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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No.9/Mirror No.9 Rebellion

Mirror No.9 Rebellion 1.Traveler(7)

 

 제임스 윈프리드는, 최소한 애비게일 크롬웰이 담뱃불이라도 꺼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유스터스가 문이라도 열어두고 가지 않았더라면, 칼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하고 질식해 죽었겠다는 험악한 생각에 도무지 표정을 펼 수가 없었다.

 

 에디스 해터로부터 사건의 추이에 관한 설명을 들은 애비게일은 그 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30분가량 담배 연기를 토해내기만 했다. 파이프 담배 안에 담뱃잎을 몇 번이나 채워 넣고, 새로 불까지 붙여가며 오로지 흡연에 열중하였다. 에디스와 제임스가 그 공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절로 솟구쳐 오를 만큼 답답한 침묵이 공간을 내리눌렀다.

 

 애비게일은 담뱃잎을 세 번 채웠을 무렵에야 몸을 비스듬하게 틀어, 크고 갈라진 눈으로 두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템페온이 사람을 어디다 처분하는지,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보러 왔는지부터가 불가사의로군.”

 

 지하실의 바닥을 헤집고 기어 다니는 듯한 저음의 끄트머리가 갈라졌다. 애비게일은 작게 기침한 후, 도로 파이프 끝을 물었다.

 

 “인간 장사꾼들의 장부 한 줄, 한 줄을 다 읽고 기억해두지 않아. 템페온에 직접 물으러 갔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다 알면서 이러지 말지, 크롬웰 씨. 당신네 일족이 독심술사인 거,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데 무슨 발뺌이야.”

 

 어린 유스터스 크롬웰조차도 말 한마디 떼기 전에 상대가 하려던 말을 가로채며 대화를 끌어가는 고약한 습관이 들어 있는 마당에, 하물며 크롬웰 일족의 심장이라고 하고도 남을 그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어서야 모르는 척 눈감아주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템페온에 잡아간 사람들 어디다 치웠냐고 물으러 쳐들어가면 그놈들이 퍽이나 아이고, 그러셨습니까, 다 알려드립죠, 하면서 넙죽 자백하겠다. 보나 마나 우리 눈을 속이려 들 테니까 이런 사도(邪道)로 온 거 아냐. 당신이라면 인신매매 시장에 관해서 빠삭할 테니까.”

 

 애비게일은 제임스가 성량까지 높여 내지른 소리를 곰곰이 곱씹는 듯, 또 한참 말이 없더니 연기를 두 번 토해낼 무렵에야 웃었다.

 

 “그럼 이렇게도 생각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애비게일 크롬웰을 찾아가더라도, 그가 넙죽 자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뭐, 자백할 것도 없고 해터 가문 가주는 이미 그 정도는 상정하고 온 모양새다마는. 애비게일은 퍽 흥미가 떨어졌다는 투로 사람이 하나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접시에 담뱃재를 털어내었다.

 

 “영악한 인간이로군. 우리 일족은 최소한 동포를 팔아먹진 않아.”

 

 애비게일의 수많은 눈이 자신을 주목하는 듯하자, 에디스의 얼굴 만면에 화사한 표정이 흘렀다.

 

 “설마 이종족 경매에는 손 안 대고 계시다…는, 미덥잖은 이야기를 하시려는 참인가요?” 

 “이종족? 언제부터 재버워키, 그리폰, 그런 놈들이 우리의 형제 동포였다고. 우리의 동포는 오로지 우리뿐이다. 다만 필요하다면 그들이 원하는 형제애를 가장할 수 있을 뿐이지. 그걸 가장하면 어리석은 그들을 뜻대로 움직이기 쉬우니까.”

 “어머나, 그것참 멋지고도 좁다란 인간관계로군요.”

 

 애비게일의 열 번째 다리가 까딱, 불만스럽다는 듯이 움직였다. 자욱한 연기 곳곳을 간신히 파고들며 떨어지는 조명 불빛 아래, 이 공간에서 가장 도드라지도록 새하얀 차림새를 한 이 자산가 가문의 가주께서는 애비게일 크롬웰에게 시비를 걸고 싶은 건지 타협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애매한 말투를 견지했다. 제임스 윈프리드는 칼자루에 왼손을 올려두었다. 차라리 어설프게나마 그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는 편이 좋았을 뻔했다. 그는 얇은 칼자루에서 느껴지는 금속 특유의 차가움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뜨고 애비게일을 올려다보았다.

