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장례식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설프게 빌려 입었던 검은 정장은 그의 기장보다 짧아 손목이 드러났고, 생전 안 하던 넥타이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으나 그것 때문에 드는 위화감은 아닐 거였다. 탐정 사무소에서 사무 정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꼭 6개월 되던 날에 날아든 부고였다. 그는 미안한 일이지만 고용주가 상을 당한 바람에 당분간 사무소가 문을 닫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고 소식을 듣고 제럴드 리퍼는 난처한 까닭에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기도 뭐하고 안 가기도 뭐 했다. 아일랜드에 있는 연줄이라곤 그놈의 탐정뿐인 것을 고려하면 얼굴 한번 비추는 게 낫겠지만, 글쎄, 누아다 녹턴과 자신이 그만큼 친분이 있느냐 하면 애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아다 녹턴은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다. 제럴드 리퍼라고 녹턴보다 나을 건 없는 성질머리였고. 그럼에도 없는 연줄 끌어다 정장까지 빌려 입고 장례식엘 참석했던 것은, 나름의 사회생활이었다. 어쨌든 마법사 사회라면 영국이든 아일랜드든 머글 혈통이 정규직 취직 자릴 잡으려면 시간이 상당히 필요했다. 구직 활동을 이어가려면 탐정 사무소에서 사무 정리나마 하며 생활비를 버는 게 나았고, 그러려면 누아다 녹턴에게 최소한의 의리를 보이는 것이 나쁠 건 없다는 계산이었다.
사실 제리는 마법사 사회에 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호그와트를 졸업했다지만 기록상으로야 그렇고, 아즈카반에서 3년 형기를 마치고 나오니 기억이 군데군데 망가져 기억 나는 거라곤 밥이 잘 나왔던 것 같았다는 피상적인 기억이 다였다. 연회장이 반짝였던 것 같고,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광경 같은 건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무튼, 이 위화감의 뿌리는 거기에 있었다. 그가 상당히 디멘터에게 시달려가며 3년 만기 복역했다는 것. 1년만 들어갔다 나와도 정신이 피폐해지기 일쑤인 감옥에서 운 좋게 기억 조금 망가지고 삶을 새로 일궈나가기에는 무리 없이 회복했다는 것. 그러나, 분명 그 바람에 기껏 호그와트에서 배우고 익혔을 마법사 사회의 문화며 광경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제럴드 리퍼는 상기한 이유로 마법사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정장 로브가 있고, 누아다 녹턴이 순수혈통 가문의 차기 가주인 이상 제리가 머글 세탁소에서 빌려온 머글 복장은 상복이라도 눈에 띌 수 있다는 것마저 인지하지 못했다. 아, 젠장. 역시 오질 말았어야 했던 게 아닐까? 사실 지팡이로 할 줄 아는 마법도 별로 없었다. 연회장 광경이나 간신히 기억하는데, 배웠던 마법이라고 기억하겠느냔 말이다. 지팡이 끝에 불을 밝혀 추모하는 문화도 낯설어 허둥지둥 따라하기에 바빴고, 그나마도 지팡이가 썩 말을 듣진 않았다. 제리를 바라보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시선은 썩 곱지 않았다. 염병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길 기어 왔나. 후회 가득한 욕지거리가 입 안에 차올랐지만, 입가만 씰룩거리고 관두었다.
그 겨울밤, 제리 리퍼는 탐정에게 조문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상주를 둘러싼 수많은 순수혈통 마법사가 있었고, 체격을 이용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들 사실 무슨 인사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기분만 들었다.
누아다 아르게틀람 녹턴은 끝까지 울지 않았다. 제리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울지 않는 상주에겐 보통 뭐라고 인사하는지 몰랐다. 울었더라도 부모와의 추억조차 아즈카반에 두고 온 입장에서 건넬 말은 못 찾았겠지만, 하여간 장례식에서까지 독하기 짝이 없어 사람 참 난처하게 만드는 직장 상사였다.
