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듣는 엉뚱한 질문이란 질문은 사도들에게 다 듣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애가 어쩌다 그런 질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알지 못한다. 북유럽의 토르라는 그 애는 나와 띠동갑 가깝게 나이 차이가 났고, 벌써 스물다섯이 되어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는 아니게 되었지만, 그 머릿속이 돌아가는 구조를 알 수 없다는 지점에서 아직 까마득히 어린 소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상황을 되짚어보자. 그 어린 사도가 한국엘 왔다. 틈새가 벌어지면 어디든 움직이는 게 12사도이므로 그건 별반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 시기엔 프로메테우스가 한국에서 벌어질 재앙을 예언했으므로, 너도나도 거대한 틈새를 메우거나 살펴보기 위해 한국에 발을 들이던 시기였다.-그 애가 보호자 없이 혼자 온 건 처음이었지만, 이 점을 지적하니 그는 자신이 스물다섯 되었다는 점을 상기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처음 만나고도 10살을 더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틈새를 보러 가기 전까지 살짝 시간이 떴다. 그 애는 생각을 알 수 없을 만치 무뚝뚝했지만, 한때 체육계에 있었던 사람답게 부지런했고 나는 열 살은 어린 그가 낯선 나라에서 혼자 멍청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 안타깝게 생각할 만큼의 정신머리는 있었다. 무대는 호텔이다. 그 애는 딱히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 방송을 틀어놓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 애가 묵고 있던 그 방에 들러 멀뚱히 서서 물었다. “관광이라도 할래요?” 그랬더니, 그 어린 사도가 눈을 느릿느릿 깜빡이다 되물었다. “뮤지컬인가요?” 나는, 질문의 발화 의도를 알 수 없어 한참 난처한 얼굴을 해야 했다.
“아니, 아무리 제가 상도덕이 없는 놈이어도 영국에서 오늘 입국한 외국인한테 한국어로 된 뮤지컬을 보자고 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왜 대뜸 뮤지컬인데요?”
“어라? 왠지 그거일 것 같았는데. 아깝다.” 그 덩치 큰 어린애는 리모콘의 버튼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고,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냥, 한국에 오면 찬이 씨가 뮤지컬 보여주실지도 모른다고 살짝 기대했거든요.”
“…거 음악 좋아하셨던가? 축구 좋아하셨던 건 기억 나는데.”
“축구 여전히 좋아해요. 공룡도 좋아하고.”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나를 등지고 앉은 채 하품을 쏟아냈다. “제가 본질적으로 신인가 인간인가, 그런 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찬이 씨가 보는 저는,” 그리고 말이 끊어졌다. 나는 호텔 현관에 적당히 기대어 서서 이 템포 느린 북유럽의 신격이 제발 하던 말을 중단하고 생각에 잠기는 버릇을 좀 고치면 좋겠다고 바랐다.
“…아마도 신이거나, 으음, 아니면 성가시고 골머리 아픈 애새끼거나, 그럴 수 있겠지만….”
“이봐요, 저 당신 그렇게 미워하진 않습니다. 싫어하지도 않고요.”
“어라? 그럼 정정. 귀여운 우리 편이거나.” 맥빠지는 웃음소리가 났다. “아무튼, 그렇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저는 공놀이 좋아하고, 필드에서 달릴 때가 제일 좋고, 사람 좋아하고, 공룡도 좋아하고, 그런 주제에 답답하게 철학적인 개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토르라는 신격과 저의 이런 기질은 합치하지 않잖아요.”
“요컨대 인간이시다?”
“음, 인간이면 좋겠다가 더 정확하겠네요…. 이런 얘길 하면 다들 절 탐탁잖게 생각하시지만.”
