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 퀸시는 더블린으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부엉이를 보낸 지 일주일만이었다. 영국 마법부 공무원들은 말단 오러의 책상 위에 어떤 부엉이가 앉아 있든 개의치도 않았다. 숨이 막히고 서글프면서도 때로는 편리한 시대다. 그녀는 그날 말라비틀어진 쇠고기를 빵 사이에 끼운 어설픈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고, 가장 가까운 시일에 아일랜드를 방문하겠다는 짤막한 답신을 휘갈겨 더블린의 상징 같은 부엉이의 다리에 묶어 보냈다.
차곡차곡 쌓아만 두었던 휴가를 몰아서 쓴다고 하니, 아무리 자리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온 머글 태생 말단 오러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상사일지라도 한 번은 물었다. “나흘이나? 무슨 일인데 그래?” 리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여행 좀 다녀오려고요. 몇 년 일만 했더니 우울해서.”
“어디로?”
“아일랜드요. 고작 나흘로 이집트 같은 덴 못 가죠.”
“더블린인가?” 오래도록 수사관 자리에 앉아 있던 이의 눈은 무의미하게 예리할 때가 있었다. 리나는 그가 책망하려 되물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의심을 사기에는, 오러국 내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꼴통에 가깝다는 것도 숙지하고 있던 터다.
“…네, 뭐.”
“자네도 참 유별나지.” 상사는 휴가계에 사인하며 메마른 눈빛으로 리나를 올려다보았다. “자네 양친이 머글인 이상 승진은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사건에 목을 매진 마. 상부에 예쁘게 보이고 싶으면 테러 집단을 쫓든가, 형사 사건을 맡더라도 순수혈통의 피해를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게 나을 텐데 자넨 꼭 머글 태생이나 혼혈이 피해자인 작은 사건에 집착해서는….” 그리고 나이 지긋한 상사는 짐짓 안타깝다는 것처럼 혀를 차는 것이다. “오러국에 들어왔으면 오래라도 버텨야지.”
걱정하는 척을 하시더라도 좀 그럴듯하게 하쇼, 거참. 그녀는 속으로 험악한 말을 삼켰다. 평생 순수혈통 가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 남자가 머글 태생인 리나 퀸시의 출세를 걱정할 리는 만무하다. 사인한 휴가계 양피지를 책상 한구석으로 치워버리면서 살진 눈두덩에 스치는 눈빛은 명백히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꼴통 머글 태생이라도 새 사람 가르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도 리나는 오늘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함구했다. 지옥 같은 오러 시험에 통과하고 오러국 말단에 눌러앉기로 다짐했을 적에 이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광경이었다. 오러국을 드나드는 모든 마법부 직원들이 리나 퀸시의 기행을 알고 있다. 그녀는 아무도 취급하지 않는 머글 혈통이 연루된 사건만을 주워 뛰어다녔고, 그걸 하려고 오러가 되었다. 누구 하나쯤은 수모를 감수하고 마법부에 있어야만 억울한 이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바다 건너 더블린엔 그녀의 최대 조력자가 있었다. 사적인 신뢰도는 탐탁지 않고 신경 예민하며, 그녀의 혈통을 빌미로 대놓고 불친절하기까지 한 남자가 하나. 따져보면 제 눈앞에 앉아 있는 늙은 상사와 다를 바도 없는 사고 체계를 갖추었지만, 모든 이는 녹턴 앞에 평등하다고 했던 기묘한 탐정. 그와 협력하여 해결한 사건이 열 건 가깝게 쌓이니 상사는 더블린이라는 말만 들어도 손쉽게 착각했다. 둘이 또 쓸데없는 사건 하나 물었군. 리나 퀸시는 그가 오해하도록 두었다. 해명할 이유도 없고, 해명하면 안 됐다. 우습게도 이번 나흘 동안, 그 기이한 남자와 사건 얘길 할 참은 아니었다….
* * *
그녀가 도착한 날, 더블린엔 비가 내렸다. 차디찬 봄비였고, 비행기가 운항하지 못할 만큼의 폭우는 아니었다. 공항엔 사람이 많았다. 모두가 머글이었고, 영국 마법사 사회에 감도는 전운은 실존하지 않는 유령 혹은 런던에 낀 안개처럼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고.
