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패트로누스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이 더블린의 한적한 라이브 카페에서 토요일이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그를 이루는 가장 무의미하지만 흥미로운 조각이라고 제럴드 루빈스타인은 생각했다.
“어째서? 어둠의 마법 방어법 공부는 좀 덜 하셨나? 방금 ‘그놈의 부엉이 시험’에서 낙제는 없었다고 했잖아.”
“아뇨, 최고 성적이었는데요. 그런데도 N.E.W.T 과정이 끝나도록 똑바로 된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하진 못했어요.” 남자, 패트릭 칸은 턱을 괴고 흑맥주를 홀짝이다가 그의 비어버린 맥주잔을 쳐다보았다.
“더 시킬까요?” 제리는 그래 주면 고맙다고 답했다.
그들은 서로가 마법사인 줄 몰랐다. 제리 루빈스타인에게 패트릭 칸은 언제나 같은 날, 같은 시간이면 라이브 카페에 출근해 주로 ‘퀸’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고, 노래를 부르는 그이에게 제리 루빈스타인은 언제나 출근하면 가장 뒷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제 노래를 들어주던 이였다. 라이브 카페는 더블린에서도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었던 까닭에 늘 한적했고, 두 사람이 가끔 만나 한잔하는 술친구 사이로 발전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국에서 왔다. 그 땅은 더블린이었고, 어디서건 해외로 떠나오면 조국의 사람은 금방 고향 친구가 되어 피부 가까이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던 도중, 그들은 서로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조심스런 대화가 오갔고, 금방 들통이 났다. 그들이 같은 시기에 H로 시작하는 어느 지긋지긋한 마법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새로 잔이 채워지면, 제리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당신은 행복한 기억이 많을 거잖아.” 다시 밝히자면, 패트릭 칸은 패트로누스를 소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버젓이 살아계시고, 밑으로 동생이…, 미안, 몇이랬지?”, “둘이요.” 패트릭이 짠맛이 강한 과자를 물고 대답했다. “부러우면 하나 가지시겠어요? 주먹으로 마법사를 열댓 명 쓰러트릴 수 있는 준 격투기 선수라도 괜찮으시다면.”
“아니, 됐어. 나 생각보다 체질이 허약하거든.” 제리는 흐릿한 눈빛으로 맥주를 마셨다. “아무튼, 가족 있어, 프리랜서라지만 일 잘 들어와. 뭐가 불만이라 패트로누스를 못 써?”
“그러는 루빈스타인 씨는요?” 패트릭은 서글서글한 눈매를 휘어 웃었다. “구사해도 당신이 더 구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판단하자면.”
“아즈카반 다녀왔다니까.” 제리는 생각만 해도 지겹다는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기억이 돌아오고 내가 누군지 알아도, 항상 거기서 턱 막혀. 난 디멘터에게 시달린다는 게 뼛속까지 시리는 공포라는 걸 알아. 그러니 디멘터를 떠올리면 끝장나는 거지. 당신, 3년이나 빛 한 점 안 드는 감옥에서 지내봤어?”
“아니, 앞으로도 그런 데서 지낼 예정은 없긴 해요.” 패트릭은 앉아 있던 의자 등받이에 조금 체중을 실었다. “그렇지만, 넬리 루빈스타인의 빛이 가장 필요할 땐 당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니 잘 납득이 안 가서. 당신의 이야기만 듣자면요, 어디까지나.”
“죽었잖아.” 제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 사람이 죽어버렸으니까 닿지 않는 거지. 꺼진 전구에선 빛이 안 나니까.” 그리고 흐르는 짧지 않은 정적. “그러는 당신에겐 왜 그 빛이 안 닿지? 그리 모난 성격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제리 루빈스타인의 낮게 갈리는 목소리가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당신 부모님.” 패트릭은 맥주로 입천장을 적시며 답한다. “사랑하죠, 물론.”, “당신 동생 두 사람.” 맥주가 목을 턱 막았는지 패트릭이 조금 콜록거렸다. 제리 루빈스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 거 목소리 아끼셔. 난 당신 노래 들으러 오는 사람이니까.”