내가 그에게 사도라는 사실을 알렸다. 눈앞의 덩치 큰 소년이 14살이 되던 해.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눈이 내렸고, 그 애는 자기 눈에만 보이는 온통 금이 가고 뒤틀린 세상이 실존함을 인정해야 했으며,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가 사도라는 사실을 알려주러 왔던 멕시코의 케찰코아틀은 넉살 좋고 튼튼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인정할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었지만, 나는 그때도 스트레스에 내몰려 있었다. 지금보다 30cm는 더 작았던, 우리나라로 치면 고작 중학생이었을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멍청하게 공 쫓아 뛰어다니면서 평범한 척한다고 네가 사람 새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비겁한 어른답게 그 말을 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지만, 아이는 기억했다.
나는 10년이 지나 그와 다시 만난 지금에서야, 그 애가 그날부로 축구를 관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른으로 자라난 이 어린 사도는 그런지도 10년이 지났다며 태연하게 굴었지만, 어쩐지 그렇다는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도 책망받는 기분이었다. 그가 가끔 이런 식으로 축구 얘길 하거나, 신화와 설화, 자신의 운명과는 무관하게 ‘인간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들에 관하여 늘어놓고 논할 적마다 반쯤은 죄인이 되는 거다.
우리는 인류가 인간의 틀을 씌워 주조한 상상의 산물이다.
“아무튼, 그때 저한테 사도라는 얘길 해주러 오셨을 때요.” 그는 자신만의 박자와 리듬을 고집스럽게 지켜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생각이 발목을 잡는 순간엔 말하던 도중에라도 문장을 분질러버리고, 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차오르면 느릿느릿 쏟아내는 방식으로. “휴대전화 벨이 뮤지컬 곡이었던 거 같아서. 몬테크리스토 백작.” 그 애는 모든 걸 기억했다. 나는 그날, 전화가 울렸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다.
“그랬는데, 15살 때 다시 만났을 적엔 또 곡이 바뀌어 있길래. 그건 뭐였더라, 오페라의 유령…. 유명한 노래였는데.” 마음에 안 드는 구간에서 정적이 벌어진다. “그때 그냥 살짝 확신했어요. 아, 찬이 씨는 음악을 좋아하시는구나. 그 예술이 이 신경 예민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있구나….”
그는 우리가 인간도 될 수 있고, 신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선택할 수가 있다고. “전 축구가 좋아요. 제가 인간이라는 확신을 주거든요. 절대다수와 같은 스포츠에 열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와 인류의 사이가 많이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뭐든 될 수 있다는 건, 이도 저도 아니라는 의미일 텐데. “그리고, 으음, 인류는 음악도 많이 좋아하죠. 그게 찬이 씨와 인류의 교집합이고.” 이 불쌍한 어린양은, 아직 어리석은 꿈에 빠져 있다. 과거의 내가 그 작던 아이에게 그런다고 사람 새끼가 되는 건 아니라고 일렀음에도.
“요즘은 음악 안 좋아하세요? 노래는 안 해요? 잘 부르신다고 들었는데….”
나를 기른 어머니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셨다.
“시간이 흐르니 다 지나가는 열병이던데.” 나도 사람 새끼라는 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때는.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내 어깨 위로 세월이 얹혀갈수록 드는 확신이 있다.
인간이 되는 게 어렵지, 신이 되는 게 어렵겠나.
“안 합니다. 뮤지컬도 안 보러 다닌 지 한참 됐고요. 어차피 그런 거, 다 질리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멍청한 소리 말고 차라리 당신 좋아한다는 공놀이나 하러 가자고 하십쇼, 그때 윽박지른 건 미안하니까 한 번은 어울려드릴게.”
'커뮤니티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환찬] Noise (1) | 2023.05.14 |
---|---|
[도환찬] 환희의 송가, 프리드리히 실러, 혹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 (0) | 2023.05.14 |
[엘리엇/리뉴얼] Le Cimetière Marin (1) | 2023.04.08 |
[엘리엇/7학년 STORY] 행운론 (0) | 2023.04.08 |
[엘리엇/리뉴얼]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는가 (0) | 2023.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