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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진영대립 STORY] 아리아드네

“래번클로?” 큼직한 모자가 작은 머리에 닿자마자, 모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에서 만족할 자신은 있느냐? 너는 거기 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불행해질 거란다. 아니, 정확하게는 ‘여기’ 말고 다른 델 가면 어디서건 너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남겠지.” 마치 신탁과도 같은 말투다.

 

  “차라리 불타올라라.” 모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부 네 것으로 삼고, 순수하게 욕망해. 되지도 않은 잔머리는 굴리지 말고. 그러는 법을 배우려면, 역시 슬리데린이 낫겠구나!”

 

  시간을 되감아 2008년으로 돌아온다. 폐허의 하늘은 흐리고, 어제 이름을 잘 모르는 기사단원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다. 마을 곳곳에 핏자국이 배는데, 지구는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지 않고 어제와 같은 속도로 돌았다. 나는 새벽이면 깨었고-네메아를 태우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차가운 새벽 공기를 폐부까지 삼켜가며 걷다 보면 동이 텄다. 지팡이를 들고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것을 빼자면 의무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폐허를 공전하듯이 돌다가 다 낡고 녹슨 공원에 이르면 작은 시계탑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고개를 들면 인간들이야 뭘 하건 무감한 까마귀가 새까만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주인처럼 군림하는 길고양이들이 꼬리를 움직이며 공원을 가로질렀다. 나는 맥빠지는 후회를 했다. 불면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골몰하면 나를 짓누를 것처럼 달려드는 기억과 불호령 같던 모자의 말. 너는 살라자르와 같은 장작이 필요해. 차라리 불타올라라….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 사유의 덫에 잡히셨나요?” 머리칼에 노란 리본을 맨 건방지고 성가신 그 애는 10년하고도 7년의 세월을 넘어 내게 멍청한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걸 하면 됐을 텐데.

  내가 뭘 하고 싶을 것 같은데?

  “영웅?” 멍청하기까지 한 대답. “그렇지만, 라이언 씨.

 

  “그저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했던 것뿐이잖아요.

  생각의 간극.

  “그건 사랑하고 많이 다른가요?

  이제 와 사랑과 친애를 논하는 것은 지난한 변명에 불과하지.

  “모자는 제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는데.” 불만스러운 음색을 한 11살짜리. “전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행복해지고 싶다고요. 우린 그런 거나 바라는 사람들이잖아요? 사랑, 행복, 끝내주게 지루한 평화. 순수하게 욕망했으면 전부 우리 거였는데.”

 

  마법사 사회에 포화가 일수록 하늘이 좁아지고 길이 사라지고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처럼 느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 그 누구보다도 예리한 시선으로 시대를 도려내며 사진을 찍던 네가 아즈카반에 가길 원하지 않았어. 나보다도 더 뛰어난 수사관이었던 당신이 단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혈통이라는 신화적 개념을 못 버티고 오러 사무국을 떠나길 원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가족을 잃기를 원하지 않았고, 필요가 되고 싶었어. 문학적 수사를 덜어내고 고백하자면, 나 또한 당신들을 사랑했는데.

 

  떠밀리고 부딪히고, 막다른 길에 멈추어 서기를 반복하고서야 깨닫는 바 하나. 도대체 내가 어떻게 슬리데린이었지? 그리고 둘, 전쟁이라는 괴물이 도사리는 시대에 오러가 되어 뛰어들 요량이었다면 좀 더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눈앞에 도사리는 길마다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의 미로에 들어서기 전에, 나는 마땅히 이 괴물 같은 시대를 미치지 않고 관통하기 위한, 그리하여 시대에 칼을 박기 위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예술은 제 살에 칼을 박는 일이지. 적어도 오러는, 내가 이 빌어먹을 미로를 헤치고 돌아가기 위한 적합한 실타래가 아니었는데.

 

  “망설이고 사유하고 골몰하다가 헤매고 부딪히다가 방향마저 잃어버렸군요.” 검은 돛을 올려다오. “악당의 죽음을 알려봐야 아무도 절벽에서 뛰어내려주진 않아요.” 그러나 부고가 합당하지. 끝내 시대의 괴물에게 잡아먹혔으니, 나의 고향에 테세우스가 죽었다고 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