위치를 떠다니는 칼바람이 한 줄기 그의 머리칼을 쓸었다. 평생 올라올 일이 없을 거라 믿었던 탑 위에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운 '이종족'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 불길이 타오르지 않는 슈니플로케가 이토록 추웠다는 사실을 그는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달까지 차게 얼었다. 저 산 너머에서 밀려오는 먹구름도 단단히 얼어붙은 눈구름일 것이 분명했다. 눈꽃의 도시는 이제야 5년간의 짧은 봄을 끝내고 다시 본연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