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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패트릭] Judgement

  청동 독수리상이 있었다. 죽음마저 물살에 쓸려 사라질 꿈결이었는지 눈앞에 그것이 있었고, 안감이 파랗던 교복을 나는 입고 있지 않았다. 사위가 고요했다. 천 년 가까이 적지 않은 아이들로 북적거리던 고성마저 운명한 것만 같았다. 나는 친구의 지팡이 앞에 무너져 죽은 게 꿈이기보다는, 이것이 꿈이고 환각이며 주마등일 수 있겠다는 생각만을 했다. 어쨌건, 뒤를 돌아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회색 숙녀는 빛바랜 사진처럼 청동 독수리 아래 앉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무심히 모은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 나인지 흘러간 과거인지 모를 상념에 젖어 오래 골몰하는 모양새였다.

 

  독수리가 물었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손목에 걸려 있던 시계를 확인하니, 열두 시였다. 오전인지 오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독수리상 옆 세로로 높게 나 있던 창에 없던 푸른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던 탓이다. 소맷자락에 불에 타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신발 안에 모래가 굴러다녔다. 어쩌면 회색숙녀가 보기에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기에도 보기 흉할 만큼 추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흐트러져 내려온 머리칼을 한 번 대충 넘겼다.

 

  그렇기에 이것은 꿈이다. 전장에서 눈 감은 내가 래번클로 기숙사 앞에 서 있을 수는 없는 거였다. 설령, 전장으로 향하는 기차, 불사조 기사단에 몸을 싣지 않았더라도 내가 자진하여 호그와트로 돌아올 일은 없었다. 그것이 나의 비극이고, 아무도 이해 못 할 응어리였다.

 

  “죽으면 천국이라거나, 지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비스듬히 무게 중심을 잡고 서서 말하니, 회색숙녀가 화답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갈 곳 하나 없는 무저갱으로 빠져들고 말 거야.” 눈꺼풀은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대답하던가요?”

  “누구?”

  “내 형제들.”

  “먼저 온 이들이라면 모두.”

  “그것참 궁금한데. 그 애들의 사유가.”

 

  담배를 물었다. 모두 무의식 속에서 꾸며진 세계라면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전장에 가져갔던 것이 얼마나 남았는지 기억도 안 났지만, 무의식이란 그다지도 편리한 것이다. 원한다면 주머니에서 무엇이든 꺼낼 수 있었다. 내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다 아니다를 논하라면, 아니라는 대답만이 가능하겠네요.” 청동 독수리상은 고개를 길게 빼었다. 나를 굽어보았다. 날카로운 시선이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나도 알았다. 7년은 짧지 않았고, 마법에 걸린 낡은 청동상과 입씨름을 벌인 횟수는 300번보다도 많았다. 그는 나를 납득하기도 했고, 납득하지 않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친구들을 구제하여 문을 열었고, 또 어떤 날인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숙사 통로를 열었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사유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는 오래전에 죽어 자연으로 돌아간 로웨나 래번클로의 망령을 보고 있다. 낡다 못해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로 먼지를 먹고 녹이 슨 로웨나의 순간이 우리를 굽어보며 가치를 매기고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는 청동 독수리상의 기준과 법도를 세울 때의 스스로 또한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사유를 거듭하여 나날이 변하고 요동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며 감정이요 이성이자 기준이건대, 나는 청동 독수리상의 기준마저 의심했다. 그럼에도 답해 옴은, 위대한 마녀가 저지른 최대 오류가 영구히 박제되어 고성에 서 있음을 가련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살아 있는 것은 매 순간 진보하고 퇴보하며 변하니까. 이 순간, 또 한 차례 변하고 있는 나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없어 번민하는 인류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죠. 빛을 찍어 사진에 담은들, 우리가 빛을 이해했다 할 수 없듯이.”

  “그럼 사랑은 어떻지?” 회색숙녀는 무심한 투로 물었다. “서로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데, 모두 평행선을 걷고 있을 뿐인 인간이 서로 사랑은 할 수 있나?”

  “너 또한 반지성적인 삶을 살았다 추궁하시려고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까?”

  “그저 묻고자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기에 사랑하는 거죠.”

 

  담배 연기가 쓸려나갔다. 바람이 불어온 탓이다. 창가에 드리웠던 파란 벨벳 커튼이 바람의 모양새를 따라 펄럭였고, 바닥에 빛이 들었다. 창문 모양의 석양이 한가득 발치에 닿고서야 확신했다.

 

  오후12시는 저물녘이 아니었다. 유서는 스코틀랜드에 도착했을 것이고, 머지않아 내 가족이 있는 브뤼셀, 그리고 시카고까지 항해할 것이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이다. 판관에 나를 제자로 간택했던 지혜의 여신께서 앉아 계시는.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마저 이해하고 싶다 느끼는 감정, 그 갈망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나는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호그와트를 후회 없이 사랑했다고 결론 내리죠.” 청동 독수리상과 회색숙녀는 본 적 없는 미소를 그렸다. 고성에 박제된 그들은 영영 지을 일도 없으리만치 살아 있는 표정이자 열정이었다.

 

  “신께서 내 사랑들을 축복하실 겁니다.”

 

  청동 독수리상을 지나 통로의 끝에 있을 그곳이 낙원이 아니고 천국이 아닐지라도, 불가해한 것을 우리는 사랑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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