“아니, 그래도 거기서 세실과 리지 얘기가 나오면 조금 난감하다고요. 어느 남매라도 그럴걸요?”
“동생하고 안 친해?”
“그 질문 세실에게 했으면 오늘부로 루빈스타인 씨는 무덤에 들어가셨을 겁니다.”
“아하, 그래, 친하구나.” 그제야 제리는 깔깔 웃었다. “오히려 질색팔색하는 게 건강한 관계 같아 보이네. 아무튼.”
철제 의자가 삐걱거렸다. 제리도 의자 등받이에 체중을 실어 기댄 까닭이다.
“마린 리샤르.” 제리는 방금까지 화두에 올라 있었던 어느 프랑스 스큅의 이름을 꺼냈다. 패트릭 칸이 프랑스에서 연구하던 시절에 신세를 졌던 이라고 했다. “마린! 좋은 사람이죠.” 패트릭은 어느덧 비어버린 맥주잔을 동그란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미묘하게 웃었다.
“성격이 유별나서 그렇지 시몬도 돌이켜보면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고, 연약한 사람이었어도 케이트도 제 삶에 그리 나쁜 영향만을 준 사람은 아니었고요.”
“당신네 편집자나 출판사 사장은 어때? 이름이 뭐였는진 까먹었지만.”
“그 부자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봐요, 별로 미워하지 않아요.” 패트릭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라 그 모든 추억이 있음에도 패트로누스를 못 써?”
제리 루빈스타인은 그가 무대 위에 있을 적보다도 지금이 더 실체가 잡히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삶 전반에 거쳐 유랑 아닌 유랑 중이었다. 18살에 졸업한 이래 고향이라는 런던엔 며칠이나 있었을까? 막내동생이 산다는 브뤼셀에는 며칠이나 있었겠고, 시카고엔 얼마나 있었겠나. 서독의 베를린, 프랑스의 니스, 스코틀랜드, 요크셔를 거쳐 더블린엔 얼마나 있겠나. 오갈 데 없는 사람도 아니고, 가족을 두고 그는 대체 어디를 헤매나. 왜 정박하지 못하고 떠도느냐는 말이다.
“뭐, 마법 연습을 게을리한 것도 있겠지만요.” 패트릭 칸은 그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견뎌냈다. “연습해도 못 쓸 것 같다고 확신은 합니다. 제가 래번클로라서요.”
“로웨나 래번클로가 무덤에서 땅을 치고 울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지성을 토대로 한 이상을 사랑하거든요.” 패트릭은 그의 표현이 그저 유쾌하다며 웃었다. “제가 저라는 개인인 까닭에 이루는 순간적인 안정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행복이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저는 완벽하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서. 운이 좋아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안정과 행복만으로는 부족해서요. 시대가 온통 지성에 반하는 멍청한 소릴 하는데, 무슨 수로 행복하나요? 다름 아닌 로웨나가 간택한 내가.”
“시대가 요지경이라 행복하지가 않으시다?”
패트릭은 속없이 웃었다. “대답이 별로 마음에 안 드나요, 자기?”
“아니.” 제리 루빈스타인도 따라 웃었다. “댁이 왜 래번클로인진 알았다. 당신은 거기밖에 갈 데가 없었겠어. 당신이 쥔 양날의 검이 타고난 총명함인데 왜 아니겠어? 타고난 담대함마저 당신이 틀림없이 똑똑하다는 신앙에서 비롯하지. 그런데 말이야, 몸은 좀 사리셔.” 제리는 말했다.
“그러다 제 명에 못 살아. 아테나가 간택한 영웅이시니 트로이아는 함락하고 귀향하셔야지, 이타카에 도착하기도 전에 침몰해서야 쓰겠어? 오디세우스는 제 이름을 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이타카에 도착했어. 당신의 페넬로페-그래, 당신이 사랑에 빠진 빛나는 이상향 말이야.-, 그걸 호시탐탐 노리는 개놈들이 많은 시대라는 것도 염두에는 두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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