 

 “뭐, 그 얘긴 됐고. 딴 길로 새지 말자고. 이종족 동포를 팔아치우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신매매 시장에는 손대고 있을 거 아냐, 당신.”

 

 애비게일 크롬웰은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내가 얻는 게 뭐지?” 

 “뭐?”

 “아는 바를 말해서 내가 너희에게 얻을 수 있는 것.”

 

 애비게일은 천장에 닿을 듯한 머리를 숙이고, 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길게 몸을 뉘었다. 그러고도 자리가 부족하여 공간을 감싸듯이 길쭉한 몸체의 끝을 말았다.

 

 “와이엇 윈프리드의 아들을 산 제물로 바칠 작정을 하고 온 영악함은 가상하지만, 에디스 해터. 나는 살아 있는 건 수집하지 않아.” 

 “…잠깐, 잠깐! 해터 씨, 당신, 설마…!”

 

 방 안의 어둑하고 불그스름한 조명 불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초록빛 눈동자가 에디스 해터의 얼굴을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에디스의 얼굴 만면에 희미한 미소가, 느릿한 속도로 번졌다.

 

 망할, 속았다. 머릿속 한가득 험한 말들이 차오르며 표정도 험악해졌다. 그러니까 저 양반은, 애초부터 제임스에게 한 푼도 줄 생각이 없었던 거다. 이 자리에서, 애비게일 크롬웰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팔아치워 청구할 사람 자체를 없애버릴 작정이었으니까!

 

 “죽여서 가져가셔도 괜찮았는데요. 저도 오다가 주운지라.”

 

 에디스의 얼굴 만면에서 화사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애비게일은 기가 찬다는 듯, 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울리도록 혀를 찼다.

 

 “안 되는 게임을 안 할 뿐이야. 아직은 재버워키를 척지기에도, 나탈리 호와 정면승부를 걸어보기에도 우리의 입지가 애매하니까.”

 “어머나, 재버워키 일족과는 별달리 관계가 없는 상품인데요. 나탈리 호의 선원이라 잘못 건드리면 나탈리 호의 선장이 친히 뭍까지 올라오실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요.”

 “…누가 상품이야,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진짜…! 게다가 선장이 미쳤다고 기어….”

 

 제임스의 말끝이 점차 흐려지더니, 이내 애비게일이 내뿜은 연기보다도 더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올라올…수도…있을지도….”

 

 여기서부터는 처신을 잘해야 한다. 저 작자들이 각자 팔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심지어 이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제임스마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값을 재단하고 있는 시점에서 제임스라고 수단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상대가 크롬웰인만큼, 기억을 읽히면 별반 의미가 없을지도 몰랐으나 제임스 또한 팔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협상에 올려보기로 마음의 방향을 틀었다. 애비게일이 나탈리 호의 선장을 꺼려한다면, 그 미친 선장이라도 기꺼이 ‘선원을 구하러 올 수도 있는 선인’으로 포장하여 협상에 올려야 했다.

 

 “퍽이나 관련이 없겠군. 나탈리 호 자체가 재버워키 일족의 영향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해. 페러그린이 승선해 있으니, 아무렴 에드먼드 웨이드도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겠지. 어쩌면 반쯤은 동맹에 가까울지도 모르고.”

 

 애비게일이 턱 힘으로 파이프의 끄트머리를 깨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게다가 저 꼬마가 선장에게 전달받은 서신의 받는 이도 그 빌어먹을 놈의 웨이드다. 중간에 서신이 증발한 것과 증발한 장소가 우리의 아지트 근교라는 걸 알면 솔직히 말해 골치 아파져. 머릿수는 우리가 재버워키보다 많으나 전투력 면에서 차이가 지나치게 커서 말이지.”

 

 와이엇 윈프리드의 아들이 그 망할 배를 타는 해적이 되었을 줄은 몰랐는데. 망가진 파이프 담배는 애비게일의 코앞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 걱정해야 할 건 네 목숨이 되겠군. 나는 나탈리 호의 선원을 어쩔 생각이 없고, 넌 내게서 목숨과 정보를 보장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새로운 대가를 생각해내야 할 거야.” 

 “…곤란하게 되었네요, 기껏 준비한 선물이 불량품일 줄은 꿈에도 예상 못 했는데.”

 

 느슨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에디스는 레이스 장갑을 드리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뚝을 톡톡 두드리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난 템페온이 사람을 그 어떤 인신매매 시장에서도 팔고 있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어요.” 

