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폭염이었다. 다이애건 앨리의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은 장사는 잘되어서 좋지만 머글들 말로는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데 사실인 것 같지 않으냐며 카운터에 앉은 직원에게 시답잖은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라이언은 방학 숙제를 늘 그 가게에 앉아서 했다. 심리적인 까닭은 없었다. 가게 사장이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고, 가끔 아이스크림을 한 덩어리 더 얹어주시는 것이 이득이라는 단순한 계산이 있었다. 그웬 가드너는 이틀 가량 친구의 집에서 묵을 예정이라며 가방 하나 들쳐메고 떠나버렸다. 라이언 가드너는 그해에도 공방에 있었다. 후계자가 된 이는 도리어 새장 밖을 날아다니는데, 자신은 어쩌다가 올해도 변함없이 공방이란 새장에 매여 숙제 따윌 하고 있을까? 소리 없는 한탄은 아이스크림 한 스푼이면 녹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버거워지던 방학 숙제는 금방 끝났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사장이며 직원에게 넉살 좋은 인사를 남기고 나오면, 여름 특유의 습한 공기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슬슬 호그와트에 아이를 맡긴 학부모들이 다이애건 앨리의 물건을 팔아주기 시작하는 시기다. 라이언은 사람들 틈바구니를 걸었고, 길게 하품했다. 오가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만, 행위는 모두 똑같다. 호객하거나 구매한다. 아이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을 만큼 얌전한 부엉이를 고르고, 혹은 새 지팡이를 구매하기 위해 올리밴더스 앞에 줄을 선다. 골목을 돌고 건물 틈바구니를 파고들면 공방은 거기에 있다. 가드너의 이름을 걸고. 웬일로 수요일인데도 가게의 문이 안쪽으로 열려 있었다.
“누구 오셨어요?” 마법약 교과서 일체를 안고 문턱을 넘었다. 작은 공방에 여름 햇살이 밝게 들었다. 공방은 넓지 않았다. 가게는 수요일이면 쉬었다. 가드너 가족이 사는 집은 공방의 2층과 3층을 얻어 쓰고 있었으니 쉬는 날이라고 공방의 문이 잠겨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아직 버젓이 공방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 오스카 가드너-라이언의 부친-는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을 만큼 살가운 이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공방에는 두 명의 어른이 있었다. 이제는 머리칼이 거의 하얗게 센 라이언의 아버지, 그리고 햇살 아래 밝게 빛나는 금발이 도드라지는 키가 큰 중년 남자가 하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라이언은 덩그러니 문간에 섰다. 자신을 보고 금방 반색하는 저 아저씨를 라이언은 알았다. 언젠가 카디프에서 만난 일이 있는, 어머니의 머나먼 친척이 되는 아저씨다. 분명 라이언의 외가인 녹턴 가문을 책임지는 가주라고 했던가, 그런 것치곤 어린 라이언에게 풍선으로 강아지 따위를 엮어주던 속없는 양반이었으나.
“키가 많이 자랐구나, 라이언!” 그는 달라진 것 하나 없었다. 짧게 자른 금발과 제비꽃의 색깔을 닮은 눈동자. 라이언의 아버지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어쩐지 눈매가 어머니를 닮은. 호방한 목소리로 라이언을 호명하고, 그웬을 안아줄 줄은 알았던.
그러나 그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친척 어른이라는 이 남자는 나이를 먹은 중년이 으레 그렇듯이 변하는 일 하나 없이 박제되어 있었고, 라이언은 성장했다. 그가 얼굴 만면에 올리는 짓궂은 얼굴이나 부드러운 눈빛 같은 것이 페르소나라는 것을 라이언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이 아저씨의 직업이 탐정이라고 했던가? 라이언은 습관대로 웃었다. “어쩐 일이세요? 런던에 놀러오셨나요?”
“일 때문에 런던에 좀 머무를 일이 생겨서 말이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오는 김에 가족들끼리 얼굴 좀 보자고 왔지. 다행히 너희 아버지께서 손님 방을 내어주시겠다고 해서 숙소 값도 굳었지 뭐니….”
“재워주겠다고 한 기억까진 없으니 적당히 저녁 먹고 호텔이라도 잡지, 킬리언.” 라이언의 아버지는 녹턴 가주라는 그 친척 아저씨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몇 번 투덜거린 일이 있다.
