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받았다. 존 오스카 가드너는 함께 앉아 식사할 적이면 말 한마디마저 고르고 고르는 신중한 사람이었으나 편지글은 열 문단이 넘어가기 일쑤였다. 라이언 가드너는 연회장 책상에 늘어져 앉아 아버지의 단정한 필체로 적힌 문장을 더듬어 읽었다. 가족 부엉이는 잽싸게 날아 창공을 가장한 연회장 천장을 종단하여 날아갔다. 부엉돌이가 문 편지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 덩치 큰 그 맹금류는 어디선가 세공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혹은 또래 친구들과 천방지축으로 쏘다니고 있을 그웬을 찾아간 것이리라.
근황은 한 줄이고, 양피지를 가득 채운 엄격한 문체가 논하는 것은 기나긴 당부와 사랑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여름에 만들던 작품들은 어떻게 완성이 되었는지, 가끔 어머니의 안부, 또 간혹 이름도 모를 친척의 이야기, 외할머니가 지내시는 카디프 소식, 학교 성적, 라이언과 그웬이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 따분하기 짝이 없는 문장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마치 잘 설계한 오르골처럼 읽혀 신기하기까지 한 문장력이다. 라이언은 아버지가 이 편지를 적기 위해 양피지를 얼마나 버렸을지를 상상했다. 무엇을 해도 끊임없이 깎고 고치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은 또 얼마나 고심하며 단어를 고르고 퇴고했겠나. 예술밖에 모르는 괴팍한 세공사이면서도, 가정에 충실한 사람. 무심한 얼굴로 치열하게 사랑하는 예술가, 그리하여 불가해(不可解), 미스터리, 사실은 닮지 못 하여 서글픈 그의 자랑스러운 가족.-저도 당신처럼 일상을 치열하게 사랑할 줄 알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알고 계십니까?-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라이언은 학기가 저물도록 고작 귀걸이 두 쌍을 완성했을 뿐이다.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붉은 보석을 사용했고, 남은 한 쌍은 가족적인 색감을 흉내라도 내보려다가 결국 못 견디고 서늘하도록 새파란 보석으로 교체했다. 편지를 내려두고 자신이 깎고 만든 세공품을 연회장의 샹들리에 불빛에 비추어 들여다보았다. 미적으로 균형 잡힌 세밀한 장식들이 손아귀로 흘러내렸다.
자신이 정녕 아버지나 그웬보다 실력이 모자란가? 예술을 업으로 삼기 위한 재능은 기술이 아니다. 비극은 거기에 있다. 라이언은 오래도록 자신의 작업물을 무심한 눈길로 쳐다보았고, 무심코 생각한다. 아버지 취향은 아니네. 빛을 받으면 불길하게 어른거리는 이러한 형상이 어울리는 사람은 영웅보다는 악당이겠다.
예술은 만든 이를 닮는다. 그는 이상주의자였다. 아버지의 편지에 답장으로 자신은 학기 내내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으며, 그러하니 부디 공방의 미래를 위해 그웬을 선택하시라고 매달려 울고 싶을 만큼이나. 타는 갈망으로, 죽을 것 같은 갈증으로 그렇게 고해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만 같았다. 저는 제가 만든 것에 담긴 라이언 가드너를 보고 싶지 않나이다. 이 죄를 부디 사하지 마소서.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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