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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수스] 남겨진 사람들

1.

  텔레비전에 나오는 종말론이 지겨웠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다. 틈새는 폭주하고, 내가 알았던 사도들만 해도 셋은 죽어 땅에 묻히고 불에 탔다. 96년도에 위기에 처한 마을 하나를 구하러 떠났던 사도 둘이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많이 울었고, 장례가 끝나고 나서 일부러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미래를 궁리했다. “헤수스, 다들 1999년에 세상이 종말할 거라고 믿잖아,” 카를로스 그레코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2000년에 뭘 할지 정하자.”, “미친놈. 어차피 망한다는 데 그거 정해서 뭐 하게?” 그게 나였다. “우리 세상은 인지가 휘두르잖아.” 카를로스가 기숙사 천장에 붙인 멍청한 야광 별이 반짝였다. 나는 그것을 졸업할 때까지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류보다 강하게 믿으면 멸망하지 않겠지.” 카를로스가 엉망진창으로 붙여놓고, 있지도 않은 별자리 이름으로 엮은 정말이지, 그 애의 이상만큼 우스꽝스러운 천장. 무게감이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힘없이 빛나는 조잡한 별.

 

  “일단 난 말이지, 자기랑 펠릭스를 데리고 콘서트 갈 거야. 록 밴드 골라놔야지.”

  “너 혹시 펠릭스한테 성경책으로 맞는 거 좋아하냐? 걔가 퍽이나 같이 가주겠다. 포기해, 우리가 아즈텍의 사도면 걔는 진짜 예수님의 사도야.”

  “아, 그치만 친구들이랑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짓을 해야 신년답잖아.”

  “난 가끔 네가 믹틀란테쿠틀리인지, 프레디 머큐리인지를 모르겠다. 그래, 이쯤 하면 퀸의 보컬도 현현할 때가 됐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자기는?”

  “뭐.”

  “뭐라도 하고 싶은 거 있을 거 아냐.” 뒤척이는 소리 하나 없었다. 카를로스는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거였다. “얼른 말해. 힘 좀 보태줘. 아니면 나 지금 울 거 같아.”

 

  나는 한참 말이 없다가, “그럼 신년 연말엔 내가 네 사지를 묶어서 오페라 공연장 앞에 던져두겠어.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걸로 골라야지.”라고 말했다. 카를로스는 웃으면서, “젠장, 난 클래식 싫다니까.” 울었다. 밤이 깊도록.

 

2.

  우리는 세기말을 막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카를로스가 죽었다고 판명되었을 때, 그 애의 장례식에서 나는 카를로스의 가족 앞에서 그렇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카를로스가 세기말의 종말을 막았다는 말은 어째서 고인 모독이 될까? 있었던 일은 손쉽게 없던 일이 된다. 카를로스의 죽음은 원인불명이라는 네 글자가 붙는다. 그 애가 사람을 구했다는 사실, 대신 틈새에 잡아먹혔다는 사건, 아니, 카를로스 그레코조차, 누군가가 기억하고자 악을 쓰지 않으면 손가락 틈으로 사라진다.

 

  (자, 사도 믹틀란테쿠틀리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왔었다. 그 사실은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으면, 아니, 기록이 남아도 결국 초 단위로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 숭고한 죽음은 없다. 개죽음만이 있지. 언제나.

 

3.

  펠릭스 칸이 말했다. “난 네가 미쳤다고 생각 안 해, 리브.” 카를로스가 죽고 한 해가 지나서였다. 나는 카르멘이 죽고 카를로스가 죽어버린 바람에 주변에서 살짝 정신이 나갔단 소리를 듣던 차였다. 주변인이 떠나고 대화와 교류가 줄었는데, 그럴 적이면 펠릭스는 여지없이 내 대학 기숙사를 쳐들어왔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다 가는 게 전부였지만, 나는 그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카를처럼 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잖아.”

  “그럼 왜 그냥 내버려 둬? 솔직히 미친 짓은 맞잖아. 이런다고 카를로스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새끼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광대 짓이지.”

  “시간도 필요할 테고,” 그래, 펠릭스 칸의 이런 점. “내가 모르는 사정도 있을 테지. 너희는 내게 항상 비밀이 많았으니까.”

차라리 영리하여 눈 감는 순간까지 종말을 목격하지 못할 인간 펠릭스 비자이 칸.

  “펠릭스, 자기야.” 그를 그렇게 부른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오래 살아. 무조건. 카를로스처럼 나보다 먼저 죽어버리지 마. 우리집 제단이 미어터지게 생겼어. 만에 하나 나보다 먼저 죽어봐, 그랬다간 내가 잊지 않고 지옥까지, (그래, 믹틀란까지,) 쳐들어가서 천벌을 내릴 거야.”

 

  펠릭스는 무뚝뚝한 얼굴로 기숙사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나를 오래 내려다보다가, “불경한 소리.” 그러고서는,

 

  “말 안 해도 아주 지독하게 오래 살아주마.” 약속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