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룻배를 타고 커다란 강을 건너면 석벽을 세워 만든 고성이 거기에 있었다. 학교는 스코틀랜드에 있다고 했다. 가을 첫머리였고,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크거나 그만큼 작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숲지기가 치켜든 불빛을 따라 걷는 내내 살갗에 닿는 공기가 습하고 차가웠다. 지하 계단을 오르면 밝게 빛이 쏟아지는 복도가 나왔다. 벽마다 걸린 액자.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피고 그림 속 망령들은 벌써 거나하게 셰리주를 퍼마셔 붉은 얼굴을 했다. 그들은 그림 같은, 사실 본질적으로 유화 물감일 잔디밭에 엉겨 붙어 쓰러져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올해도 신입생이 오는군.”, “올해 슬리데린은 몇 명일까? 그리핀도르는?”, “내기할까? 1갈레온 씩 거는 거야….” 그리고 시작되는, 무의미한 도박 여러 판.
아이들은 기숙사 배정식을 앞두고 겁에 질린 눈들을 했다. 연회장의 문을 열고 앞장서는 교감의 뒤에서 빨간 머리 아이가 이제 곧 연단에 트롤이 나올 거라는 소릴 했고, 공포는 연회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동안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나로 말하자면 아이들 무리 가장 뒤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느긋하게 걸었다. 재고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트롤이라니. 인구도 적은 영국 마법사 사회가 아이들의 절반을 트롤의 저녁 식사로 바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바보들의 불안은 과연, 나의 일은 아닌 것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생판 처음 보는 눈망울들이 우리를 시험하듯이 쳐다보았고, 새까만 로브에 뾰족한 모자까지 썼던 교감이라는 마법사는 다 낡아 끝이 떨어진 모자 앞에 섰다. 알파벳 순으로 성을 부르고 호명한다. 연회장 한가운데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양들의 수는 눈 깜짝할 새에 줄어들었다. 모자는 우리를 네 분류했다. 나는 무심한 눈길로 모자를, 혹은 모자를 쓴 얼굴 모르는 학우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높고, 샹들리에는 별빛 같은 빛을 쏟았다. 연단은 무대 같고, 마법에 걸린 연회장 천장은 조명처럼 호그와트라는 무대에 새로 오른 이들을 비추었다. 모자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테이블로 흩어졌다. 모두가 기립박수, 그리고선 사람들에 파묻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달바흐 녹턴.”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동그란 의자에 앉는다. 내려앉는 화려한 암전.
2.
여기서 밝히는 사실 하나. 나는 호그와트에 관해 고모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어딘가 늘 아프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간병하는 일에 몰두하셨다. 내게 말을 가르친 이는 집요정 베티와 그녀의 어머니였던 카를라로 일 년에 두 번 더블린을 방문하는 고모와 고모께서 맡아 돌보시던 모리안을 예외로 두자면, 과장 조금 보태어 집요정 아닌 존재와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는 배정 모자가 거의 처음이었다.
3.
“그리핀도르?” 모자는 11살 아이들의 머리에 맞지 않았다. 누가 써도 코끝까지 덮이기 일쑤였고, 모자 안에선 퀴퀴한 냄새가 나서 유쾌하지 않았다. 사위는 눈을 감은 것처럼 어두컴컴하고, 모자는 나를 평가하듯이 들여다보고 속삭이는 것이다.
“너도 그렇고 다누도 그렇고 왜 그리핀도르를 원하지? 거기 가봐야 얻을 거라곤 만용밖에 없다는 걸 사실은 통찰하고 있는 꼬마들이.”
“거기가 가장 재밌어 보이잖아.” 투덜거렸다. “모리안이 래번클로에 있는 건 알지만, 그 앤 날 별로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거짓말에 능하진 않구나.” 모자는 말했다. “그냥 원하면 달라고 떼를 쓰렴. 아이답게. 넌 래번클로라고 적응 못 할 인사는 아니니 말이다.”
모자가 벗겨지면 샹들리에가 쏟아놓는 별가루 같은 빛이 시야에 든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지고, 래번클로 테이블은 환호로 법석이었다. 마지못해 고개를 돌리면 마치 회색숙녀라도 된 것처럼 안색마저 하얗게 질린 모리안 녹턴이 있다. 샹들리에보다는 조금 더 탁하고 연한 그 애의 금빛 눈동자는,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4.
여기서 하나 더 밝히자. 모리안 녹턴은 나를 싫어한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반비례하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척을 하면 대화는 나눌 수가 있어서, 나는 모리안을 쫓아다니다가도 어느 날에는 어김없이 그녀를 외면했다.
A.
그 애의 이름은 달바흐 킬리언 녹턴이라고 했다. 나의 친부모는 직장 사정으로 미국에서 일했고, 그 무렵 나는 더블린의 명탐정으로 유명세를 누렸던 다누 녹턴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열 밤만 자면 돌아온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일곱 살 무렵 이미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미국 시카고에 있고, 1년에 한 두 번 나를 보러 왔다.
달바흐는 나를 맡아준 다누 녹턴의 조카다. 그 애의 아버지 마느 녹턴은 더블린에 계셨고, 어머니 캐런 녹턴은 한미한 가문 출신이라 그랬는진 몰라도 가문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병약한 녹턴 가주, 남편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만 열중하셨다. 눈에 빤히 보이는 정략혼의 흔적. 집요정 그리고 살아 있지도 않은 초상화 말고는 변변찮게 사람을 사귀어본 적도 없이 자란 그들의 괴물 같은 아들.
