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랑하는 라이언….’ 이른 아침이었다. 호숫가 근처에서 가볍게 달리고 돌아와도 연회장이 텅 비었을 만큼이나.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세로로 긴 유리창마다 희석한 것 같은 새벽 햇살이 비치고, 테이블마다 아직 식사가 차려지지 않은 시간이다. 가드너 공방의 가족 부엉이는 인적 드문 복도를 저공 비행하여 연회장 코앞에서 마주친 낯익은 주인 가족의 품에 고스란히 돌진했다. 가볍지 않은 체중 탓에 라이언은 하마터면 고스란히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아무리 반가워도 가족의 품에 머리부터 디미는 짓은 그만두라며 잔소리를 투덜거려도 부엉돌이는 좀처럼 듣지 않았다.
부엉돌이가 물고 온 편지는 하나였다. 드문 일이었다. 라이언의 부모는 편지를 써도 공정하게 자식 모두에게 한 통씩을 적었고, 그웬이 좀 더 사고뭉치였던 까닭에 간혹 호울러가 도착하면 그웬의 앞으로 한 통만 도착하는 일이 잦았다. 라이언은 부엉돌이를 품에 안고 편지 봉투를 개봉하며 느릿느릿 깨닫는다. 자신은 7년 동안 단 한 번도 단독 편지 따윌 받아본 일이 없다. 그것은 부모가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그웬과 달리 반항 한 번 하지 않는 착한 자식이었기 때문이겠으나.
부엉돌이의 부리를 쓰다듬어주고, 편지 봉투 열면 아니나 다를까 짧지 않은 편지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필체를 미루어 아버지였다. 그웬에게 보낼 편지까지 한 봉투에 담아 보내신 것이리라 짐작하고 첫머리부터 읽어나가면, 착각할 틈도 없이 존 오스카 가드너는 단단한 필체로 읽는 이를 호명한다. ‘사랑하는 라이언’. 다른 이름은 없이, 단지 그의 이름 한 토막.
이어지는 근황. 문장 하나마저 고르고 고른 티가 났다. 그것만으로도 라이언은 시대가 시끄러워도 그가 무사하며, 가드너 공방은 지나칠 만큼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두는 길지만, 이토록 기나긴 지면을 할애할 만큼의 정보값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부엉돌이가 라이언 앞으로 된 편지 하나만 전달한 것이 처음 있는 일인 까닭에 라이언은 편지를 끝까지 성실하게 읽었다. 그러는 사이 후배며 동기들이 깨어난 것 같았다. 연회장에 조금씩 사람이 무리 지어 앉고, 편지를 끝까지 읽고 나면 식사가 나왔다.
세로로 깊은 편지 봉투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불룩하다고 생각했다. 봉투는 평소에 아버지가 고르고 사용하시던 것보다 두껍고 튼튼한 재질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목전이다. 졸업하려면 반년이 남았다. 그렇지만, 이 성실한 세공사는 사랑하는 이에게 졸업선물을 보내왔다. ‘네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함을 안다.’는 서툰 문장과 함께.
나 또한 네가 조금 더 어렸을 때 많은 생각을 했다. 너는 그웬보다도 나와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았고, 네가 만든 것으로부터 엿보이는 그 모든 감정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킬리언에게 조금 감사해야 할는지도 모르겠구나. 몇 년 전에 그를 보고서 깨달은 바가 있었거든. 라이언, 너는 녹턴에서 온 아이로구나. 나를 닮은 만큼 에포나를 닮았고, 내 어머니를 닮은 만큼 그 남자를 닮은 게 너로구나. 너는 만나본 일 없는 내 어머니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그러나 나를 사랑하셨듯이 나 또한 너에게 행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겠구나. 이해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한다 말하는 거지….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골자로 삼는다. 라이언이 난처한 만큼, 존 가드너 또한 난처했겠지. 우리는 모두 무수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우주에 났다.
봉투 안에 든 것은 크지 않은 상자다. 달칵, 소리를 내어 열어보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색이 예쁜 오렌지색 보석이 박힌 세공품이 들어 있었다. 라이언은 그 둥근 귀걸이의 정체를 안다. 어머니의 귀걸이. 녹턴의 상징. 가드너와 녹턴의 인연이고, 존 가드너가 에포나 녹턴에게 처음 건넨 관심.
가장 합당한 졸업선물이라고 판단했다. 너를 있게 한 또 하나의 근간이니, 이렇게 적어야겠구나. 라이언, 나는 네가 녹턴으로부터 기인했음마저 사랑한단다. 나는 알지 못하고 에포나는 이해하고 있는 기질을 네가 물려받았음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마음을 세웠다. 졸업 축하한다. 부디 네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네가 원했던 오러의 길을 무사히 완주하기를 바란다. 그리도 때로 도저히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적에는 가드너 공방으로 돌아오려무나. 너의 절반에 해당하는 남은 뿌리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도록, 나와 그웬은 공방을 지키고 있겠다고 약조하마. 그리고 덧붙이는 어울리지 않는 추신, 그런데 솔직히 난 너한테 오렌지색은 너무하다고 생각한단다. 녹턴의 전통이 그렇다니 존중하여 토대를 만들었다만, 네 실력 정도면 알아서 고쳐서 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조금 고친다고 킬리언이 뭐라고 하진 않을 테니…(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