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란 건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할머니를 만나고, 주하와 손을 잡고 보육원에 나오고서도 몇 년이 지나고서야. 열세 살 되던 해의 겨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코앞에 두었던 날. 호랑이 같은 할머니의 손주들이 되어서, 우리는, 특히 나는 주하보다도 더 엄격하게 인간성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지냈다. 초등학교에선 빈번히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올 적마다 나를 불러다 앉혔고, 왜 그런 못된 일을 저질렀는지 물었다. 어릴 때 쓴 반성문이 몇 천 장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별로 진지하게 잘못했다고 쓴 적은 없었지만, 그때 배운 건 하나였다. 아, 대충 잘못했다고 빌면 봐주는구나. 반성하지 않았던 까닭은 내가 우리 여사님을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고, 초등학교에서 내가 저질렀다고 난리법석이 되곤 했던 모든 사건에는 주하와 나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던 틈새가 연루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보육원을 떠나도 세상은 종말 중이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던 귀신이나 괴물 같은 것들이 거기서 나왔다는 걸 알아차렸고, 둘이 머리를 맞대어 저것들을 틈새에 집어넣으면 틈새가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마저 알아냈다. 괴물들을 쫓아 학교며 시장, 바닷가, 온 동네를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 날은 시장바닥에 내놓았던 과일 상자를 엎게 되고 또 어느 날인가는 선생님이 들어가지 말라던 폐쇄된 다목적실의 문을 따게 된다. 사고뭉치, 천방지축, 사람이되 사람 아닌 ‘건방진 것들’, 그게 그 무렵 우리 남매에게 달려 있던 꼬리표였다. 주하는 좀 억울할 수도 있었겠다. 그 애는 나기가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람인데.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반쪽이라지만.
할머니는 진지하게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될까 걱정했지만, 나는 내가 저 찢어진 틈을 틀어막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다. 영웅주의에 취해 있었나, 모르겠다. 보육원이라는 자그마한 영역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애들을 지배하는 마왕으로는 성에 안 찼던 걸지도 모르고, 글쎄, 솔직히 토로하자면, 나는 지금도 인간들의 목줄을 내가 쥘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랄 적도 조금 있는데, (청룡이 늘 그런 건 아니라고 해명해두자. 그렇지만, 가끔 그러하다고는 명시하겠다.)
각설하고, 내가 사도란 걸 처음으로 안 그날 왜 괴물을 쫓고 있었는가에 관한 설명은 이만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고작 열세 살이었지만, 그땐 열세 살이 그다지도 어린 나이란 걸 잘 몰랐다. 이제 곧 중학생으로 올라갈 테고, 그 정도면 어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날도 늘 하던 걸 했을 뿐이다. 시장바닥을 기어 다니는 징그럽고 거대한 벌레를 쫓아 달리는 거다. 나는 그 무렵 이미 세 가지쯤 되는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고, 괴물을 물가로 몰면 유리해진다는 것까지는 체득했다. 나는 물과 가깝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얼마나 복이었는지, 물론, 바닷물은 다루기 까다롭지만….
시장 끄트머리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적이다. 그 벌레는 그때까지 내가 마주했던 이형의 존재 중 가장 거대하게 생겼지만, 뭐,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었다. 나는 신에 가까우니까. 혹은 신이 분명하니까. 내 몸집에 두 배가 되어도 세 배가 되어도, 나는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분명히 나와 평범한 타자는 다르니까, 이 무대엔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진다. (이것이 하람이 12명 중에서도 근사한 등장인물인 이유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무대와 시나리오를 인지한다. 자신이 퇴장할 때가 아니라면 한없이 무모해질 수도 있는 것이 주연이다. 신에 가까운, 그러나 결코 인간, 그래, 그린 듯한 반신이라고 표현하면 옳겠다.)
그때, 불시에, 저절로, 기적처럼 이형의 존재에 날카롭고 거대한 화살이 꽂혔다. 보이지 않으나 명백하게 따뜻한 피가 튀었다. 서늘한 금속. 바람처럼 날아온, ‘있을 수 없는 기적’, 그리고,
“애새끼가 겁도 없이,” 돌아보면 한껏 화가 치민 듯한 금색 눈동자. “너 목숨 두 개냐? 등신아, 그러다 제 명에 못 죽지.” 처음 보는 교복, 안 어울리는 흑발과 험악한 말씨. 안경 밑으로 보이는 피곤한 기색, 그래봐야 중학생이니 물고 있던 건 납작한 막대사탕.
