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뮤니티 로그

[미헤일/STORY]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줘

  미헤일 체레텔리는 근래 수많은 실패를 쌓았다. 날이 무더웠다. 어딜 가든 그려 내도 좋을 남태평양이 뻗어 있었으나, 그는 단 한 장도 그리지 못했다. 엉망진창으로 종이를 찢어 교내에 있는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 버렸다. 학교로 돌아오니 동기들이 모여 있던 강당이 소란스러웠다. 실없는 말을 한다. 그것이 미헤일 체레텔리의 발전이다. 그는 남들보다 솔직했지만, 사람일진대 페르소나 한 장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나 하고, 별일 없었던 것처럼 군다. 놀랍게도, 말끝마다 재수 없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미헤일 체레텔리조차. 저녁을 챙겼다.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사지를 두고 누웠다. 화구를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벽마다 나붙은 그림이 창작자를 짓누른다. 그러게 되도 않을 풍경화 따위를 그리고자 노력하지 않았으면 됐잖아. 미헤일이 사랑하고 도취하여 그린 수많은 추상화가 속삭이는 것만 같다. 해가 저물었다. 불을 켜지 않았다. 밀려드는 노을, 파도소리, 일렁이는 밤하늘, 캘리포니아처럼 호흡을 덮는 열대야.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그는 입상이 불가능하다.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널어놓았던 스케치북 하나를 주웠다. 침대에 엎드려 엉망진창인 선을 긋는다. 획을 긋는 손길에 망설임이 없고, 저주는 형태를 갖춘다. 빌어먹게 따분한 풍경화 따위는 이제 그릴 수 없게 되었다. 멍청한 어른들에게 질렸다.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미헤일이 잘하는 일도 아니었다. 어느덧 상체를 일으켜 그려나가는 일에 몰두했다. 지면에 하얀 머리칼이 닿고, 얼음 같은 눈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태워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타올랐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창조한 인간은 불경한 것이며, 불완전한 까닭에 신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외로 그는 신들에게 인정받는 예술가는 아니었던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미헤일은 집요하게 그렸다.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품을 사랑했을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불을 훔쳤다 안겨주었을까? 고개를 들면 기숙사 벽지가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득 나붙은 끔찍한 그림들. 미헤일 체레텔리의 조각을 잘라 만든, 인류-혹은 스스로-에게 바치는 악독한 저주.

 

  타오르는 열망을 감수하기 위한 각오를 알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철저하게 증오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 내가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 때까지 무심한 눈으로 나를 짓누르듯이 내려다보는 예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마다할까? 수단은 사랑이 아니라도 좋았다. 뭐라도 좋으니까, 이젠 그만 그리고 싶었다. 그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줘.

 

  그 작자는 대체 어떻게 인류에게 불을 안겨주었단 말이냐. 인류의 얼굴에 행복이 번지면, 프로메테우스는 절벽에 속박당한다. 자신이 예감했던 예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이 결연한 투사는, 기꺼이 운명을 짊어진다. 사랑을 감수하는 것이다.

 

  미헤일은 사실 아무것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멈출 방법도 몰랐고, 그저 울고 싶은 기분으로 스케치하며 속삭인다. “전부 망해버려라.” 그런 저주를. 그리고 또 어디에 내놓지도 못할 것을 그리고, 그리고, 쏟아낸 분노를 어쩌지도 못해 울며 난처해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벽에 붙이고 마는 어리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