 “호오. 템페온이 사람을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사채업자 주제에 환금을 안 했을 거다?”

 “네.”

 “근거는?”

 “그편이 재미있으니까요.”

 “웃기는 인간이로군. 그건 짐작이 아니라 신앙이야.”

 “저 보기보다 아주 신실한 사람이랍니다.”

 

 애비게일의 농담을 태연하게 흘려넘기며, 에디스는 찬찬히 손가락을 멈추었다.

 

 “제임스 군을 나탈리 호에 돌려 보내드리죠. 심부름까지 무사히 마치도록 정말로 지원할게요.”

 “…내가 배로 돌아가는 게 저 벌레 양반한테 무슨 득이 된다는 거야, 순진한 양반아….”

 “어머, 꽤 득이 되지 않겠어요? 그 ‘지독하다’는 선장이 뭍에 내려보낼 만큼이나 당신은 어쨌건, 어느 정도로는 선장의 신뢰를 샀다는 의미일 텐데.”

 

 그런 사람을 스파이로 들여보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훗날, 어쩌면 해상 장악까지 꿈꾸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나라의 제3의 여왕폐하, 애비게일 크롬웰께서. 에디스가 처음으로 먼저 애비게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열기가 감도는 방 안의 눅눅한 공기 탓에 살짝 땀이 배어난 손으로 애꿎은 칼자루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제임스는 에디스와 눈이 마주치자 대뜸 미간 사이에 주름부터 잡고 보았다. 이 사람은 대체 자신을 무엇으로 보는 걸까? 당장 팔아버릴 작정으로 끌고 온 사람에게, 에디스는 뻔뻔하게도 이렇게 요구하고 있었다. 말을 맞추라고. 애비게일 크롬웰이 정보를 주고 돌려 보내준다면, 나탈리 호의 정보를 어느 정도 크롬웰로 빼돌려주겠다는 의미로 고개 한 번 끄덕이라고 말이다.

 

 “편지…보낼 수 있는 마법장치가 창고에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자존심에 금이 가고 억장이 무너져도, 결국 제임스는 그런 대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찾아볼게. 아니면 뭐…. 돌아갈 때 사서 들어가든지….”

 

 이 빌어먹을 지하실을 빠져나가면 에디스 해터고 뭐고, 당장 때려치우고 기차역으로 튈 테다. 가지고 있는 푼돈을 털어 기차표를 사고, 남쪽으로 가서 뭘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은 없지만 일단 남부 황야로 가야 하겠다. 수도는 과하게 위험했다. 멀쩡한 아이를 해적선에 태우려 드는 망할 노인네가 있질 않나, 길 가다 주웠다며 사람 하나를 이종족에 팔아먹으려는 나쁜 어른이 있질 않나! 이대로 가다간 여비를 조금 버는 게 아니라 있는 목숨도 잃게 생겼다.

 

 “거짓말이 서툴구나, 꼬마야.”

 

 애비게일 크롬웰의 눈이 가늘어지자, 곤충의 얼굴임에도 어느 정도 표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 선장이 내건 결계를 넘어서는 마법장치를 만드는 사람을 네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구나. 웬디 달링은 북부로 도망쳤다는 모양이니까.”

 “아, 난 북부는 못 올라가. 이 근방보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선장의 마법 때문에 목이 날아간다고.”

 

 그것이 그의 목을 옥죄는 속박이며 감시였고, 선장의 압제가 ‘목을 감싸는 형태’의 액세서리를 취하여 지금도 제임스의 목에 걸려 있었다.

 

 “수단 정도는 그쪽이 좀 마련해주셔. 나 심부름하는 동안에. 어차피 편지 전달하고 나면 도로 여길 지나가야 하니까, 그때 슬쩍 옆구리에 찔러주면 선장 놈이라고 알아차리겠어?”

 

 아무튼, 난 생존이 걸리면 뭐든 열심히 해. 선장 놈 치부 하나하나 알게 되는 족족 넘길 테니까 지금은 날 좀 여기서 내보내줘.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던 제임스의 고개가 똑바로 올라왔다.

 

 “템페온이 정말 사람을 팔아치웠어, 안 치웠어? 빨리 불고 이제 각자 갈 길 좀 가자.”

 “…안타깝게도 헛걸음했구나. 템페온은 단 한 사람도 환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의 시선이 닿는 암시장에서 템페온의 이름이 올라온 적은 없어. 그리고 웬디 달링은 도망쳤고.”

