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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수스] 정신 나간 낭만주의자

  코이즈미 아게하가 죽었다. 오늘, 아니면 어제…. 하하, 이건 너무 지독한 농담이겠다. 나는 그녀를 알았으나 그녀가 나를 알았다고 거짓말하려던 건 아니다. 나는 모든 사도의 주변인을 얼추 파악해두었고, 덧없고 아름다운 이름을 쓰는 그 여자가 카마이타치가 총애하는 유일한 인간이란 사실만을 알았다. “가만 보면 당신께서는 죽음만 쫓아다니시지 않습니까.” 병원 옥상이다. 사도 카마이타치는 어느덧 스물다섯이었고, 나는 불혹을 한 해 앞두었다. 달빛이 찬연하다. 그는 시멘트 바닥에 뭐 하나 깔아두지 않고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옆 난간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피워본 적도 없는 브랜드, (그런데 이 깜찍한 젊은 사도는 또 언제 담배 따윌 배웠나, 의사라는 애가 말이지….) 잘 모르는 국가. 습한 바람과, 텔레비전 송신탑. 인간은 죽어도 그 사람만큼의 자리가 대체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숨죽여 웃기나 했다. 말을 한껏 돌려서 했지만, 그 애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터다. “아게하의 장례식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여라도 예측불허의 카마이타치가 핵심을 찌르고 들어올까 나는 “다 아는 수가 있어.”라는 진부한 변명을 준비해왔는데 무색해졌다. 그 애는 ‘어떻게’, 그런 육하원칙을 구사하지 않았다.

 

  “사도 백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적에도 늦게나마 가셨었지요.”

  “얘는, 그 장례식에 안 간 사도가 어디에 있었다고.”

  “아, 신농도 참석했습니까?” 영리한 애다. 나는 염제 신농이라곤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손쉽게 추론한다. 백호의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던 그 유약한 사도가 남몰래 장례식에 왔다가 사라졌던 일. “멱살잡이하는 소리는 안 나길래 그자는 안 간 줄 알았지.”

  “범인은 원래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자리에 없는 사도를 위하고 싶진 않았다. 백호와 신농의 사건에 관해선 우선 넘어가자. 당장 사랑하는 인간을 잃은 가엾은 카마이타치를 위로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나. 밤하늘을 닮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범죄조직 단원처럼 시꺼먼 이 청년 사도는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기나 했다. 그러다 담배 연기 섞인 숨을 내려놓을 적에나 고개를 기울이듯이 돌리고.

 

  “내일 다시 틈새 수선하러 복귀하겠습니다.” 그는 성가시다는 투조차 아니었다. 누워 있는 그의 이마나 장난스레 간질이던 나는, “너 그거 하라고 재촉하러 온 거 아냐.”라고 말했다.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빚 받으러 온 사채업자라도 된 줄 알겠다. 어우, 정 없어.”

  “아닙니까?” 우리 어린 카마이타치는 좀처럼 웃을 줄을 몰랐다. “그거 말고 장례식마다 얼굴도장 찍으실 연유가 없지요. 사도 케찰코아틀.”

 

  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그 청년이 마지못해 상체를 일으켜 앉으면 자를 대고 자른 것 같은 흑발이 흐트러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가, “죽음이 뭐 별겁니까? 당신에게.”, 이런, 왜 타박일까. 나도 모르게 웃었다. 정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웃고, 그는 왜 나의 추모를 의심할까.

 

  “그냥 다들 누군가가 죽었을 때 혼자 있으면 슬플까 봐 장례식 좀 다녔어. 그러면 안 됐니?”

  “단지 그것뿐일 리가 없으니까.”

  “어째서?”

  “세상을 구하는 일 말고는 안중에 없으시잖습니까?” 카마이타치가 나를 돌아보면, 나는 그의 뻔한 눈빛을 마주 바라보았다.   “세상에도 별 관심 없으신 분이 왜 그다지도 사명에 진심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이 나에게 쏟는 의심은 익숙하다. 그보다는 지루하다. 그들이 내뱉는 의심은 진부한 까닭에 정답일 적이 많았다.

 

  이런 식이다. 나는 세상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메리다의 뒷골목에서 오로지 카르멘의 생사만을 염두에 두고 오늘 먹을 것, 내일 입고 모레 잠들 장소만을 골몰하던 기억이 나의 인격을 붙잡고 있다. 유년의 경험은 영혼에 지독한 얼룩처럼 묻고 아무리 애를 써도 빠지질 않아, 막말을 조금만 더 보탤까. 헤수스 리베라라는 인격은 세상의 종말을 원한다. 언제나 그러했고, 나의 영혼의 절반은 영원히 과거의 분노에 발목 잡혀 내게 이렇게 탄원할 것이다. 심판의 날, 종말,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평등은 모두가 똑같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왜 아니겠는가? (이것이 나와 케찰코아틀의 불화다.)

 

  세상을 사랑한 건 카를로스 그레코를 위시한, 죽어간 사도들이다. 수만 년 역사 속에서 피와 살로서 인류를 사랑하며 나에게 그들의 내일을 맡기고 죽어간 이들. 내 곁에 있었던 흘러간 신들. 나는 이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을 원하지 않아. 그러나 역사가 된 그들은 원하고, 나는 아직 그들을,

 

  “내가 무슨 생각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니?” 사랑하지. “세상 구하고 있잖아. 그러면 됐지.” 나의 건방진 카마이타치도 사랑하고, “왜 가늠하려고 해, 너는 젊은 애가 벌써부터 일에 진정성 찾고 그러면 꼰대 소리 들어.” 우리 불쌍한 새끼 호랑이, 혹은 인류를 구할수록 숨이 넘어가도록 통증을 호소하는 나의 스승,

 

  인류는 지루하고 세상은 지겹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가 않잖아. 악에 받친 사랑을 논하자면, 바람은 부는데.

 

  “사랑이라는 게 원래 더 사랑하는 쪽이 패배하는 게임이라더군. 나는 인류와의 게임에선 이겼는데, 아무래도 사도와의 게임에선 질 팔자 같아. 그러니까 말이야, 다이스케.”

 

  그래, 내일도 바람은 불 테고, 그들이 죽고 달은 수천 번 떴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감정을 의심하지 마. 다 사도들을 위한 일이니까.”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고,

 

  “…가엾게도 미쳤군.”

  “안 미친 사도가 있어? 다 나사가 좀 빠졌지.”

 

  여태까지 세상 고작 12명뿐인 인간들에게 정신 나간 사랑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