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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리뉴얼] "I realized that in Azkaban."

1.

 

  요크셔의 작은 마을에 번지는 소문은 여름 무더위만큼이나 날로 나빠져만 갔다. 저 마을 중심에 선 루빈스타인 극장의 유일한 아이였던 그 청년이 미쳤다는 모양이더라. 매일 이상한 나뭇가지를 들고 밤늦게까지 마을을 배회한다는 모양이야. 성당에 나오지 않고, 기도를 올리지 않으면서 외지인만 들어오면 눈을 무섭게 뜨고 나무 막대를 들이민다는 거야. 그러다가 얼굴을 한참 살피다가 멀어지는 거지….

 

  마을의 머글들은 모두가 제럴드 루빈스타인의 얼굴을 알았고, 집안 사정을 어렴풋이 알았다. 마법사라는 것은 모를지언정, 어느 해 크리스마스 연휴, 식당에서 소란을 일으켰던 어느 미친 여자의 아들이며, 상냥하고 다정한 넬리와 안톤 부부가 그를 자애로 거두어 키웠다는 것 정도는. 마을은 담장 너머 집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런 만큼 서로서로 속사정을 대충 알았다. 그런 가운데, 식당에서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대던 그 외지인 여자의 아들이라는 청년, 넬리 루빈스타인이 마음으로 키운 아들이 미쳐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번진 것이다.

 

  모두가 오가며 넬리를 연민했다. 넬리는 제리를 탓하지 않았고, 그저 식탁 앞에 앉을 적마다 걱정 한 두 마디만을 조심스레 얹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너무 몰두하지 않았으면 한다거나, 좀 더 제리를 돌보면 좋겠다거나. 그러나 제럴드 루빈스타인은 난생처음 이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작년 가을에 스무 살을 넘겼고, 벌써 지독하게 무더운 여름이었다. 마을 인근 꽃밭에 해바라기가 피고 나무마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이더란 말이다. 나날이 초조했고, 죽을 만큼 불안했다. 이제 곧 그 여자가 올지도 몰랐다. 제리는 그러한 비극적 시퀀스를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막아야만 한다….

 

  “부탁이니까 그 여자가 와도 문 열어주진 말아요. 도저히 요크셔를 못 떠나겠다면, 이모, 제발 이렇게 부탁하니까….”

  “어쩐지 요즘 그 얘길 자주 하는구나, 제리. 그렇지만, 아만다는 내겐 여동생이지 않니….”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어."

 

 제럴드는 그날 밤도 밤늦게까지 극장 인근을 순찰했다. 풀벌레는 소란스럽게 울고, 한적한 골목엔 고양이 그림자가 늘어졌다. 파리한 가로등 불빛 밑에 모여든 날벌레, 발치에는 굴러다니는 자갈이 걸린다. 달빛이 어두워 그림자가 흐렸다. 바람에서 조금씩 가을 냄새가 섞였고, 제럴드는 최소한 올해 여름을 무사히 넘길 수만 있다면 그제야 안도하여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3년에 가까운 시간을 시달렸다. 곧 넬리 루빈스타인이 죽게 될 거다. 아무리 그렇다고 말해봐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전생과 운명이라니, 그런 건 사실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이단이란 말이다.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다. 그러한 성물은 대외적으로 존재가 알려진 바 없다. 모두가 말한다. 제럴드 루빈스타인의 편집증. 혹은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신경질적인 히스테리….

 

  그러할진대 가족을 지켜야 하는 책무는 제럴드 루빈스타인의 몫이다. 가족도 아니면서 가족인 것처럼 받아들여진 사람. 귀가하면서도 지팡이를 들고 알고 있는 갖은 보호 마법을 걸며, 그는 거듭 생각한다. 실패해선 안 된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 사실, 아무리 애써도 자신은 넬리 루빈스타인의 조건 없는 내리사랑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아니지 않나. 그녀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고, 아니, 다 떠나서 제럴드는 넬리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는 빛이 없는 어둠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의 빛은 언제나 넬리 루빈스타인의 얼굴을 했다.

 

  노을 햇살이 반들거리는 유리가 빚어내는 저 둥글고 정감 있는 얼굴의 마리아를 제럴드 루빈스타인은 알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눈에 익고, 포근한 녹색 눈동자를 알았다. 그녀의 모델이 된 이는 넬리 루빈스타인이다. 따라서 저 빛으로 투사한 피에타를 만든 예술가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극장을 지나 뒤편에 자리한 집은 창마다 불이 밝았다. 현관에 들어서면, 코끝을 스치는 매캐한 냄새. 무언가가 불타고 있다….