나는 더블린 저택에 마느 녹턴 부부가 건재했기 때문에 달바흐 녹턴이 미웠다.
그리고 한편, 마느 녹턴과 캐런 녹턴이 그 애의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 애가 좋았다.
5.
“더블린에 안 가도 되겠어?” 성탄절이 목전이었다. 호그와트를 가꾸는 수많은 집요정은 학생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부산스럽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늘려나갔고, 연회장엔 이미 양말과 크리스마스 리스가 한가득 걸려 있었다. 나는 래번클로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 내 곁에 앉은 모리안이 아닌 커다란 트리를 세우느라 낑낑거리고 있는 래번클로 사감 교수를 쳐다보고 있었고, 종이 새를 접어 날려 교수를 깜짝 놀라게 하면 저 커다란 트리가 넘어져 한바탕 소란이 일 것 같다는 엉뚱한 계산이나 두드리는 중이었다.
모리안이 5학년이고, 내가 4학년이던 시절의 일이다. 그녀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테가 두꺼운 안경을 끼고선 O.W.L 공부에 열중했고, 나는 기어이 종이 새를 접기 시작했다.
“새삼스레 그건 뭐하러 물어?”
“너희 아버지께서 슬퍼하실걸.”
“내가 안 온 줄도 모를걸.” 손톱을 세워 새의 부리에 각을 잡으며 대답했다.
“설마. 온 줄은 아시겠지.”
“그따위 학교 얼른 졸업해서 탐정 사무소나 물려받으라고 역정이나 내시잖아.”
종이 새는 연회장 테이블을 종단하지 못했다.
“사무소만 물려받을 수 있으면 내가 아니라 너여도 되는 거지, 우리 부모님 입장에선. 그게 본질적으로 ‘내’가 온 줄 아는 일일까?”
B.
달바흐가 접은 새는 날개를 요란하게 퍼덕였으나 그뿐으로, 중간에 마법의 힘을 잃고 추락했다. 래번클로 반장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찻잔으로 달바흐의 종이 새가 떨어지기라도 했나 보다.
“…킬리언.” 달바흐의 친구들은 그 애를 그렇게 불렀는데, 난 가끔 그를 그렇게 부르는 아이들을 마주할 적마다 달바흐 녹턴이 왜 슬리데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나 했다.
“왜?”
“크리스마스에 뭐 받고 싶은 건 있어?”
시선은 올곧게 마법의 역사를 정리한 필기에 내려둔 채로 물었다. 그러면 꼭 달바흐는 고개를 뒤로 조금 젖혀 웃었고, 그러면서도 기특하게도 나를 보지는 않았다.
“넌 이상하게 내가 불행하면 행복해지는 사람이지.”
“어떡하겠어? 난 너만큼이나 행복이 뭔지 몰라. 아는 거라곤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과 고독사할 게 뻔하다는 사실뿐이야.”
6.
나는 래번클로 반장이 종이 새를 날린 범인을 찾으려고 씩씩대는 모습을 턱을 괴고 앉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고, 모리안 녹턴이 미친 여자란 생각이나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됐어. 그걸 준비할 시간에 그냥 즐겁게 보내, 모리안.”
“지독한 요구네. 뭘 해도 별로 즐겁지 않다는 거 알면서.”
“그럼 아주아주 불행한 나를 보여줄 테니까 나하고 데이트할래?”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데이트 신청이네.”
“그렇지만, 모리안.” 궤변. 뒤틀린 관계. 그러나 분명히 우리 사이엔 명백하기 짝이 없는 유일한 진실.
“나를 사랑하잖아.”
네가 아는 한 가장 불행하고, 너보다 가엾은 사람이라고 넌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C.
때로 생각한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 그들의 천적은 다름 아닌 자아로, 도저히 수십억에 달했을 그 모든 인간이 외로움에 몸이 뒤틀리다 못해 숨이 막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크고 작게 불행하다. 슬픔에 겨운 하루를 살고, 나를 미워하거나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아니, 일반화는 말자.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얼굴은 좋다고 생각해.” 대답하면, ‘킬리언’은 꼭 트집을 잡았다. “내 얼굴은 잘 보지도 않으면서.” 머리 좋고 눈치가 기민하여 불행을 자처하고야 마는 어리석은 사람.
7.
나는 적어도 우리가 사랑할 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외로움에 못 이겨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좋아한다고 최면 같은 말을, 그렇게 말함으로써 무언가 결여하지 않은 인간인 척 탈을 쓰고 싶어 안달하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장난 같은 말이 아닌 사랑에 빠질 것 같진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쏟아보고 싶었던 거다. 사랑한다고. 내 삶에는 평생토록 그 말을 나누어줄 타인이 부재했고, 그건 모리안이 아니어도 되었겠지만, 그냥 그저 별달리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말하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언어마저 쇠퇴하고 잃어버릴 것 같아서, 마치 모리안 녹턴을 이용하듯이….
D.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킬리언과 함께 살게 될 것 같다고 막연히 믿었다. 왜냐하면, 그래. 인간은 사랑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동지이니까. 언제든 돌아보면 돌이킬 수 없이 외로운 킬리언이 있고, 그렇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 수가 있었으니까.
8.
“그리하여 마지막 의문 하나. 인간은 모르는 것을 홀로 깨우칠 수 있는가?” 묵직한 침묵. “사랑받아본 적 없는 이는 사랑을 할 수 있나?” 또, 묵직한 무언. “스스로가 외롭고 우울하다는 사실만을 알았던 우리는 서로를 정녕 사랑했을까?” 완연한 정적, 그리하여 ‘제목’으로 돌아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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