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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7학년 과제] Lion Heart

  얼굴 위로 낙엽이 졌다. 해가 뜨겁던 여름은 저물고, 코끝을 스치는 가을 냄새가 완연했다. 라이언 가드너는 호숫가 근처 버드나무-후려치지 않는, 평범한, 학교의 교정 곳곳에 우뚝 선 조연 같은 것.-밑에 누워 멍청한 시선을 나뭇가지에 두었다. 검은 호수 위로 석양이 진했다. 낮달 옆에 금성이 밝고, 구름이 호수 너머로 찢기고 흩어졌다. 그저 오며 가며 얼굴을 익혔을 뿐인 후배 학생은 제 곁에 앉아-이 비밀 장소의 마땅한 주인. 한량 같은 슬리데린 선배에게 사랑스러운 아지트를 빼앗긴.-책을 다섯 권 쌓아두고 끙끙 머리를 앓고 있었다.

 

  “저 아무래도 약초학은 관둘까 봐요.” 악마의 덫에 관한 레포트를 써야 한다고 했던가, 그 후배 J는 N.E.W.T 약초학 과정을 듣기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후배님, 그거 압니까?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악마의 덫으로 사람을 살해한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데요….”

  “그,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J는 ‘살인 사건’의 한 글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며, 호들갑스럽게 어깨를 떨었다. “저 그런 거 무서워한다고요! 선배는 오러 지망이실지 몰라도, 전 졸업하면 요크셔로 돌아갈 거라니까요!”

 

  라이언 가드너는 숨죽여 웃었고, 웃느라 가슴께가 들썩이면 쓰다 만 양피지가 풀밭으로 굴러떨어졌다. 그저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와 만나서, 서로 끝까지 과제를 하는지 감시나 해주자고 둘러앉은 별 건 아닌 스터디 모임이었다. 그 애는 그리핀도르인 주제에 온갖 것에 겁이 많았고, 무슨 말을 해도 겁먹은 쥐처럼 바짝 긴장해서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요크셔의 어느 마을이 고향이라고 했던가, 사실 자세한 건 잘 몰랐다. 그의 가족 관계며, 교우 관계 따위마저도. 듣기론 라이언의 동생과도 친분이 있다고 했는데, 동생의 교우 관계마저 똑바로 모르니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터였다.

 

  “그나저나 졸업하시면 고향으로 돌아갑니까? 의외로군요, 전 후배님이 여기 남으실 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그냥 점점 혼혈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요.” 그는 깃펜을 들고 양피지에 문장을 적어냈다가, 또 한차례 난관에 봉착했는지 골몰하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면 비마법사 사회에서도 잔뜩 찍을 수 있으니까 굳이 핍박받아가며 여기서 예술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윽고 깃펜 끝을 물고 한참 문제의 정답을 고민하던 J는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저도 집에선 사랑받는 자식이거든요. 마법사 사회가 보기엔 불청객이겠지만.” 라이언은 이럴 적이면 마법의 모자가 참 절묘한 물건이며, 고드릭 그리핀도르가 아주 위대한 마법사라는 상념에 젖었다. 유령이 무섭고 벌레가 무섭고 뱀이 무섭다는 이 겁 많은 소년조차 붉은 망토를 걸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때로 용감무쌍한 말을 한다.

 

  “그나저나 선배는 과제 안 하실 거예요? 아까부터 누워만 계시는데.”

  “아아, 이런 주관식 과제 딱 질색이란 말입니다. 하기 싫어요.”

  “논제가 뭔데요?”

  “현재 마법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라.” 라이언은 굴러떨어진 레포트용 양피지를 끌어올렸다. 제출자의 이름만 간신히 적었다. 이만한 길이의 양피지를 채우려면 갈 길이 구만리였다.

 

  “간단하지 않아요?”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깃펜을 움직여 한 문단 정도 간신히 더 적어내던 J는 라이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뭐가 문제인지 알긴 아시잖아요.”

 

  “아니, 아는 걸 적을 순 없잖습니까?” 혼혈인 J가 요구하는 답이라면 알았다. 다름 아닌 라이언 가드너의 언어로 이제는 논하라는 것이다. 혈통에 따른 차별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노라고. 그것이 20세기 마법사 사회에 다시 선 베를린 장벽이고, 우리는 그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수년 전 머글들이 망치를 들고 세계를 동서로 갈랐던 철의 장벽을 부숴버렸듯이.

 

  “어차피 곧 졸업인데 어때요?” J는 라이언을 이해할 수 없다. “그거 좀 적는다고 오러 시험을 치는 데에 큰 문제 생기지도 않을 텐데요. 선배가 순수혈통인 이상.”

 

  그러니까, 용감한 심장을 가진 주연은 진실로 겁에 질려 있는 조연을 이해할 길이 없다.

 

  “…그럼 해결 방안으로는, 저를 마법 정부 총리에 앉혀주십시오, 일단 해결해보겠습니다, 라고 적을까요.” 실없는 소리. “진심이에요? 개중엔 선배가 총리를 하는 게 낫긴 하겠네요.” 이것은, 라이언 가드너의 판단에 따라 빈말.

 

  “뭐어, 그래도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머니나 친척 어르신들에게 면목 없으니까.” 공연한 반발심. “적당히 이번에도 원하는 말이나 적어주고 말아야겠습니다. 뭐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이든, 제가 무엇을 꿈꾸든 별로 중요하진 않은 것 같으니까요.”

 

  “선배는 차라리 저희 기숙사였으면 좀 나았겠어요.” J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혹은 그런 척을 하며-다른 책으로 손을 뻗었다.

 

  “깡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문제처럼 보이거든요. 선배가 앓는 그 모든 불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