 

  제럴드 루빈스타인은 가히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현관을 넘어 거실로, 집 안의 가구가 불길에 삼켜지고 있는 살인 현장의 품을 헤집고 들어갔다. 사실은 어려서부터 그는 제법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더랬다. 자랑스러운 예술가가 되어서, 그리하여 넬리 루빈스타인을 그렇게 부르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라고.

 

  “…왔니? 보고 싶었단다.”

 

  아만다 루빈스타인은 불길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지팡이를 든 팔에 화상 자국이 휘감았고, 발치에 색안경이 깨져 있었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 쓰러져 있는 넬리 루빈스타인과 안톤 루빈스타인의 저 처참한 시신….

 

  “역시 당신을 미리 없앴어야 했는데.” 알량한 방비가 다 무슨 소용이랴, 화근을 없앴어야 함이라.

 

"만약 내가 이걸 17살, 아니, 하다못해 스무 살 되던 해에 미리 깨달았더라면 적어도 ‘겁쟁이 제리’는 목숨을 건졌을 텐데 말이야…."

 

  “엄마를 보는데 표정이 말이 아니구나, 제리.”

  “당신 같은 어머니, …둔 적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의 형태를 한 제럴드 루빈스타인의 가장 치명적인 트라우마다.

 

  “그래, 결국 그렇게 주장할 참이로구나. 네가 넬리의 아들이라고.” 아만다 루빈스타인은 소리 내어 웃었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가엾게도, 지팡이 든 손마저 그렇게 떨면서 나를 어떡할 수는 있겠니. 안되었구나. 넌 역시 실패작이야. 그 머글 따위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리하여 괴물은 어머니를 자처하면서도, 또 한편 제 아이를 향해 지팡이를 겨눈다.

 

  “너를 치우고 새 시작을 해볼까 한단다. 어떻게 생각하니?”

 

  이제, 제럴드 루빈스타인에게 선택지는 둘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들고 맞서거나, 그대로 돌아서서 도망치거나.

 

  “네, 이번에도 당신께서 이기셨습니다.” 제럴드의 두 발은 눈앞에 떨어진 운명의 낭떠러지로부터 멀어질 줄을 몰랐다. 독선적 이기주의자, 혹은 고집불통 독불장군, 지독한 그리핀도르일망정 그는 비겁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틀렸다. 제럴드 루빈스타인은 저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에 박제된 넬리 루빈스타인이 곧 살해당할 것임을 알아도, 결국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겁쟁이 제리’는 확신한다….

 

  그리하여 추락한다. 사랑 앞에 명백한 순교다.

 

 

 

 

2.

 

  청문회가 끝나고, C는 사흘 만에 간신히 면회를 허락받았다. 죄인이 아즈카반에 연행되기 직전이었고, C는 그와 마주 앉기 위해 근무 중인 오러국이며 위즌가모트, 가지고 있고 알고 있었던 인맥이란 인맥을 모두 동원하여 갖은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C는 순수혈통이었다. 모친은 유서 깊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던 마법사 가문에 속해 있었고, 부친께서는 다이애건 앨리에서 오래도록 작은 세공 공방을 운영한, 한미할지언정 순혈로써 프라이드만큼은 견줄 데 없을 마법사 가문에서 태어나셨다. 그러할진대 C가 마주 앉고자 작정한 그 죄수는 순수혈통인 이모를 살해했다는 악당인 것이다.

 

  “C 씨, 꼭 만나 보셔야겠어요? 글쎄, 말이 안 통해요, 고집불통이라니까요.” 면회장으로 지정된 지하 위즌가모트 한 구석 작은 방 앞에는 C와 오래도록 함께 일했던 오러국 후배가 감시자로 서 있었다. C는 말한다. “루빈스타인이 고집불통인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았습니다. 다들 겁쟁이니 뭐니, 보이는 대로 착각들을 해서 그렇지.”

