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돌아오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점멸하듯이 현관을 환히 밝히던 불빛이 스러졌다. 「스타니아」는 얼마 전에 마음에 들어 샀던 실내용 슬리퍼를 신었고, 벽을 더듬어 손끝의 감각만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거실 천장에 드리운 커다랗고 둥근 등에서 흰빛이 쏟아졌다.
새벽 깊은 시간이었다. 「마법소녀」가 필요한 현장이란 게 으레 그러했다. 다른 평범한 직장과 달리 출퇴근 시간이란 게 없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스타니아」는 그것이 언제든 마땅히 뛰쳐나갔다. 사양하는 바 없이 곤란한 이들을 구원하고 고맙다는 말을 양분 삼아 터무니없이 공허한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을 밝히면, 모든 물건이 「스타니아」의 짐작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양이가 엎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던 작은 화분은 엎어져 있었고, 오늘도 여지없이 강아지는 소파의 손잡이 부분에 선명한 잇자국을 남겨 놓았다. 그 모든 것이 「스타니아」의 손길이었고, 간신히 함께 기대어 사는 반려동물이 남긴 흔적이다. 아주 오래도록 「스타니아」의 거처는 타인의 숨결 하나 있던 적이 없었다. 그럴진대 아이오나 캠벨의 증거 같은 것이 무엇 하나 남아 있을 리는 더군다나 없었고.
아이오나? 「스타니아」는 무심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가, 문틈으로 새는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만큼이나 메마른 투로 그 이름을 곱씹어보았다. 제법 오랜만에 떠오르는 이름이다. 부모라는 타인이 그녀를 규정했던 낡고 오래된 이름을, 「스타니아」는 잊고 살았다. 별 조각이 아닌 한낱 인간의 이름은 때때로 어떤 개념을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과 함께 역습했는데,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 이름은 ‘매번’이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을 만큼, 떠오를 적마다 「스타니아」의 잠을 갉아먹었다. 세상 어디에도 아이오나 캠벨의 흔적이 남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그 애는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었다고….
냉장고에서 캐러멜 푸딩을 꺼냈다. 부엌에서 조그마한 티스푼 하나를 깨끗한 물에 씻어내고, 푸딩을 한입 물었다. 「스타니아」는 소파에 푹 몸을 묻고 앉아 푸딩에 둥근 스푼 모양으로 흠을 내어가며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그 어떤 기준으로도 인간이라 정의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왔다.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을 넘어, 단 한 조각만 더 손에 넣는다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그 자체, 모든 이의 메시아가 될 터였다.
저 밤하늘 끝까지 이르도록 내뻗은 별 무리 반짝이는 길에 아이오나 캠벨은 무가치한 사족이다. 「스타니아」는 티스푼의 둥근 머리를 물었다. 티스푼을 한번 무의미하게 튕기면, 그녀에게 별 조각을 내어주고 스러진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오나는 말했다. “그 애가 내어준 게 아니지. 그건 명백한 약탈 행위였어.” 「스타니아」는 개의치 않았다. ̄ 또 한입 달큰한 푸딩을 떠내면,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뒤엉킨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번쩍였다. ̄아이오나는 말했다. “그것마저 내 것이 아니지. 빼앗아 왔잖아.” 그게 「스타니아」가 아이오나를 성가시게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
편의점에서 산 푸딩 하나를 말끔히 비워내고 나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커다랗고 불가해한 존재가 있었다. 우리가 별이라고 믿었던.
“넌 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거야?” 아이오나 캠벨의 목소리는 추궁한다. 「스타니아」는 그녀가 어째서 사라지지 않는 환각이며 환청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스타니아」의 태생적 한계다. 그녀는 불행하게도 인간으로 나고 자랐다. 꿈꾸는 이상은 비정하도록 차디찬 은하수에 있는데, 그녀의 정신을 키워낸 모든 가치는 이 보잘것없고 남루한 인간 사회에 있다.
“메시아지. 물론. 내게 별 조각을 넘겨줬던 그 애의 유지를 잇는 거야.”
말간 형광등 불빛 아래서 신기루처럼 아이오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거짓말하지 마. 자기 합리화를 하고 싶은 거겠지. 설령 우리가 신이 되어도 우리가 자행한 것이 비인간적인 약탈이고, 그 이기심이 그 애를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텐데도.”
그리고 네가 정말 별이 되는 그 순간, 네가 마지막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는 건 내가 될 거야.
「스타니아」는 아이오나 캠벨의 호소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애의 목소리는 들리기 시작하면 늘 똑같은 소릴 했다. 「스타니아 캐러멜」 또한 인간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녀가 저지른 일이 영웅적 계승이 아닌 살인이라는 사실을 자백하라는, 어떤 인간성의 요구다.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르겠어.” 「스타니아」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르고 싶은 거겠지.” 오늘따라 아이오나의 음색은 지친 것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스타니아」는 푸딩이 들어 있었던 플라스틱 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쓰레기통 바닥에 통이 부딪는 소리가 나면, 환청 같던 목소리는 금이 가고 요란스레 깨어져 흩어졌다.
그러니까, 역시 아이오나 캠벨은 사족이며 허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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