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군, 얼른 숙제를 끝마치도록 해. 그래야 나랑 스니치 찾기 놀이를 하지.” 그는 엘리엇보다 먼저 호그와트 도서관에 앉아 온갖 책과 양피지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슬리데린 교복을 입은 수색꾼 선배, 올해는 머리칼을 하나로 묶지 않고 반으로 잡아 묶었다. 새빨간 리본이 눈에 거슬렸다. 스펜서는 엘리엇에게 ‘우리 어머니가 골라주신 리본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느냐’고 했지만, 엘리엇은 그 말을 반쯤은 믿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서도 자신을 식별할 수 있게 만들려는 속셈이겠지. 그는 어딘지 관심받고 싶어 하는 면이 있었다. 수색꾼이라면 예외 없을 일이나.
그와 나란히 앉은 엘리엇은 스펜서를 무심한 눈길로 힐끔 바라보고는, “제가 아니라 선배가 문제거든요.” 그렇게 말했다.
“저는 일반 마법 과제만 하면 오늘은 과제 끝이라고요.”
“바보 라이더 군, 지금부터 공부해두도록 해. 안 그러면 내 꼴이 난다고. 공부는 잘하고 있냐며 삼촌한테 호울러 따윌 받게 된다니까.” 책상에 엎어져 제 팔에 뺨을 묻은 스펜서의 손이 깃펜의 날카로운 펜촉으로 척, 엘리엇을 가리키며 까딱거렸다.
“저는 머글 태생이라 선배네처럼 무슨 삼촌이 가문의 가주라 엄격하셔서 성적으로 잔소리하시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저희 부모님은 공부는 못해도 괜찮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쪽.”
“좋겠다. 나랑 집을 바꾸자.”
“싫은데요. 마법사 가문은 복잡해서 제 취향 아니거든요.”
“진짜로 바꾸자는 말이겠어? 나도 우리 엄마아빠를 사랑해요, 바꾸면 울 거야. 무정한 액셀러레이터.” 스펜서는 크게 하품한다. 매번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엘리엇보다 먼저 스니치를 잡아내던 큼직한 손은 본인의 곱슬 머리를 마구잡이로 헤집듯이 쓸어넘겼고, 결국 그는 상체를 똑바로 일으켜 앉았다.
“근데 라이더 군은 무슨 숙제야? 레포트? 일반 마법이면 뭐, 주문의 유래 따위를 알아 오라고 그러시든?”
“아뇨, 경험이 마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적어오라던데.” 엘리엇은 스펜서 쪽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펜대를 돌린다. 두 다리로 균형을 잡던 의자는 앞뒤로 느릿느릿 흔들렸다.
“우와. 거참 추상적인 레포트 주제네.” 스펜서는 턱을 괴고 한 번 더 하품하다가, 마지못한 얼굴로 <맨드레이크를 돌보는 방법>이라는 책의 표지를 들척였다.
날이 저물었다. 마법사의 손짓 한 번이면 오래된 표지를 단 책은 책장을 떠나 허공을 유영한다. 지팡이를 든 엄격한 얼굴의 사서가 도서관 곳곳을 유령처럼 걸었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면, 책장마다 불그스름한 불빛이 들었다. 폐관까지는 시간이 좀 더 남았다. 엘리엇은 책장을 등지고 앉아 스펜서의 졸음이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기지개를 켰고, 수마가 들기 시작한 눈을 깜빡였다.
“뭐, 흔히들 마법은 정신에 기인한다고 하긴 하지.” 스펜서는 큰 관심은 없는 투였다. “그 지점에서 생각하면 정답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다(Yes)’ 아니겠어? 그냥 대충 써서 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걸.”
“죄송, 저 이런 질문 받으면 왠지 골몰하게 되는 타입이라.” 엘리엇은 펜대를 똑바로 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가라앉는 침묵. 스펜서가 무성의하게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갉았다.
“마음에 안 들어?” 그는 물었다. “네, 뭐, 조금요.” 엘리엇은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원하지 않은 슬픔을 겪었던 사람은 똑바로 된 마법사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
“운이 좋아서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만이 진정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고. 별로 다정한 결론은 아니지. 라이더 군 취향은 아닌 것 같네.”
“전 사람에 관한 한, 환경 결정론자는 아닌지라.”
“라이더 군이야 늘 극복하겠다는 사람이잖아? 그럼 그렇게 써.” 맨드레이크에 관한 정보를 양피지 귀퉁이에 정리하던 스펜서는 키득키득 숨죽여 웃었다.
“‘저는 일곱 살 때부터 빗자루를 탔다는 모 수색꾼 선배가 저보다 뛰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명은 퀴디치로 하겠습니다’라고. 내가 너보다 훨씬 오랫동안 빗자루를 탔고, 마법사 가문에서 자라서 조금만 잘 날아도 온 집안의 친척 어른들께 칭찬을 받으며 자라난 것도 사실이지만,” 엘리엇은 양피지 머리에 레포트의 제목이 될 문장과 이름을 적으며 말을 받았다.
“비록 저희 부모님은 당신의 가문과 달리 퀴디치가 무엇인지 몰라서, 제가 추락할까봐 언제나 노심초사 소식을 기다리시지만, 때로 그것이 제가 퀴디치를 계속해도 좋을지 고민하게 만들지만, 이 환경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적인’ 일이라고 믿는다고 말이죠.”
“그래, 그렇게. 뭐, 빗자루 타는 건 지팡이 휘두르는 마법하곤 다르다지만, 넌 어차피 무슨 분야든 환경보다 노력이 중요하다고 우길 거잖아. 그러지 않고서야 나한테 열 번을 깨지고도 퀴디치 하겠다고 날아다니진 않겠지.”
“우기다니 무정한 말씀.” 양피지 위로 그림자는 늘어진다. 잉크를 밝은 색으로 골라 다행이었다고, 엘리엇은 과제와 무관한 상념에 젖었다.
“노력이야말로 이 시대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을 뿐이에요.”
“그래, 그래.” 스펜서는 성의 없는 목소리를 냈다. “라이더 군의 상자 밑바닥에 남아 있다는 희망은 헛된 희망이 아니어야 할 텐데 말이야….” 네가 붙잡아 안고 바닥까지 긁어가며 가치를 찾고 있는 그 상자가 판도라의 것이어서는 안 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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