“어째 가드너 씨는 식구가 되어도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라이언도 삼촌 봐서 기쁠 거라니까. 봐봐요, 이렇게 고지식한 아버지랑 둘이서 에포나 누님이 올 때까지 공방을 지키는 가엾은 10대 청소년의 표정을 보시라고요. 아이고, 얘, 너 표정이 말이 아니구나. 아버지가 공방 안 물려받는다고 뭐라 그러시든? 막 달달 볶고 그러셔? 하여간, 너희 아버지는 처음 만났을 적부터 어찌나 살얼음판 걷듯이 차갑게 말씀하시던지, 도대체 누가 저 양반을 래번클로 선배로 앉혀뒀을까, 에포나 누님은 왜 저런 갑갑한 양반이랑 20년씩이나 연애했을까, 와, 학교를 같이 안 다녀서 정말 다행이다, 한참 나이 많은 선배가 아니었더라면 기숙사에서 얼굴 마주할 때마다 ‘왜 슬리데린이 아닌 거야?’ 하면서 투덜거릴 뻔했다, 어휴, 내가 입학할 쯤에 졸업하셔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그런 깜찍한 생각을 상견례 때 했었는데….”
“자식은 슬리데린이니 절반쯤은 바라시던 바를 이루셨네요, 아저씨.”
“네가 슬리데린이던가?” 친척 어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호들갑을 떨었다. “어휴, 미안하다. 삼촌도 일이 바빠서 식구들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구나. 그럼 우리 큰애하고 같은 기숙사인데 혹시 오며 가며 얼굴 보지 않았니? 가족들끼린 얼굴 보고 인사하면서 살아야 써….”
라이언은 1초에 20마디쯤 폭포처럼 쏟아지는 목소리를 들었고, 킬리언이라 불린 그의 먼 친척 되는 이는 어느덧 연극적이고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그보다 조금 더 키가 작은 조카-조카? 라이언은 녹턴 가주라는 이 남자와 6촌보다도 멀어 사실상 남에 가까웠다.-를 토닥여댔다. 기가 막혔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런 꾸며낸 농담을 받아줄 만큼 융통성 있는 인사가 아니었다.
“촌수로 삼촌이 아니라 6촌도 넘어갈 친척이잖나? 사실상 남이지.” 아니나 다를까 존 오스카 가드너는 킬리언 녹턴의 수다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창백한 안색. 라이언의 외가 식구들 특유의 소란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는 것처럼 내놓고 불만스런 눈. 그러나 그 남자를 가족이라고 받아들인 까닭에 킬리언 녹턴의 품에서 자식의 팔을 당겨오지는 않는 인사다.
“거봐라, 또 섭섭한 말씀 하신다.” 남자는 라이언의 어깨를 마지막으로 토닥이며 속없이 웃었다. 아아, 거짓말이네. 라이언은 예감했다. 이 남자는 우리 아버지를,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다.-마치 라이언처럼.- 다만 자신의 친척 되는 라이언의 어머니, 에포나 녹턴이 선택한 남자이기에 가족과 식구라는 단어로 존 오스카 가드너를 포섭한 것뿐이다. 그것이 대가족을 아우르는 가주의 의무이므로.
* * *
녹턴 가주라는 그 유쾌한 친척은 기어이 하루를 묵었고, 라이언의 어머니가 돌아오자 마치 살았다는 것처럼, 혹은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난 일이 기쁘다는 것처럼 깊이 포옹했다. 듣기로 비록 핏줄은 멀었지만 나이가 가까워 라이언의 어머니와 학교를 몇 년 함께 다녔고, 그러는 동안 10대 시절 어머니와 친분이 있었다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가는 대가족의 면모가 강하니까 언젠가는 가족처럼 살가운 사이가 되었을 사람들이라고, 다만 졸업하면 부모와 자식도 서로 연락 한 번 하기 힘든 것이 현대 사회이니 자주 보지 않게 된 것뿐이라고, 라이언은 어설프게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 판단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가 사과를 깎아 내오신 덕분에, 후식을 나누는 시간이 그들 가족에게 따로 주어졌다. 과묵한 성미였던 라이언의 아버지는 대체로 별말 없이 아내와 사돈 되는 이의 대화를 들었고, 이따금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정보만을 무심한 말투로 수정했다. 라이언은 그들 중 가장 나이 든 아버지가 가장 정확히 과거를 기억한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실없는 생각만을 했다. 무심해 보여도 주변을 전부 주시하고 기억하는 사람. 명성보다는 자신의 예술성이, 그리고 뜻밖에도 자신의 예술보다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중시하는, 약간은 가부장적인 사람. 세상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사랑하는 일에나 골몰할 줄 아는, 신기하게도 자식인 라이언 가드너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인간상. 그래서 악인이 아님에도 불가해하여 어떻게 사랑해야 좋을지 도저히 모를 미스터리….
