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쓰레기장에서 카르멘을 보았다. 기묘한 일이다. 사도는 현현한 날에 반드시 부름을 받은 인간에게 발견된다는 모양인데, 기억의 실을 끝까지 더듬어 올라가면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살갗이 타고 태양이 뜨겁고, 역겨운 냄새가 나던 장소에 지저분한 얼굴을 한 사람이. 그녀는 끝이 너덜너덜 떨어지고 색이 바랜 보라색 옷을 입고 있었고, 너부데데한 얼굴에 박힌 난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엉망진창으로 서로 엉킨 머리카락 사이 회색 눈동자가 조그마한 나를 한참 쳐다만 보았다. 그녀 어깨 너머로 흐르던 구름이나 쓰레기장의 풍경은 군데군데 유화 물감을 덧바른 것처럼 뭉개졌거니와 세상에 갓 태어났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 따위는 모호하다. 다만 눈빛을 기억한다. 망측한 걸 보았다는 얼굴. 망설임과 번민이 가득한 인간의 표정.
그녀가 나의 조모다. 카르멘 루페 리베라 마르티네스. 그녀는 그날 나를 옆구리에 껴서 돌아왔다는 모양이고, (거기서부터는 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쓰레기장에서 기억을 한 장 넘기면 그다음은 네 살 적에 옆집의 재수 없던 소년으로부터 세발자전거를 빼앗았던 기억이다.) 나를 기르지 않기 위해 온 마을을 수소문하며 돌아다녔다. 받아주는 이 하나 없었음은 물론이다. 나의 이름은 헤수스 로메로 도밍게즈 리베라이고, 그것은 카르멘이 아이를 팔아치우거나(팔아치울 깜냥이 되지도 못했겠지만.), 남의 집 대문 앞에 내다 버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결말을 암시한다.
단언컨대 나는 쓰레기장에서 났다. 카르멘은 마리아나의 기일에 나를 발견했고, 오래도록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는 귀신을 보거나 괴물을 인지하는 시야가 남다르진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던 까닭은 계산이 어려워서였다. 카르멘은 아이를 기르기는커녕 먹고살기도 버거웠으니까. 그런 형편엔 하다못해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비둘기 한 마리도 길러선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나를 주워서 카르멘이 볼 이득의 총량과 나를 외면하여 카르멘이 볼 양심의 총량을 저울질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 카르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녀는,
2.
메리다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나는 여덟 살 되던 해 우리 집 건너편에 살던 노인에게 들었다. 그녀는 메리다의 빈민가에 갑자기 나타났고, 그때 이미 혼자였다고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나의 조모는 남들의 호감을 사는 생김새를 갖추지 않았고, 더군다나 얼굴에 생생한 화상 자국이 있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얼마 전 대형 화재로 사라진 인근 마을의 생존자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녀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에서 메리다까지 오려면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카르멘이 무슨 수로 살아서 메리다에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자명한 메리다의 불청객이었다. 타지에 가까운 도시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는 도시의 골목을 전전하며 폐지나 쓰레기 따위를 주워 팔아 생계를 연명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골칫덩어리였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터다. 카르멘은 내가 다섯 살이 되도록 이름을 붙일 엄두조차 못 내고 나를 쳐다만 보았다. 먹을 게 있는데 없는 척하진 않았지만, 내가 무언가를 먹는 행위를 신기하고 때로 두렵다는 얼굴로.
그러다가 한번은 내가 언덕에서 크게 굴러 다쳤다. 마지못해 데려간 병원에서 카르멘에게 나의 이름을 물었다. 카르멘은 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지못해 “헤수스.”라는 이름을 말했다. 그녀가 아는 몇 가지 안 되는 인명이었을 것이 뻔하다. 카르멘은 낯선 상황에선 반드시 돌처럼 굴었다. 말할 줄 모르는 척, 생각하지 않는 척을 하며 눈동자를 굴리고 머리를 싸매는 사람이다. 의심이 많았고, 세상에 낯을 가렸다.
그녀가 내게 로메로라는 두 번째 이름을 주기까지는 다섯 살로부터도 꼬박 3년이 더 필요했다.
3.
이웃집 노인은 카르멘이 살던 마을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왔을 거라고 혀를 찼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미련했지만 사악하진 않았다. 모두에게 들키지 않고 방화를 저지를 만큼 잔머리가 좋지도 않았고, 만약 그녀가 사악하고 영악했다면 그녀가 메리다의 밑바닥을 기어 다닐 이유가 없지 않나.
자본주의는 영악할수록 신분을 부여한다. 비윤리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을수록 사회가 보상한다. 카르멘은 선량하고 어리석다. 그래서 구걸하여 먹는 처지로 났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까닭에 나를 만난 것이다.