 

 애비게일의 몸체가 천천히 크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부유하는 연기 군데군데, 애비게일이 삼키고 차지하였던 공백이 드러났다. 등에서 뻗어 나온 팔이 여섯 개가 달렸다는 사실을 빼자면, 애비게일 크롬웰의 인간 형태는 그럴듯했다.

 

 도대체 어째서 저런 모습이지? 이쯤하여, 제임스는 유스터스 크롬웰이 내뱉었던 말을 상기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개체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유스터스 크롬웰은 척 보기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임스가 어쩌다 알게 되었던, 그리고 이번에 남부로 내려가면 프림데 역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또 하나의 크롬웰 또한 눈을 벅벅 씻고 봐도 인간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인간형을 유지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굉장히 기이한 현상이다. 이종족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 있다는 재버워키들의 인간형조차 도드라지는 뿔이 이마 위로 솟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크롬웰은 대체 뭘 하고 있는 집단일까? 무슨 실험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으며, 목적은 무엇일까?

 

 밀짚 색깔의 머리칼 사이로, 제임스의 두 눈과는 달리 풀빛에 가까운 눈동자가 나른한 눈빛으로 제임스를 응시하였다.

 

 “템페온의 후원을 받았던 달링을 잡지 않는 이상, 이 도시에 템페온에 관해 똑바로 증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우리도 더 아는 바가 없거든. 그저 그들이 꽤 합법적으로 사업을 승인받았고, 유독 자베이온 같은 별 볼 일 없는 어촌 마을을 상대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밖엔.”

 “배후에 누가 있는지 짐작해보신 적도 없고요?”

 “아무렴, 그들이 사람을 몇이나 잡아먹든 우리로선 알 바가 아니니까.”

 

 다만. 애비게일은 팔 하나로 턱을 괴었다.

 

 “목격된 적은 몇 번 있다더군.” 

 “누가요? 웬디 달링?”

 “아니. 템페온이 받아 간 사람들. 정확한 정보는 아니야.”

 

 정확할 수가 없는 정보라고 덧붙였다.

 

 “애꿎은 타지에서, 닮은 듯한 사람의 흔적이 발견된 사례가 두어번 있었을 뿐이지. 우린 그 이상 소문을 추적하지 않았어. 그런 일은 흔하잖아? 인간은 어차피 다 똑같이 생겼고, 이런 목격 증언은 허수(虛數)가 너무 많거든.”

 

* * *

 

 사이먼은 결국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했고, 침대에 모로 누워 자다 깨는 일을 반복했다. 누적된 피로가 전부 풀리려면, 당분간은 이렇게 고장 난 마법장치처럼 끔뻑끔뻑 조는 수밖에 없을 것도 같았다. 한 번은 깜빡 잠들었다가 30분 만에 일어났는데, 창밖으로 보이던 불그스름한 바다 위로 밤하늘이 푹 내려앉았다. 밤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흐트러져서, 마치 온 세상에 별사탕을 한 상자 쏟아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흰 파도는 바다에 가로로 긴 흠집을 내며 밀려들었다. 사이먼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침대에서 빠져나와, 의자 하나를 질질 끌고 창가 앞에 두었다. 다리를 모아 품안 가득 안고 창밖을 하염없이 응시하였다. 파도 소리 위로 수리부엉이가 우는 듯한 새 울음소리가 깔렸다.

 

 바다만 두고 보자면, 여긴 사람이 죽은 장소 같진 않았다. 자베이온의 바다가 칙칙한 구정물이 밀려드는 듯한 생활의 공간이라면 이 도시의 바다는 비현실적이리만큼 아름다웠다.

 

 사이먼은 그날 저녁, 이곳에서 사이먼의 생활을 돌봐주게 되었다던 또래의 여자아이로부터 ‘템페온’의 의미를 전해 들었다. 고용주가 사이먼에게 가르쳐주라며 심부름을 보낸 건 아니라고 했다. 그저 가엾고, 딱한 처지가 신경 쓰였다고만 했다. 사이먼은 어쩌면 영영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내질지도 모른다면서.

 

 그 여자는 찬란한 곳에서 죽고 싶었던 걸까? 골방에서 죽었다던 그 남자는 또 어떨까.

 

 하기야, 죽는다는 게 사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들의 안은 안식의 대가는 결국 살아남은 자가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그 사람은 그들의 안식을 대가로 미쳤다. 가장 딱한 건, 이렇게까지 하고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그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