“퀸시 양이 탐정 사무소가 아니라 저택으로 오신 건 처음이네요.” 사람이 좋지만은 않았던 탐정은 아니나 다를까 공항까지 마중 나오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고, 리나는 그러려니 했다. 누아다 아르게틀람 녹턴은 수사 협력이라면 몰라도 사적으로 친분을 쌓기에 좋은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학창 시절에도 성격 나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실제로 만나보아도 나빴다. 보통은 외국에서 손님이 온다고 하면 맞이하러 나올 법도 하건만, 그 남자는 수사 의뢰로 오는 게 아니라면 리나가 더블린에 도착하는 날이 사무소를 쉬는 날이니 저택으로 오라는 성의 없는 편지 한 통을 답신으로 돌려주고는, 주소 따라 알아서 오라 통보했다.
참, 사람이 이렇게 재수가 없으면 제 명에 못 살 것인데…. 어쩌면 그래서 쉬는 날엔 도통 저택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리나는 오러였다. 순간이동부터 변신술에 이르기까지 오러 시험은 통과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만큼, 주소만 알면 저택 앞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 까다롭고 빌어먹을 탐정이 저택에 몇 겹의 보호 마법이 걸려 있는지 일러주질 않아 마법을 통과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중간에 손님이 왔음을 알아차린 친절한 집요정 덕택에 무사히 저택 현관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었다.
“녹턴 씨가 오늘 제가 방문한다는 말씀을 안 드리던가요?” 우산 모양으로 방수 마법을 걸었던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면, 마법이 사라졌다. 키가 리나의 허리까지 오는 나이 든 집요정은 부산스러운 발걸음으로 저택 안을 안내했다. “전혀요! 알았으면 다과를 구워두었을 텐데요.” 퍽 아쉽다는 목소리였다. “요즘은 제가 오래도록 집안일을 하도록 두지 않으시지만요.” 그렇겠지. 리나는 저택 복도를 따라 걸으며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누아다 녹턴의 골머리 아픈 점이란 말이야….
복도를 걷다 보면, 드문드문 내걸린 초상화는 수군거렸다. “내가 분명 저택 안에 머글 혈통은 들이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었는데….” 망할 놈의 탐정이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군. “어라? 사무소에서 봤던 오러 아가씨로군. 오늘도 사건인가? 재밌겠는데.” 리나 퀸시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고 사라지는 일을 게임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어르신.
집요정 베티는 그녀를 소파에 앉혀두었다. 정오가 가까웠고, 오래된 저택의 응접실은 도리어 초상화 한 점 없어 고요했다. 집요정은 집주인을 깨워 오겠다고 했고, 그러는 동안 드시라며 홍차를 내어왔다. “영국분들은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거든요.” 뭐, 누아다 녹턴도 가지고 있었던 영국에 관한 스테레오 타입이다. 모든 영국인이 차를 좋아하지야 않는다. 물론 리나는 하루에 다섯 잔은 마시고 있지만….
아일랜드 마법사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리나는 몰랐다. 영국과 국토가 가까운 만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갈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을 수도 있고, 국가 감정이 좋지 않은 만큼 아일랜드 순수혈통의 경우 영국이 쓰러지는 걸 봐야 하겠다며 관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녹턴을 찾은 일을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주지하고 있었다. 그야 아일랜드 마법부의 대대적 선전포고와 맞먹는 수준은 아니겠으나, 녹턴 가문 정도 되는 아일랜드 순수혈통 가문이 영국 마법사 사회에 소위 ‘참전’을 선언한다면 영국 내에서도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우습고 재미있게도, 적지 않은 수의 녹턴 가문 사람들이 호그와트 재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영국인들마저 그렇게 생각했다. 녹턴은 아일랜드 외세잖아. 그들의 선전포고를 계기로 외국의 마법부가 영국 마법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대체 무슨 꿍꿍이로 우리를 도와주러 들어오겠다는 거야? 분명히 속셈이 있다니까. 생각해봐, 지금 더블린 저택을 장악하고 있는 녹턴의 어린 가주가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마법사가 하나라도 있느냔 말이야….
그런데도 리나 퀸시는 더블린을 찾았다. 참 면목 없고 민망한 일이다. 그녀는 지금부터 녹턴 가문의 가주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딱히 녹턴 가문에 이득 될 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십자가를 져주셔야겠습니다.
누아다 녹턴은 집요정 베티가 응접실을 떠나고도 30분이 지나서야 리나를 만나러 왔다. “오신 김에 더블린이라도 좀 느긋하게 돌아보고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리나는 차를 한 잔 비워내고도 오래 기다린 참이었지만 기다린 것보다도 그가 어지간히 이 긴급 회동에 뜻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이 자식, 자다 일어났잖아. 대체로 쉬는 날엔 저택에서 안 나오기로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그렇다고 손님을 맞이하러 나오는 자리에 정장 차림이 아닐 거란 짐작은 못 했다. 그야, 탐정 사무소에 사건을 맡기러 갈 때면 그는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 지경으로 차려입는 편이었다. 수사만 열 번을 같이 했는데 머리칼을 푸는 걸 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요, 하물며 장갑을 벗는 모습조차 본 적 없어 집에서도 손님이 오면 꽤나 차려입는 편이겠구나 착각했다.
