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장례를 치르고 났을 적의 일이다. 사철 후덥지근했던 호수에 유례없는 눈보라가 일고 창마다 서리가 얼었는데, 에이더스는 그날 이후 천도경에 설경(雪景)이 내려앉은 것을 본 일이 없었다. 마법 상가 초입에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놓은 마법사 하나는 그것이 서왕모 나름의 조의(弔意)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창조신의 변덕이라고 했고. 그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스승인 아이반느 라프란스의 고향이 빙하가 닿는 도시였다고 했으니, 그의 죽음 앞에 눈발 아래 흐릿하게 가려진 그믐달이 놓였다는 사실 하나가 막연히 마음에 들었다. 장례 행렬이 떠나가는 동안, 마법상가를 이룩했던 모든 마법사가 울었다. 그래, 얄밉고 밉살맞은 데다가 정 없기까지 한 어느 마법사 아저씨 하나를 빼자면 말이다.
“눈 들이치니까 창문 닫아라.” 에이더스는 스승의 장례가 끝나던 날, 아이반느의 공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장례식엔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았으면서 마법사 크로스는, 자신이 제작한 자동인형을 시켜 에이더스를 떠메고 본인의 공방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에 구태여 고인이 계시던 공간에 틀어박혀 혼자 울지 말라던가, 에이더스는 막상 발인할 적엔 울지 않았음에도 참으로 별난 우려였다.
여닫이 창문을 안으로 당겨 닫으면, 달밤이 번진 유리창 위로 도로 하얀 얼음이 끼었다. 유례없이 들이닥친 하룻밤뿐인 겨울 칼바람에 유리창은 얼음장인데, 술기운에 들뜬 이마며 뺨은 조금 뜨겁기까지 했다, 고개를 가만 창에 기대어두고 앉아 투덜거렸다. “시원하고 좋기만 한데 불만은.” 마법사 크로스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안고 있던 빈 맥주병 몇 개를 빼앗아 갔다. “헛소리 하지, 또. 너는 의사란 놈이 꼭 건강에 나쁜 짓만 골라서 해요.” 지긋지긋한 잔소리다.
“내가 뭐요? 우리 아빠도 할아버지도 반도 나한테 뭐라고 안 했는데 아저씨가 뭔데 참견이야?”
“아무것도 아닌 사이니까 참견한다, 어쩔래?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아, 또 나왔다. 크로스 씨의 꼰대 발언.”
“이거는 신경을 써줘도 고마운 줄을 모르지, 응?”
마법사 크로스와 나누는 대화는 늘 그랬다. 누군가 하나는 싫은 소리를 하고, 듣는 사람은 대놓고 역정을 내는 거다. 크로스 씨가 한 해 전에 완성한, 마법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인형은 그들 사이에 어설프게 껴서 동그란 눈으로 그들의 말다툼을 지켜보곤 했다. 그 무렵에 그 인형은 말이 없었다. 요즘은 놀랄 만큼 재잘댄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애는 성장 중이었을 터였다.
“내가 크로스 씨한테 순순히 고맙다고 꺅꺅대는 날이 오면, 그거 가짜니까 프라이팬으로 머리라도 후려요.”
“상상만으로도 징그럽다. 그냥 평생 얄밉게 살아. 술은 그만 마시고.”
“이런 날에라도 마셔야지, 아니면 언제 마시라는 거예요?”
“너는 이런 날 아니라도 마셨잖아.”
“그래도 근래엔 안 마셨거든요? 반이 아프니까.”
“그리고 장례 치르는 사흘 동안 혼자서 궤짝 가깝게 마셨지.”
“어딘가 나사 빠진 인간들이나 마법사를 하나 보죠, 뭐….”
“말이나 못 하면….”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창가 앞 골목을 비추었다. 눈발이 조금 힘을 잃어 불그스름한 불빛 속 먼지처럼 부유했는데, 고개를 조금 돌리면 불이 꺼진 아이반느의 공방 간판이 언뜻 윤곽을 드러냈다. 차양 아래, 홀로 우뚝 서 있는 입 간판에도 하얗게 눈이 끼었고 그 옆엔 누가 눈을 굴려 만들어 세웠는지도 모를 눈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냥 자고 가라. 구태여 반의 공방에 가지 마. 보기 사납게 처량하니까.” 마법사 크로스는 경고성을 띤 목소리로 묵직하게 말했다. 자동인형과 함께 주섬주섬 빈 병이며, 다 먹은 과자 봉지 같은 것을 주워 정리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에이더스의 뒤통수를 의자로 후려서라도 이만 그를 재울 작정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내일은 돌아갈 거예요.” 에이더스는 주변이 부산스럽건 말건, 시선을 오롯이 달빛 희미한 밤, 골목에 두었다.
