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밤의 포화와 살육에 관하여 생각했고, 그러고 나니 날은 밝았다. 호숫가에 앉아 동이 터오는 새벽하늘을 고개 들어 쳐다보았다. 물은 탁하고 하늘은 말갛다. 가방에 넣어 왔던 담배는 떨어졌고, 머리칼을 다시 넘겨 묶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저 탁한 물결 위로 뜨는 해가 빚어놓은 붉은 물그림자를 말없이 쳐다보다가, 불현듯 물이 아닌 지평선이 보고 싶다고, 나는 숲이 지척이고 여름이면 해바라기가 피는 곳에서 왔노라는 뜻 모를 확신이 들었다.
하나만 묻자.
아즈카반에서는 말하는 법마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가까운 곳에 다른 죄수가 있다면 사정이 나았지만, 죽음이나 출소 등 수많은 요인이 내 주변을 텅 비워버리면 나는 도리 없이 혼자 말해야만 했다.
말씀하세요.
답하는 이는 이곳에서 구축한 상상이다. 정보 값이 모자라, 구체적인 모습은 얼기설기 기워진 것처럼만 떠올랐다. 마치 덜 편집한 영화나 만들다 만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몸은 나보다 작았겠고, 안경을 썼으며, 공손하고 얌전했다니 새빨간 호그와트 교복을 흐트러짐 없이 걸쳤을 그 애. 본질적으로 나이고, 영원히 그러할 ‘제리 루빈스타인’.
너 200년 후에는 넬리 루빈스타인-그러니까, 너의 이모, 너를 사람 만들어놓는-을 죽게 내버려 두고 도망칠 수 있겠어?
그러면 그 애는 나보다 더 결연한 얼굴을 한다.
호그와트로 돌아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내가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거나, 반대편에 선 모든 이에게 실망했을 거라는 추측, 혹은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애’가 수치스러워하거나 난처하게 느낄 거라는 것. 나는 다들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애는 일이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다. 그러나 루빈스타인 부부를 지키지 못할 미래를 두려워할지언정, 아즈카반에서 기억을 잃어버릴 것을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들이 한 번 더 성물을 지키기 위해 전락할 수 있음에 마음 쓴 일 또한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즈카반에 갈지언정, 가족보다 더 중요한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 비겁을 택할 정도로 고집 약한 사람도 아니었던 거다, 20살이었다는 그 애는.
그저 누군가와 나누는 영원한 석별에 조금 느끼는 아쉬움, 언젠가 알았던 것 같은 기시감과 사랑, 따뜻한 잔물결처럼 발목에 닿으면 기분 좋지만 달아나는 물살은 그저 쳐다볼 뿐인 나.
나의 본질은 제리 루빈스타인이다. 소년 시절로부터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넬리라는 여자가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기억나지 않아도 확신한다.
너나 나나 200년 후에도 그리핀도르 탑에서 잠들게 되겠구나. 호숫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또,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못 이룰 분투를 하고….
다음엔 디멘터들한테 그런 인사나 하고 싶네. 내가 돌아왔다, 빌어먹을 놈들아….
그래도 잊어버리겠죠? 다음에도.
다 끝난 영화처럼, 기억에 또 암전이 내려지면, 가히 200년 전에서 돌아온 망령이겠구나.
우리가 그리핀도르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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