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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서원효] 마땅히 내가 돌아갈 곳을 위하여

  그랬던 이유를 답하라 한다면 나는 그렇게 말하겠다. 그날 새벽바람이 좋았다고. 동트기 직전에도 춥지 않은 계절이었고 열어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고 기분 좋아서 바깥을 배회하고 싶어졌다고 말이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없었다. 나고 자란 항구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았고, 그 중엔 서울이 차 없이 지내기 편했던 것뿐이다. 그 무렵엔 파도 소리가 귓가를 스치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던 시절이라서 거대한 강이 관통하는 이 메가시티에 바다는 닿지 않았다는 사실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납작한 이유뿐이지만 이제 와 후회하진 않았다. 서울은 괜찮았다. 사람이 지독하게 많다는 점에서. 어딜 가도, 새벽처럼 일어나 충동적으로 대로변으로 빠져나와도 내가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로 제아무리 일찍 현관을 나선대도 버스 정류장은 일용직 일터로 떠나는 사람으로 들끓고, 백 발자국 걸으면 하나씩 있는 편의점의 불은 훤하다. 저 사람들은 밤새 몇 시간 눈 붙이고 나와 하루를 열겠지. 나는 얼마나 잤는지조차 까무룩 하기만 했다. 잠들기는 했던 건지조차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하나 물고 걸었다. 딱히 가려는 곳은 없었다. 이제는 거리도 금연이라고 어느 공익 광고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빌어먹을. 어차피 정류장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저 사람들조차 아무도 지키지 않는 무용한 법이다. 새벽 거리는 공장 몇 채 들어선 것처럼 연기로 자욱하다. 내가 피우든 피우지 않든 똑같단 말이다. 그 무성의한 연기 더미에 나 하나 보탠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테고. 마치 내가 기도한단들 내 아버지가 지옥에서 구원받지는 못하리라는 것이 자명한 사실인 것처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유를 찾으려고 머리를 굴려댔다. 그러니까, 그거 말이다. 동이 트도록 잠들지 못한 이유, 그런 게 필요했다. 안다고 해서 내일 당장 잠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알면 차라리 속은 좀 편했다. 그게 내가 타고난 가장 악독한 비겁함이라는 걸 아는데 서른 넘어까지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습관을 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었다. 알면 체념이라도 가능하잖아. 좀 덜 억울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똑같이 잠들지 못해 시달리고 앓더라도 그게 죗값이란 걸 알게 되면 감당할 마음이 들지 않느냐는 거다.

 

  빌어먹을,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정리를 좀 해보자면 말이야, 그놈의 염병 같은 시골 동네를 가진 말았어야 했다는 거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추궁 같은 걸 당했으니 잠이 오겠느냔 말이다. 몇 날이 지나고 몇 달이 흐른들 그의 질문이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는 거다. 아우렐리오, 너는 이 시체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냐? 진정으로 그리 믿느냐? 너는 결백하다고.

 

  나는 그 빌어먹을 추궁 앞에 태어나 처음으로 고해했다.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문제는 그것이다. 십자가는 무겁게 나를 내리누르고 수마(睡魔)를 갉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부모 두 사람을 전부 구하지 못했고, 나조차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담배를 세 대쯤 피워내고 나서야 문득 고개를 들었다. 대로변에서 벗어날 요량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내 몸은 알지도 못하는 골목 틈바구니로 들어와 있었고, 동이 텄다. 해는 동녘에 걸려 새벽노을을 말갛게 씻어내었다. 노란 유치원 버스 하나가 곁을 지나가는 통에 몸을 틀었더니 마주한 것은 간판 하나였다.

 

  서울의 하고많은 동네 중에서 이 동네를 고른 이유라는 것도 있었다. 집값이 싸다거나 혼자 지내기에도 인프라가 괜찮았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여기선 성당이 멀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동 하나쯤은 건너가야 있다고 했다.

 

  성당 안에 들어서지 않아도 언뜻 보이는 성모상이 있었다. 그러니까, 변명을 해보자면.

 

  새벽바람이 좋아서 나왔을 뿐이야. 동이 트도록 잠이 안 왔고, 여름 새벽의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았던 것뿐이라고. 걷기에 나쁘지 않은 날씨였고, 우연히 마을버스 정류장 몇 개를 지나치도록 오래 걸었어. 그래. 그것뿐이야. 이 끔찍한 죄악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또다시 당신 앞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어.

 

  이 불경한 아들이 돌아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테니 부디 염려 마소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죽는다는 것은 문학적이다. 나는 스스로가 문학적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아버지가 지옥에 있으리라고 믿는 편인데, 그럼 결국 나 또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태어났던 곳으로.

 

  그게 내가 아버지를 위해 더 기도하지 않기로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