“…왜, 또. 눈 한 짝 잃은 걸로는 얻은 교훈이 부족하든?”
“반이 살아 돌아오거나 어디 다른 세계나 시간선에 있을 거라든가, 그렇게 믿어서 돌아가겠다는 거 아니거든요. 내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적에 저승까지 박박 뒤져봤는데 그걸 모를까.”
“무리하지 마, 애쓸 필요도 없고. 난 네 보호자도 아니고 될 생각도 없지만, 반이 그렇게까지 부탁했는데 그 사람 제자를 내팽개칠 만큼 상도덕 없는 사기꾼은 아니거든.”
애써 고개를 돌리면, 크로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에이더스는 인간적으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그가 에이더스를 구조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는 인간상부터가 아니었다. 당장 에이더스가, 앉아 있던 등받이 없는 둥그런 의자를 들고 머리를 내려쳐도 부러질 리 없을 것 같고 회유당할 일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모두가 그 남자를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이라 했는데, 적어도 에이더스 스펜서는 마법사 크로스를 인간적이지 않다고만 느꼈다.
“넌 이런 시기에 혼자 있으면 반드시 삽질할 놈이야.”
“크로스 씨는 안 슬퍼요? 고작 나흘 전에 반이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안 슬프다곤 안 했다. 그렇지만 내게 과거는 망령이거든.”
“그 짧은 시간 안에 반이 크로스 씨에게는 망령이 됐나 보군요.”
“그렇게 잘라 생각하지 않으면 진즉에 미쳤을걸. 난 너보다 파멸적으로 잃은 사람이 많아, 에이더스. 그런 만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능하지.”
그 무렵, 그를 에이더스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람밖에는.
“넌 아직 안 죽었으니까 특별히 걱정해준다. 엘라하 스펜서도 아이반느 라프란스도 과거에서 멈췄어. 그러니 우선하려거든 너의 현재를 우선해. 어차피 새겨진 과거는 박제야. 네가 울면서 그리워해도 되살아나지 않아. 영원토록.”
그렇지만 너 스스로는 죽는 그 순간까지 너와 함께하겠지. 네가 지켜야 할 마지막 왕은 너를 너답게 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해, 죽어가고 스러져가는 수많은 사람이 아니라.
“…재수 없는 아저씨 같으니라고.” 사근사근함을 한 겹 걷어낸 목소리로 내뱉고, 입술 끝을 깨물었다. 하여간에, 마법사 크로스는 별로 인간답지 않았다. 구태여 단어를 골라 수식하라면, 사람의 형태를 한 현재, 시제(時制) 그 자체처럼 보였지.
“그러니까 돌아가겠다고요. 괜히 걱정이야, 진짜.”
머리를 도로 차디찬 유리에 대면, 아이반느에게 익숙했을 서늘한 기온이 살갗 안으로 스몄다.
“나를 나답게 하는 건 사랑이니까, 그걸 지키기 위해서 돌아가겠다고요. 반이 남긴 공간과 반이 사랑했던 그 모든 작업을 물려받아 나의 현재로 만들겠다는 말이에요, 반을 따라 죽겠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내일 당장은 좀 만용이었던 것 같으니까, 며칠만 지내다 돌아갈게요. 말하지 않아도, 오늘 작별하면 내일은 과거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더는 덫에 사로잡히지 않으련다. 에이더스 스펜서는 죽은 자 또한 산 자를 사랑한다는, 한때의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향해 열렬하고 애틋한 애정을 내리고 있다는 그 사실을 뼈아프도록 알고 있었으니까.
* * *
주최자가 내어준 외계 곰 인형은 말랑하지만 폭신하진 않았는데, 안고 지내다 보면 감촉도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질 만큼 익숙해졌다. 그는 오랜만에 종일 과거에 사로잡혀 지냈다. 그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떠한 추억이든 떠올리면 죽어 떠나버린 사람들이 걸려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할아버지. 혹은 그의 아버지. 스승, 더 오래전으로 더듬어 올라가자면 얼굴만 간신히 알고 있을 뿐인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오롯이 성립한 인간은 없다. 자만이니, 그러한 지적 생명체는 없다는 표현으로 단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어쨌건 에이더스는 마법을 좀 부릴 줄 안다 뿐이지 인간이었고, 그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서 성립한 개체였다.
그러니 오롯이 에이더스가 독점한 시간은 없다. 오늘 하루는 과거의 상념에 취하고 이 지독한 취기가 깨면, 다시 현실을 봐야지.
두 번 다시 덫에 사로잡히진 않겠다고, 어느 눈 내리는 밤에 스승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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