4.
유년 시절을 비관할 작정은 아니다. 세상엔 그렇게 나는 사도가 있다. 내가 자라날수록 먹고 살 형편이 손톱만큼 나아졌다. 그야, 카르멘과 달랐으니까. 나의 인격은 그녀와 달리 영리하고 사악했고, 철이 들 무렵부터 우리 두 사람이 먹을 식량을 훔치거나 도시를 찾은 외지인의 주머니를 털었다. 어둠 속을 질주하고 어른을 골탕 먹이기는 쉬웠다. 인간은 대체로 나보다 머리가 나빴고, 유카탄의 땅에 내리꽂히는 빛이 나를 총애했다. 그렇다고 세상 다 가진 기분으로 골목을 누볐다는 말은 아니지만, 카르멘의 약값은 대지 못해도 그날 먹거리는 구할 수 있었고 그땐 그거면 됐다고 믿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살겠나. 바다 건너 톨스토이는 사랑으로 산다고 썼지만, (비디오 게임을 하려면 공간과 시간적 여유, 전기, 결국 자본이 필요하지만 의무 교육 시설의 도서관을 이용하는 건 무료다.) 그는 틀렸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잠을 자야 살고, 덥거나 춥지 않아야 살고, 병에 걸리지 않아야 산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가치는 그다음이다.
그러니까, 모자란 식량이라도 한 두 끼는 먹고 있고, 판자를 얹었더라도 이슬 안 맞고 살게 되었을 적에 이만하면 됐다고, 다 했다고 생각했다. 열두 살의 일이다. 카르멘은 과묵했으나 자주 웃었다. (내가 뭘 해줬다고, 사랑하는 카르멘.) 하나 걱정인 건 그녀의 건강뿐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좀 많았다. 이런저런 병이 있는 건 분명했지만, 동네 병원에서는 병명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좀 더 큰 병원을 찾아가라는 말은 쉽지, 그녀가 입원이라도 하면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나겠나.
그 무렵, 태어나 처음으로 잠든 카르멘을 내려다보다가 멍청하게 바랐다. 나와 그녀가 혈육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까, 어디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얼굴 모르는 친척이라도 나타나서 얼마든 목돈 조금 건네주고 떠나버리면 좋겠다고. 평생 먹고 살만큼까지는 됐고, 카르멘을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그녀가 왜 죽어가는지만이라도 알게 해달라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를 말을, 아멘.
5.
그러나 그 남자가 나의 친척이 아닌 건 얼굴만 봐도 자명했다. 12살의 봄이다. 생일에서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멍청한 외국인의 몇 푼 들지도 않은 지갑을 훔쳐다가 집 앞 골목으로 돌아왔더니 난생처음 보는 커다란 남자가 카르멘이 자주 앉아 있던 낮고 지저분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치렁치렁한 금발을 넘겨 묶고, 등을 굽혀 동네 꼬마들을 굽어보고선 “망할 놈의 디오니소스를 데려왔어야 했는데.”라며 독백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태양이 저무는 방향으로 아이들이 저만치 떠나가도록.
그가 마난난 맥 리르다. 아일랜드에서 대서양을 건너 나를 찾으러 온 켈트 문명의 바다의 신. 물론 나는 그가 신이라는 사실을 첫눈에 알지 못했으므로, “정신 나간 백인이네. 요즘 세상에 디오니소스라니.”라고나 말했다.
6.
마난난은 “왜, 찢어진 세상이나 유령은 있을 법하고 신은 있을 법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당연하지. 유령이나 징그러운 괴물 같은 거야 메리다 시내만 나가도 잊을 만하면 기어 다니지만, 세상에 신이 어디에 있어.”
“그거참 괴상한 일이로군. 너도 살면서 내내 신과 함께 더부살이를 했을 텐데.”
“아이씨, 진짜 미친 백인 아저씨네. 세상에 신이 있는데 왜 인간 사회가 아직 이 모양이겠어? 이거 사이비 아냐. 망할, 카르멘이 또 이상한 놈한테 속았군.”
“세상에 난 신들이 불완전하기 때문이겠지. 딱히 가톨릭의 신을 의미한 건 아냐.”
“무슨 의미인데?”
“널 말하는 거다, 헤수스 리베라.”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말한다. “사도 케찰코아틀. 네 절반이 신이라는 걸 알리러 왔다. 건강도 안 좋은 내가 이 먼 메리다까지.”
나는 멍청한 소릴 잘 못 견뎠던 까닭에,
“신종 사이비 안 산다고 했지, 안 꺼져?”라고 성질을 부렸고, 10분이 지나서야 대화를 시작한 이래 그가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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