12사도가 내게 사명을 알리러 왔다. 내가 만난 최초의 타자, 나와 똑같은.
* * *
“그래서 형은 무슨 괴물이에요?”
“백호라던데.”
“왜 ‘카더라 통신’ 투인데요? 자기 일인데. 난 내가 용인 거 알았는데요, 한 세 살 적부터.”
“난 몇 년 전까지 몰랐어. 귀신 보이고 괴물 보이고 그런 건 무슨 신병이라도 온 건 줄 알았지. 부모님도 인간이고 주변 사람 다 인간인데 어떻게 내가 반신인 걸 알겠냐? 중2병도 정도껏이지.”
“역시 저 신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오케이, 접수. 반신이란 말이죠. 이제야 좀 명확해지네.”
“방금 처음부터 알았다며.”
“용인 줄 알았다고 했잖아. 반신인 건 몰랐어요. 뭘 어떻게 알아요, 할머니랑 주하도 인간이고, 주변 사람 다 인간인데….”
* * *
(상기한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청룡과 백호가 철저한 타자이며,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호는 자신이 신인 것을 늦게야 알았다. 그는 신물로서의 모습과 자신을 기른 인간 부모가 가진 외형의 차이로부터 상처받는 ‘인격’이다. 한편, 청룡은 자신이 신인 걸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신으로 떠받드는 보육원에서 군림하며 자란 그는 신물로서의 정서와 자신을 기른 인간 사회가 요구하는 규율로부터 상처받는 ‘신격’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오래 의형제로 함께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망망대해에 두 사람뿐이었던 까닭이다. 나이가 가깝고, 사는 곳이 가깝고, 그들을 인간으로 사회화하고 있었던 양육 환경이 비슷했던 까닭에. 그러니 때가 오면 금이 간다. 사실은, 저 빌어먹을 개새끼가 사도가 아니었더라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친해지지 않았을 테니까. 서로 이해할 수 없는데 무슨 수로 애틋해졌겠나, 그래, 그들이 반신이 아니었더라면, 서방 수호신인 백호, 도환찬이 사도가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충돌할 일도 없었을 철저한 타자….)
* * *
그래도 찬이 형과는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이건 우리가 좀 더 자란 후의 일이다. 괴물의 살은 터지고, 피는 경사진 아스팔트를 따라 흘렀다. 그날따라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어라? 형도 아직 교복을 입던 시절인 것 같다. 그 형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나, 그 형은 어쩌다 수능을 말아먹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뭐, 나와 별반 다른 이유는 아니었을 터다. 새벽까지 괴물을 쫓고 종말을 막고 나면 동이 트는데, 학교에서 우리가 무슨 수업에 집중했겠나. 그 형은 그냥도 똑똑하니까 공부 머리가 됐겠지만, 난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청룡의 의식의 흐름이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살갗에 닿는 추위가 남달랐는데, 머리가 조금 멍했던 것 같다. 차가운 비를 맞아서였을까? 한겨울에 전투로 들끓던 몸이 다 식도록.
“망할 놈의 종말이 끝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타인인 우리 찬이 형. “형, 듣고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죽을 만큼 열심히 굴러서 세상을 구하면 말이야.” 죽을 만큼 구르고 있었다. 그 형이 19살이면 난 고작 16살이었는데도, 새벽엔 잠도 못 자고, 학교에서 교사와 전쟁을 벌여가며 쪽잠으로 수면 시간을 채워가면서.
“그때 가면 우리 뭐하죠? 보아하니 형도 수능으로 대학 가긴 글러 먹은 거 같은데. 취직은 할 수 있으려나.”
그는 내가 이런 소릴 하면, 꼭 짜증이 치민다는 것처럼 혀를 찼다.
“젊은데 당장은 뭐라도 해 먹고 살 수야 있겠지. 기술이라도 배우든가.”
“기술 배울 때까지 괴물들이 쉬어준대요? 일본의 걔 누구지, 카마이타치? 걔 자랄 때까지 기다린대도 우리 대충 20대 중반까진 아무것도 못 하고 틈새 수선이나 해야할걸. 아니면, 북미에, 걔네 있잖아요, 이름 뭐더라. 미샤랑 니카도 비슷한 연배던가….”
