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저택 2층 복도 끝에 그림으로 박제되신 다누 녹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살았던 세기말엔 머글 혈통들이 일으키는 범죄율이 높았어. 나는 눈 감기 직전까지 그것이 진실로 혈통의 문제라고 믿었다.” 저택엔 움직이고 말을 하는 망령 같은 초상화들이 각자의 이상을 논했다. 녹턴은 시대에 따라 변했고, 가주의 가치에 따라 추구하는 사회정의의 개념이 달랐다. 나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초상화 속 잿빛 머리칼의 다누 녹턴의 이상을 좋아했는데, 백 년 넘게 사셨다는 그분께서 말년에 이르러 통찰한 정의관이야말로 녹턴의 근간이라 믿었다.
“믿었다는 건, 신앙이로군요. 사적인.” 초상화 앞에 앉아 짚으면, 그분은 금빛 눈동자로 나를 굽어보며 대답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결과론적인 이야기란 걸 깨달았지. 그건 마법사 사회가 떠받들어온 종교였어. 비논리적이기로는 머글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초상화가 내게 반복하여 가르치고자 했던 이상은 하나다. 반지성(反智性)을 숭배하지 말라. 깨달았다면, 무지를 청산하고 논리에 충실할지어다.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나라는 개인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두렵게 느끼는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더란 말이다. 나의 이름은 누아다 아르게틀람 녹턴이고, 그 이름엔 녹턴의 가치가 스미지 않은 단 한 조각의 개인조차 없다.
그러니 인간의 공포를 상징하는 보가트 같은 생물이 두렵진 않았다. 교수님께서 준비한 옷장을 열고 좌중이 조용해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게 무언가로 변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나는 녹턴을 걷어내고 남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다. 하물며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저 피상적인 것들을 몇 가지 상상했다. 커다란 벌레 같은 게 나오면 좀 난감하긴 하겠군. 아니면, 글쎄, 흐트러진 침대라거나 엉망으로 책이 쏟아진 책장 같은 것, 아니, 이건 공포라기보다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일는지도 모르겠어….
고개를 들면 사위가 어두웠다. 조금 놀라 시선을 돌리면, 두 쌍의 눈이 나를 주시했다. 아니, 네 쌍, 어쩌면 여섯 쌍…. 그림자는 검은 안개처럼 나를 둘러싸고, 어설픈 사람의 형태를 했다. 서로 다른 눈동자를 지닌 사람이자 사람 아닌 것들은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몰락한 녹턴이 무엇을 할 수 있지?”, 작년 크리스마스 연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들었던 말. “녹턴이 아닌 네가 우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단 말이야?”, 부활절 무렵에 연회장에서. “안 그래도 재수 없던 차에 잘됐네.”, 지하 감옥 교실. “식민지 출신 주제에 주제도 모르고”, 아, 이것도 기억해. 슬리데린 휴게실이로군. “녹턴은 끝났어.” 전부, 이 빌어먹을 호그와트에서.
시야가 흔들릴 것처럼 현기증이 일었다. 몸을 낮추고 앉아, 잠시간 교실 바닥을 응시했다. 질문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넌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대체 누구이며, 무엇에 쫓기고 있지?
다수의 폭력성이지. 인류 보편적으로 팽배한 악감정,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반지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어떤 끔찍한 감정들.
“…리디큘러스!”
나의 긍지를 상처 입히고 끌어내리려는 불특정 다수의 악의가 두렵고, 내가 때때로 그들이 모두 내 앞에서 고통받기를 바랄 만큼 증오한다는 사실이 두려운 거야.
나를 압박하던 그림자가 망가진 목각인형처럼 무너져내리고 형상을 잃고 나면, 가쁜 호흡을 내려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반지성(反智性)을 숭배하지 말라. 다누 녹턴께서 세우신 그 찬란한 가치에 나 스스로 목을 매어 죽겠으니 너희는 부디 내가 다름 아닌 녹턴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어다.
나를 배신한 것을 죽을 만큼 후회하되, 내가 느끼는 악의와 분노에 잡아먹히지 말고 오늘도 평화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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