그날 이후, 제리는 물론 더블린 저택을 찾지 않았다. 그럴 틈도 없었고, 피차 그 정도 거리감이 딱 알맞다고 여겼다. 누아다 녹턴은 장례식이 끝나고 또 집안에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데 ̄제리는 엘라하 녹턴이 집을 나갔다는 소문을 그때까지 믿지 않았다. 장례식에서 눈이 붓도록 울었던 유일한 사람이 집을 나갈 배짱은 있었겠는가 말이다. ̄탐정 사무소에는 꾸준히 나왔다. 되짚어보면 탐정 사무소에 앉아 있는 유일한 직원이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때 한 번은 물었겠구나 싶었다. 너 대체 무슨 정신으로 나와서 일하고 있는 거냐고. 제리가 가족과의 유대감을 몰랐던 까닭에, 또 녹턴 가족의 사정을 전혀 몰랐던 까닭에 착각했던 것도 분명 사태의 원인일 터다. 장례식 당일에도 울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괜찮으니까 일하러 기어 나왔을 거 아냐? 걱정해봐야 또 혼혈이라는 이유로 트집 잡혀 기분 나쁜 소리나 듣게 될 테고….
누아다 녹턴은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 안 되어 쓰러졌다. 사무소에 있었을 적이었고, 만약 제리의 출근 시간이 조금 더 늦었더라면 혹은 누아다가 사무소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졌더라면 일이 크게 번질 뻔했다. 제리는 그를 더블린 저택까지 업고 날랐는데, 그러는 동안 알고 있는 욕지거리는 다 했다. 체격이 비슷해 비교적 수월했지만, 자신의 기억이 온전했더라면 순간이동 면허가 있어 훨씬 편하게 환자를 나를 수 있었을 테니까.
저택엔 키 작은 집요정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제리는 누구에게 편지를 부쳐야 할지를 알았고, 솔리스를 빌릴 수 있었다. 치료사가 왔고, 그가 환자를 살피는 동안 제리는 복도에 몸을 낮추고 앉아 리즈번으로 보낼 편지를 적었다.
“그러니까, 다누 녹턴 2세 씨에게…? 미치겠네, 도대체 보통 순수혈통 마법사란 놈들한텐 무슨 존칭을 붙이지? ‘씨’ 정도면 되나? 그보다 2세인 거야? 2세냐고? 요즘 세상에 조상님 이름을 대물린 고상한 집안이다, 이거야? 미쳐버리겠네, 진짜. 2세 뒤에 ‘씨’는 좀 아니지 않아?” 깃펜으로 머리를 긁어가며 투덜대다 보면,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혀를 찼다. “그냥 적당히 써서 보내. 단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제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바짝 들었다. 움직이는 초상화는 금빛 눈동자로 제리를 딱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명패에 적힌 이름이 길고 어려워 뭐라고 읽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누아다 녹턴의 고모할머니라는 마법사에게 편지를 써서 솔리스에게 날려 보냈다. 부엉이가 리즈번까지 날아가는 시간이 있을 테니까, 그의 친지라는 그녀는 내일은 되어야 더블린 저택에 올 게 뻔했다. 치료사도 집요정으로부터 그렇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애꿎은 제리에게 내일까지는 저택에 있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추가 수당 나올까?’ 가장 먼저 고개를 든 생각은 그런 속물적인 속셈이었으나 제리라고 이대로 집으로 갈 마음은 아니었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졌고 그를 돌볼 가족 하나 없는 형국이라면 약간은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운 정이라는 말도 있었고.
