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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1->4 방학] 그 마법사, 설리번

  니키는 내가 개학하고 나서야 일하던 가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주말부터 아일라 할머니에게 등짝을 후려맞고 울며 겨자먹기로 나를 데리고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러 직장 있는 다이애건 앨리로 일찍 돌아온 셈이 되었다. 리키 콜드런의 바텐더는 니키를 알아보았고, ‘설리번의 피코드 호’는 아직 개장하려면 보름은 더 인테리어를 고쳐야 할 거라며 깔깔 웃고 니키를 놀리기 바빴다. 니키는 리키 콜드런에서 기어이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다이애건 앨리로 통하는 벽으로 향했다. “제기랄! 난들 그런 성실한 직원이 되고 싶겠냐고요. 가게 문도 안 열었는데 벌써 출근한다고 설리번이 돈 줄 것도 아니잖아요!” 니키가 지팡이로 벽을 누르면, 리키 콜드런의 벽은 다이애건 앨리를 향해 무너졌다.

 

  학기가 임박한 다이애건 앨리는 어느 거리나 북적였다. 올해 학교에 입학하는 꼬마들은 부모 손을 잡고 교복 망토를 맞추고 새로 산 부엉이가 담긴 커다란 새장을 안고 돌아다녔다. 그는 내게 돈은 얼마나 모아두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독립하기 위해 절대 사용할 수 없었던 몇 푼의 돈을 제외하고 그간 모아두었던 금액을 말했다. “엄마가 벌써 2주째 주급을 안 갖다줘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준비물을 모두 갖추기엔 턱없이 모자란 돈이어서 변명하면, 니키 헤이스팅스는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불친절한 투로 말했다.

 

  “그렇겠지. 달리아 누나도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내가 내 일에 몰두하는 동안 많이 변했더라. 도저히 설득해도 알아먹질 않으니 원.” 나는 그가 우리 어머니를 말리기 위해 몇 번 도박판에서 애 썼다는 걸 알았다.

 

  작년에 입었던 교복은 도저히 입을 수 없을 만치 짧아져서 중고로나마 가장 기장이 비슷한 교복을 구해야만 했다. 바지는 짧고 망토는 품이 남았지만 중고란 맞춤복처럼 몸에 꼭 맞기 어려운 법이다. 중고 서점에서 가장 낙서가 적은 것을 고르고 골라 교과서 일체를 갖추고, 망가진 깃펜 대신 저렴한 새 깃펜을 하나 샀다. 나는 니키가 나를 다이애건 앨리에 데려와준 일말의 행운에 조금 감사했다. 그는 다이애건 앨리의 상인이었던 까닭에 깃펜을 몇 시클 더 저렴하게 사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야 하는 물건이 하나하나 목록에서 지워지고, 니키가 골목 하나를 돌아 들어갈 때마다 얼굴을 빠끔히 내민 상인들이 그에게 알은 체를 해왔다. “니키, 설리번이 아일랜드에서 귀국했던데 벌써 가게를 여는 거냐?” 그렇게 물어오는 꽃집 주인을 니키는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러나 분명 함께 알고 지낸 세월이 묻어나는 친근한 투로 대답했다. “뭐예요, 우리 가게 영감탱이가 벌써 귀국했다고? 멀린이 썼다는 물건을 벌써 찾았나? 빠르기도 하지. 그치만 가게는 아직이래요. 리키 콜드런에서 그러던데.”

 

  나는 그를 쫓아가기 위해 품 안 가득 짐을 안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 했다.

 

  “이봐,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 준비물은 다 샀는데.”

  “말했잖아, 엄마가 네 생일선물 챙겨주라고 그러셨다고.”

  “뭘 사주려고? 내가 삐삐가 좋다고 했잖아. 아니면 마이마이나. 멍청한 머글 애들이 그런 걸 비싸게 사줄 것 같단 말이야. 걔넨 유행에 죽고 못 사니까.”

  “돈으로 주는 건 안 된다니까! 우리 엄마 몰라서 그래?” 니키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며 투덜거렸다. “보나마나 내가 철딱서니 없이 동생 선물도 안 사줬다고 성화를 부리실걸.”