“부모님 가게를 어떻게든 물려받는 것도 고려해보고 있긴 한데.” 이제 와 말이지만, 그것조차 뜻대로 안 됐다. 찬이 형은 졸업하고 인바운드 일을 했으니까. 고졸이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엔 한계가 많았다. “넌 뭐 어떻게 살려고. 넌 유독 인간의 삶에 정 못 붙이고 있잖아.”
서방 백호가 말했다. “난 어디 가서 뭘 하든 잘이야 지내겠지. 너랑 달리 정신머리가 인간이라서 사도로서의 사명이 끝나도 피해 볼 게 없거든.” 혹은 도환찬이, “하고 싶은 거 떠들어봐. 들어는 주마.” 아, 그러네. 나 그때 큰 부상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왠지 기억 속의 그 망할 백호가 평소보다 조금 멀쩡하게 대화해주더라. 그 형은 유독 그랬다. 평소엔 말 끝마다 쌍욕인데, 이상하게 내가 죽을 지경으로 너덜너덜하게 다치면 태연한 척을 해도 겁먹은 얼굴을 해선.
“아이씨, 이럴 때 이런 말하면 유언 같아지는데.”
“시발,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고 너 맨날 하던 거 해. 헛소리하라고. 복권 당첨 그런 거. 있잖아. 폼 안 나고 가오 죽고 끝내주게 속물적인 거.”
“아, 그럼 종말 끝나면 도환찬이 가수 데뷔시켜서 자꾸 시험 기간만 끝나면 나 불러다가 노래방에 앉혀놓고 양민 학살 못 하게 만들어야지.”
“미친 새끼.”
“우리 주하랑 할머니한테 축복 내리기?”
“꼴에 신이라고 헛소리한다, 또.”
“아하하, 아악, 시발, 웃으니까 아프네.” 그래도 웃겼다. 그때도. “근데 뭐, 어쩌겠어요? 난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거 하나도 없는데. 형 같은 사도가 있으면 나 같은 사도도 있는 거지. 한없이 인격에 기댄 사도가 있으면, 한없이 신격에 기댄 사도도 있겠지. 우린 인간과 그 사이 어딘가의 경계잖아요.” 진짜 꾸역꾸역 친하게도 지냈다. 그다지도 아다리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어디 바닷가에 사당이나 하나 해놓고, 인간들 소원이나 들어주고, 고난이나 해결해주고 살고 싶은데요, 나는. 종말 상황이 종료해도 나는 절반의 청룡이고, 신이니까. 그건 안 사라지는 면이니까, 그냥, 태어난 그대로 아무것도 부정당하지 않는 하람이로 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명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유독 인간적인 것이 좋다고 믿는다. 모두가 내게 인간이길 종용한 것은,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손에 쥐여주고 싶은 사랑은 맞았을 테지만.
“…그래, 그렇게 살려면 일단 네가 다른 신으로 대체되지 말아야겠다. 최후까지 살아야겠네.” 19살의 도환찬이 이런 기특한 말을 했구나. “너희 집 코앞이다. 내가 뒤져도 치유 권능 있는 그 새끼 멱살 잡고 끌고 올 테니까 죽지는 마라. 하람아, 너 아직 형한테 유산을 전부 넘긴다는 유서 안 썼어. 죽으려면 한참 멀었다. 나한테 줄 유산도 만들고, 유서도 쓰고, 망할 놈의 사당도 만들고, 아주 너 하고 싶은대로 지랄 맞게 살려면 일단 죽지나 말아봐. 시발, 진짜 사도고 사명이고 나발이고, 매번 옆에 있는 사람이 숨 넘어가게 싸우고 구르고 그러는 거 좆 같아서 살 수가 없어, 나는….”
도환찬은 십수 년이 지나 결국 사도로서의 사명을 포기했다. 당연한 이치다. 그 형은 인간이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사명에 매달리고 있다. 당연한 이치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니까, 결국 올 게 온 것뿐인 일이다. 그 수많은 날, 내 옆에서 같이 버텨주는 서방 백호가 죽을까 봐 두려워했거나 말거나,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고 또 얼마나 미워하고,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꼈거나 말거나, 인간은 사명을 버틸 수가 없고 신은 사명 없이는 살 수가 없어, 그것이 사도가 절반으로 갈라선 이유다. 완벽히 50 대 50, 인간과 신인 경우는 없으니까. 누군가는 40, 누군가는 60, 그래, 회색, 회색, 서로 명도가 다른 회색뿐인 12명, 모자란 신과 모자란 인간들, 만파식적을 사용해도 돌이킬 수가 없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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