 

  지하실의 문턱을 넘으면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로부터 파리한 빛이 쏟아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칼은 엉망으로 흐트러졌고, 동그란 안경에 금이 가 있었다. 창백한 방에 앉은 죄인은 의자에 커다란 몸을 하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사지를 속박당했을지언정, 색이 다른 눈빛만은 형형히 살아 눈앞의 C마저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오랜만이네요, 선배.” 루빈스타인의 대답에 C는 얼굴을 가득 구겼다. “몰골이 그게 뭡니까? 마법부 놈들이 밥 안 주던가요?” C가 묵직한 몸을 앉히면, 오래된 접이식 철제 의자는 녹이 슨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렇진 않았는데, 안 넘어가서.” 루빈스타인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인이 넘기기엔 식량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망할 소리 하지 맙시다, 후배님.” C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것처럼 혀를 찼다. “당신이 넬리 루빈스타인과 안톤 루빈스타인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왔으니까.”

 

  C는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았다. 진실은 손쉽게 증발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살인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모든 정황 증거와 물증은 이것이 피해자 넬리 루빈스타인의 여동생, 즉 아만다 루빈스타인이 저지른 계획 살인임을 가리켰으나 위즌가모트는 진실 앞에 눈을 가리고 혈통으로 죄를 재는 저울만을 가졌다. 증거의 무게는 가볍고, 두 번째 용의자였던 제리 루빈스타인이 타고난 절반의 머글 혈통은 무겁다. 청문회에 참석한 수많은 마법사가 말한다. “순수혈통인 아만다 루빈스타인이 살인자일 리가 없어.” 그리하여 판결은, 제럴드 루빈스타인-결국 루빈스타인에 파문당하고 만, 그리하여 언론엔 더는 루빈스타인으로 소개되지 않는-에게 아즈카반 3년형을 선고했다.

 

  C는 그 모든 거짓말을 믿지 않았고, 휘발된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나 일개 말단 오러, 마법 정부를 이루는 작은 톱니바퀴 하나는 시대를 바꿀 수 없음이라. 다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호흡을 턱 막아왔다. 하다못해 제럴드 루빈스타인이라도 살인을 부정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적어도 법정 최후 변론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 도대체 아즈카반 형을 선고받을 운명을 앞둔 죄수가 허리를 펴고 서서 꼿꼿하게 할 말은 아니지 않았던가. “살인에 관하여 드릴 말씀은 더 없고, 그저 아만다 루빈스타인을 살해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니….

 

  제럴드 루빈스타인의 얼굴에 영문 모를 미소가 번진다. “선배네 어머니 가문이 탐정 사무소를 하신다고 했던가요? 더블린에서.” C는 미간을 좁혔다. 지금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질문이란 말인가? 상식적으로 지금, 루빈스타인이 제게 매달려 해야 하는 말은 최소 아즈카반은 면하게 해달라는 부탁일 터다.

 

   “지금 당신이 우리 집안 호구 조사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후배님. 살려달라는 말씀을 하셔야죠.”

  “선배님도 말단이라 별로 힘은 없으실 것 같은데요.”

  “적어도 당신이 ‘넬리 루빈스타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면 형기를 더 줄여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사족이 길어요.” 루빈스타인은 말한다. “‘그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제가 혐의를 부정해도 판결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죠. 아무렴요, 마법사 사회가 언제 머글 혼혈 따위에게 다정했던가요.”

 

  루빈스타인은 앉아 있던 낡은 철제 의자의 등받이에 체중을 실었다. “200년이나 제자리걸음이라니,” 일찍이 들어본 적 없을 만큼 굽힘 없는 목소리, 고집을 넘어 이젠 투사에 가깝기까지 한.

 

   “이젠 불쌍하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선배.” 그리고 검열 하나 거치지 않아 날것에 가까운 죄수의 목소리와 눈빛을 마주한 C는 생각한다. 아아, 불나방 같은 예술가. 만용이 뼈에 박힌 그리핀도르. 마법의 모자가 사람 하나 망쳐놨군.

 

  “통하지 않을 변명은 안 하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의미가 없죠. 그래도 선배가 와주셔서 다행이네요. 이건 200년 전엔 없던 일인데, 선배 얼굴을 보니 마침 부탁드릴 게 하나 떠올랐거든요.” 루빈스타인은 C를 똑바로 응시한다.

 

  “부디 저의 캐서린을 좀 돌봐주시겠어요? 그리고, 부탁드리건대 제 가족을 찍었던 모든 사진을 불태워주세요. 더는 제가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것이 제게 남은 유일한 죄악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