문자 그대로 착각이다. 어쨌든, 오늘 누아다 녹턴은 품이 낙낙한 셔츠 차림에 머리칼을 묶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분명 오후 10시 도착 비행기라고 솔리스 편으로 보내드렸던 것 같은데요.” 리나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누아다는 관심도 없다는 투였다. “쉬는 날이라 구태여 오전에 일어날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쉴 땐 쉬자는 주의라서.”
리나는 그가 소파에 앉아 나른하게 눈을 끔뻑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아마 어느 순수혈통 가문에서 만나러 온다고 했다면 약속 시간에 자다 일어나서 나오진 않았겠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인물이다. 이러니 모두가 누아다 아르게틀람을 가주로 세운 ‘현재의 녹턴 가문’이 의뭉스럽다 수군거리는 것이다. 탐정 사무소는 혈통 무관하게 모든 사건을 수리하는데, 그 사무소를 움직이고 있는 탐정이란 놈은 은연중에 혈통 차별을 한단 말이다.
공적으로 드러나기로는 무결한 이상주의자, 리나는 더블린의 명탐정에게 붙어 있는 세간의 평가를 부정하지 않았다. 사적으론 완벽한 순수혈통 우월주의자, 학창 시절 호그와트를 부유하던 가십 또한 사실이다. 두 가지 모두 사실이기 때문에, 누아다 녹턴이 미스터리인 것이지.
“아무튼, 오신 김에 하신다던 말씀은 듣겠습니다, 퀸시 씨.” 베티가 차를 한 잔씩 더 내오면, 머글 태생인 리나를 딱히 손님으로 예우하지 않았던 사람이 집요정 베티에게는 또 마음 써줘서 고맙다는 다정한 인사를 한다. “부디 영양가 없는 얘기는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이를테면 녹턴의 영국 개입이라거나.”
리나 퀸시 또한 대놓고 샐쭉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티가 났나요?” 누아다는 베티가 나가는 모습을 가만 지켜볼 뿐, 리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사건도 아닌데 당신께서 더블린을 찾을 이유라곤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머글 태생이라지만 마법부에 밥그릇 잡혀 계신 공무원이시니 어느 쪽에 가담하셨는진 모르겠지만.”
응접실에 가볍지 않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리나는 오래된 찻잔을 만지작거렸고, 그러는 동안 찻물이 식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영국에 들어오신들 아마 좋은 소린 못 들으실 것 같긴 해요.”
“그렇겠죠. 저와 녹턴을 두고 무슨 말을 또 수군거리고 계실지 뻔하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얻어가실 이득도 크게는 없고요.”
“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죠. 남의 나라 전쟁에 숟가락 얹어서 녹턴이 대체 무슨 이득을 얻습니까?” 누아다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은 일을 해도 욕이나 먹을 구도죠.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네 나라 마법사들이 서로 의미도 없는 전쟁에 소모전을 펼쳐 런던이 박살 나도 녹턴이 알 바는 아닙니다. 그 어떤 나라도 내전에 외세가 개입하길 바라진 않죠.”
금색 테를 두른 안경 너머로 누아다의 보랏빛 눈동자가 리나 퀸시를 응시했다. 눈빛은 건조하고, 표정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토록 명백한 사실을 두고 무의미한 말을 듣기 위해 더블린에 오신 건 아니실 거라고 믿습니다. 녹턴이 움직이길 바라는 진영부터가 없을 테니 보나 마나 어디서 파견한 건 아닐 테고, 무모한 당신의 독단으로 오셨겠지마는.”
“…정말 열 받게도 독단으로 왔습니다.” 식은 찻물이 찰랑이던 찻잔을 내려다보던 리나가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탐정도 아니고 누아다 아르게틀람이라는 재수 없는 개인에게 좀 도와달라고 말해야 하는 게 진짜 열 받고 짜증이 치밀긴 하는데, 뭐, 이젠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겠거든요. 이대로 가다간 그놈의 성물 때문에 영국 마법사 사회가 공멸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리나 퀸시는 말했다. “엘라하 스펜서의 소재를 알고 있습니다.” 누아다 녹턴은 그녀가 입에 올린 이름을 듣고 질렸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당신께서 아셔야 하는 소식이 있어요. 이 전쟁은 가까운 시일 안에 다른 아일랜드 마법사 가문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녹턴과 무관하지 않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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