제리 리퍼는 더블린 저택에 무의미하게 있었다. 집요정은 안절부절 필요한 게 있으면 자신이 가져다줄 테니 부디 보호자께서는 침대 곁에 앉아 계시라 당부했다. 제리는 더블린 저택을 헤집고 돌아다닐 생각이 결코 없었으므로, 알았으니 읽을거리만이라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집요정은 신문이며 소설 따위를 한가득 안고 돌아왔는데, 그다지 재미있는 읽을거리는 아니었다. 하기야, 누아다 녹턴을 키운 집이다. 책이라곤 대체로 만화책밖에 읽지 않는 제리의 취향에 맞는 서적을 구비했을 리가 없었다. 제리는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어차피 자란 환경이 다를 거야 뻔했다. 서로 입는 스타일이 달랐고, 혈통이 다르고 구사하는 어투가 달랐으며 국적이 다르고 하물며 배정받았던 기숙사까지 달랐다. 뭐 하나 맞는 구석이 없으니 반년 넘게 일하고도 친하진 않았고, 자주 부딪혔다. 사사건건 안 맞으니 뭘 해도 밉살맞았고, 가끔 말다툼에 열이 뻗쳐서 탐정 놈의 머리를 의자로 후리면 아즈카반 형을 더 살게 될지 속으로 가늠한 일도 있었더랬다.
정말 쓸데없이 가엾게 됐네. 제리 리퍼는 예언자일보를 넘겨 만화라도 없을지 살피며 무심히 생각했다. 참석했던 장례식에선 그렇다는 인상을 못 받았는데, 더블린 저택에 와보니 여태까지 여상한 얼굴로 탐정 사무소에 왔었다는 게 기적이구나 싶었다. 복잡할 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순수혈통 가문이고, 나이가 어릴지언정 인정받는 가주이며, 제리와 달리 분명 유복한 환경에서 가정의 보호를 받고 자랐을 사람이다. 제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도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더블린의 명탐정이라는 오랜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성은 좀 문제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누아다 녹턴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럼에도 곁에 남은 사람이 없는 거다. 이런 순간에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없고, 고모할머니라는 사람이 살아계시지 않으셨더라면 제리와 집요정 베티는 도대체 누구에게 연락을 돌려야 좋을지 몰라 머리를 한참 맞대고 끙끙 앓았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탐정으로서 분명 많은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그런다고 알아주는 이가 있는 건 또 아니지. 정말 그나마, 제리 리퍼가 그에게 미운 정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를 더블린 저택까지 옮겨줄 사람 하나 남지 않은 것이다.
엘라하 녹턴도 진짜 독한 새끼구나. 그렇다고 집을 진짜 나가냐? 자기 형 성질머리 몰라? 아니, 그보다 이 양반은 동생한테 무슨 소릴 했길래 그 순한 양 같던 애가 장례식 끝나자마자 집을 나가? 호그와트 다녔다면서, 이럴 때 연락할 친구 하나 못 만들었나? 하기야, 누가 이런 인성을 가진 인간이랑 친구를 해줬겠어. 나였어도 친구 안 했다. 한 대 쳤으면 몰라도. …아. 영국은 그러고 보면 내전 중이라던가, 죽거나 사라진 사람이 많아 연락할 사람이 줄어든 걸 수도 있겠네….
예언자일보를 들여다보아도 글자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상받지 못할 선행엔 무슨 의미가 있고, 보답을 못 받을 사랑엔 무슨 의미가 있나? 머리는 좋은데 요령이 나빠서는.
하여튼, 탐정의 가족은 내일에서야 온다고 했다. 제리는 녹턴 가문에서 자신에게 사례를 한다면 좋겠다고나 바랐다. 사무 정리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이만큼 했으면 할 일은 다 하지 않았나. 누아다 녹턴이 이대로 누적된 과로와 지속적 우울증에 쓰러져 못 일어나게 되는 것만 아니라면, 그리하여 제리가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잃는 것만 아니라면,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서 더 연민한들 누아다에게 좋은 소리 못 들을 것이야 뻔했으니까.
'커뮤니티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언/보가트] 그러나 여신은 그를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0) | 2023.01.02 |
---|---|
[라이언/4학년 과제] 그러하니 오늘부터는 태양이 돈다. (0) | 2023.01.02 |
[제리] Heathcliff-기사도와 용기, 만용, 그리고 불굴에 관하여 (0) | 2022.10.21 |
[제리/리뉴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0) | 2022.10.21 |
[제리/리뉴얼] 그 아즈카반의 죄수 (0) | 2022.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