 

  그를 따라 다이애건 앨리 깊숙이 걸어들어갈수록 건물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차양이 되어 빛이 들지 않았다. 그림자는 삼켜지거나 혹은 골목 틈으로 드는 길고 강렬한 빛을 받아 벽을 타고 길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짐이 무거우니 깃펜이나 하나 더 사주고 퉁치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하려다가 니키의 등에 코를 박고 부딪힐 뻔하고야 말았다. “아, 야! 멈출 거면 말하고 멈춰! 뻔히 짐 많은 거 알면서 갑자기 멈추면,”하고 언성을 높여도 니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야, 진짜 귀국했네요? 왔으면 왔다고 연락이나 하시지.” 니키는 골목에 안락의자를 내놓고 깜빡깜빡 졸고 있는 노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대바늘은 허공에서 계절에도 안 맞는 털모자를 뜨고 있었고, 노마법사는 니키의 목소리를 듣고 안락의자 팔걸이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로 나른한 하품을 토했다.

 

  “너만 휴가니? 나도 휴가야, 욘석아. 피차 쉬는 날엔 연락 안 하는 게 가족의 미덕 아니겠니.”

  “뭐, 잘됐네요. 안 그래도 설리번을 찾던 중이었어요.”

 

  마법사 설리번. 나는 사실, 교수가 아닌 늙은 마법사라곤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웬일로 우리 니키가 휴일에 나를 찾지? 휴가만 줬다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연금술 연구하러 집에 틀어박히는 은둔형 인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 애 듣겠어요.” 니키는 늘 쓰고 다니던 색안경을 벗어 머리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예전에 안 팔린다고 가게 구석에 쳐박아뒀던 물건 있지 않아요? 그걸 얘 생일선물로 사줄까 하고요.”

  “뭐? 그런 잡동사니를 주려고 했단 말이야? 뭐 이런 쓰레기가 다 있어?” 

 

  황망해진 나머지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보면, 니키는 성가시다는 듯이 시선을 허공에 뜬 대바늘에나 두며 입을 삐죽였다.

 

  “보지도 않고 왜 성화부터 부려? 네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해서 떠올린 거야. 너 퀴디치 좋아한다며. 무슨, 돈도 없는 주제에 님부스만큼은 못 판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안 울었어, 뭐라는 거야? 널 빗자루로 패려고 했지.”

  “자랑이냐, 무식한 그리핀도르야?”

  “잘나셨네, 체력도 부족해서 기숙사도 못 기어올라가는 래번클로가.”

 

  “이토록 날씨 좋은 오후에 험악한 말은 하지 말자꾸나.” 노마법사는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꼴을 더 못 봐주겠다는 듯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니키가 자주 걸치는 로브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꾸며낸 새까만 로브를 입은 이 수상한 마법사는 파랗게 물들인 지팡이를 들어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휘둘렀고, 그의 머리 위에서 발칵,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면, 가게의 간판이 보였다. 커다란 파도와 고래가 음각으로 새겨진 목제 간판.

 

  그 골동품점의 이름은 <피코드 호>였다.

 

  “그래. 꼬마야, 생일이니? 마침 우리 가게에 네게는 필요하고 우리에겐 별 쓸모가 없는 재밌는 스니치 모양 장난감이 있단다.”

 

  노마법사의 이름은 어거스터 설리번으로, 나는 나중에서야 그 노인이 가게 이름 탓에 주변 상인들로부터 <선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일 축하한단다. 스니치 장난감은 그냥 가져가렴. 모처럼 니키가 숨겨둔 자식을 데려왔는데 모질게 굴 만큼 나는 나이를 헛먹지 않았단다. 네가 부디 수색꾼이 맞았으면 좋겠구나. 아니라면, 뭐, 수색꾼이 된 기분이라도 누리면 즐겁겠지.”

 

  그 스니치는 정말 별것도 아닌 장난감이었다.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기는커녕, 던지면 사람에게로 달려드는 이상한 마법이 걸린 장난감. <피코드 호>는 그런 걸 취급한다고 했다. 

 

  “이런 거 공짜로 줘도 돼요? 당신은 상인이잖아요.”

  “미래의 고객을 위한 투자라고 해두지. 니키의 아이니까 나중에 우리 가게에서 재밌고 쓸모없지만 분명 유쾌한 마법에 걸린 물건들을 사줄 수도 있지 않겠니. 다음에 또 놀러오렴. 이왕이면 어른이 된 다음, 돈 벌어서.”

 

  니키는 이후 당연히 내가 그의 자식이 아님을 30분쯤 항변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