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증오하는 나의 선장, 어거스터 설리번 귀하
설리번, 고인께는 어떤 안부가 적절한지 미리 일러주셨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나는 때로 당신께서 유령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랐는데-또 한편, 당신이 꼭 지옥에 떨어졌기를 바랐고-결국 돌아오지 않고 그 길을 가셨으니 이 편지가 닿는 그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그러한 사후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남겨진 이의 안부 인사는 갈 곳 없이 허공에 스러지기만 하지 않나요. 답지도 않은 문장을 구사한다며 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실은 이만한 문장을 적을 줄도 알면서 자처하여 단순한 문장만을 고집했다는 걸 당신께서는 아셨을지? 저는 여전히 영웅-혹은 이기적인-의 뜻을 헤아리기엔 모자란 사람이고,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호그와트로 돌아왔습니다. 칠흑 같은 호수는 막막하도록 넓고, 무엇이 도사리는지도 모를 숲은 여전히 등성이까지 길게 뻗어 있던 낡고 고리타분한 성에서 보내지 않을 편지 몇 자 적고 있습니다. 학교는 놀랍도록 여전하고, 이곳에서 마주한 얼굴들을, 저는 사실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온갖 소문과 신문을 뒤져가며 미친 사람처럼 찾았던 적도 있고, 덕분에 머글 사회라곤 지긋지긋하다면서도 사랑하던 동기가 동계 올림픽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것이며 오러가 되고 정치가가 된 것이며, 또 대서양 건너 저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널찍한 땅을 헤매었다는 소식이며, 어딘가에선 테러 폭음이 울리고 또 화재가 일어났다는. 그래요, 저는 많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당신께서 언젠가 지적하셨던 습관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알았던 모습으로부터 크게 달라진 바 없이 살아 있는 까닭입니다. 아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척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척하고, 사람이되 사람 아닌 척을 하면서.
평온이란 무지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제가 평온할 길은 하나뿐이었던 셈입니다. 이쯤하여 여쭙건대, 선장께서는 저의 행보를 지켜보셨는지. 그리하여 어떤 인상을 받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땅의 산 자들은 이제 제게 아는 것을 말하라 요구합니다. 그들은 제게 그들이 인식했던 제임스 와이엇 윈프리드를 논하는 것입니다. 그다지 통일성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입을 모아 저의 어리석은 행보로부터 영문 모를 희망의 빛이라도 보았노라 말합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깊은 의구심입니다. 정말 흥미롭게도, 설리번. 나는 당신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이 아니며 당신으로부터 선량한 것이라곤 아무것도-내가 느끼기에는 당신께서 나 아닌 이를 선택하여 돌아가셨다는, 악의만을 물려받은 것만 같은데-물려받은 바가 없을진대 그들은 제게 영웅을 논하는 것입니다. 숨이 막히는 잿더미일지언정 꽃은 피어나고, 뒷골목에 드는 가로등 불빛 한 줄기 없어도 별빛은 든다고 믿었다는 그 순진한 얼굴들을 제가 어떻게 독해하여 소화하면 좋겠습니까? 그들은 어찌하여 제게서 당신의 그림자를 발견합니까? 당신께서는 아는 것을 행하는 자였고, 저는 알면서도 무지를 연기하였음에도.-되짚어보니 저는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소극장 배우였던 와이엇 윈프리드의 아이로군요. 한평생 거짓말을 일삼고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삶은 결국 갈림길의 연속입니다. 나침반은 헛돌고 북두칠성은 저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할 수 있으나 사람이기에 감정 앞에 무력합니다. 뭍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고 이대로 침몰하도록 부디 선장께서라도 허락하세요.
나는 더는 타오를 수 없음이고, 타고 남은 재에서 꽃이 피는 기적을 그들 앞에 전시할 수 없음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방도를 알면서 포기하는 자이고 알면서도 무지를 연기하는 배우이며 아무리 골몰해도 내가 여기에 온 것은 호그와트로부터 시작한 이 모든 항해를 사랑하고 증오하는 호그와트에서 끝마치고자 온 까닭입니다. 맹목에 침몰할지언정 더는 하늘을 쳐다보지 않기로 한 사람인 까닭입니다. 왜냐하면…(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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