깨물면 잘린 사과는 맛있었다. 어른이 나누는 말씀에 고작 15살 청소년인 라이언이 얹을 말은 없었다.
“그나저나 공방을 그웬이 물려받는다면, 도리어 라이언의 어깨가 무거워지겠네.” 친척 아저씨, 그러니까, 부모님으로부터 ‘킬리언’이라는 미들네임-그것은 미들네임일 것이다. 라이언이 녹턴의 전통에 입각해 ‘크레드네’일진대, 가주에게 켈트 신격과 무관한 이름을 주었을 리 만무하다.-으로 불리는 남자는 중년을 넘긴 나이가 아깝게 소년처럼 포크 끝을 물고 화두를 라이언에게 넘겼다.
“그게 걱정이면 녹턴에서 한자리 마련해주지 그래? 뭐라도 물려주든지.” 라이언의 아버지가 던진 묵직한 농담을 듣고, 가주라는 그는 웃었다. “한자리 마련해주는 게 어려울 것도 없지만요, 가드너 씨. 중요한 건 조카님의 의사가 아니겠어요? 녹턴이 한자리 마련해주려고 팔 걷어붙이면 일평생 시체를 보면서 일해야 한단 말이죠, 우리 누님처럼.”
“나도 내 일에 제법 프라이드는 있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포나 가드너는, 이 대화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처럼 꼿꼿이 앉아 있는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뭘 하든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 솔직히 추천할 만한 직업군은 아니니까, 난 우리 애가 차라리 작가 같은 걸 하면 좋겠다 싶은데. 책 좋아하니까, 서점도 괜찮을 것 같고.”
라이언은 그녀의 눈을 통해 이야기의 이면을 알아차린다. ‘듣고 있니?’. 표준 마법사 등급 시험을 넘긴 자식을 가진 학부모로서는 당연히 채근해 묻고 싶을 것이다. 이제 직장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공방엔 물려줄 부가 없다고 말이다.
“우와, 엄마. 그 둘은 전혀 다른 업종이거든요. 책 좋아한다고 다 책을 업고 일해야 한단 법도 없잖아요.” 가족들의 말씀을 잘 듣고 있노라는 증거를 볼멘소리로 밝히면, 킬리언 녹턴은,-그래서 대체 이 아저씨의 퍼스트네임은 뭐지? 누아다 아르게틀람? 아니면, 루 라브다? 라이언은 실없는 상념에나 젖어 있었다.- 라이언의 앞에 사과가 담긴 조그마한 접시를 좀 더 끌어주며 말했다.
“뭐, 슬슬 진로를 정해두면 N.E.W.T 계획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괜찮겠죠. 곧 6학년이니까 라이언이 어련히 생각하려고요. 16살은 그리 철없는 어린애도 아니잖아요, 누님.” 그리고 무심코 고개를 들면, 말할 적이면 유쾌하게 웃고 무슨 일이든 가볍게 무게를 덜어내던 먼 친척 되는 이와 시선이 맞물린다.
동류(同流). 라이언 가드너는 직감한다. 자신은 동떨어진 우주로부터 내려온 괴물 같은 것이 아니며, 가족으로부터 기인했다고.
“그렇지만, 아무리 가드너 공방이 작아 보인다고 해도 네게 쥐고 있는 무기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삼촌 있잖니?” 라이언은 ‘킬리언 녹턴’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권유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 또한 그만의 ‘주제’가 있겠지. 그러나 올해로 15살 먹었을 뿐인 라이언 가드너의 알 바는 아니었다.
“가드너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끄는 녹턴도 너의 가족이니까, 진로를 정할 때 고려는 해보렴. 이를테면…, 아, 그래, 네가 오러 시험에 통과하기만 해도 우리가 제법 네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거란다. 오러국에도 우리 가족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으니까. 그래, 가족 좋다는 게 다 뭐겠니, 서로 돕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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