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아 윈프리드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미래 시제를 사용할 수도 있겠다. 뻔했다. 그 여자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학교의 부름이란 부름은 모두 거절했다. 내가 무슨 사고에 휘말려 선생이 전화를 걸어도 그녀의 답은 똑같았다. 무응답 혹은 묵묵부답. 나의 선생이란 작자와 어머니라는 인간 사이에 흐르는 갑갑한 침묵. 나는 단칸방에서 통화 아닌 정적 속의 치열한 대치 상황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불현듯 그 모든 상황이 지긋지긋해져서 집에서 뛰쳐나오기 일쑤였고, 대부분은 길바닥에 앉아 멍청한 시간을 허비했다. 운이 좋으면 헤이스팅스 부부가 내게 저녁 식탁 자리 한 구석이나마 내주었다. 그들도 먹을 게 궁핍한 날엔 나를 앉혀줄 수가 없었지만, 초라한 식탁이나마 좋았다. 아일라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그저 그런 연속극이 텔레비전에 흐르고, 어머니와 선생의 침묵이 우리 집을 바싹 태워내기만을 기다리곤 했는데…추억은 각설하겠다. 그 여자는 올해도 나를 보러 오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그게 다였다. 자식이 상공에서 추락해도 달리아 윈프리드는 꿈쩍 않는다. 그리핀도르의 사감 교수가 편지를 썼겠지만, 어쩌면 호그와트의 소인이 찍힌 편지 봉투마저 열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집엘 안 왔거나.
한밤의 병동은 갑갑한 남색이다. 달빛은 들지만. 호그와트엔 전선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구가 없으니 날 밝도록 불을 밝혀둔 교실이나 교무실도 없다. 머리맡에 난 높은 창문을 내려다보다가 시시해져서 도로 멀거니 하얀 병동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시꺼먼 구름 너머로 솟은 보름달은 교정과 호수, 무엇이 도사리는 줄도 모를 숲을 비춘다. 등불을 든 숲지기가 오가지만, 모두가 깊이 잠들어 숲지기 아닌 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한 풍경을 멍청하게 쳐다보는 일엔 질렸다. 그런 건 런던 골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달리아 윈프리드가 정신이 나가서 입술을 꾹 깨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기 시작하면 그녀 주변은 견딜 수 없는 생지옥으로 변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돌처럼 꼼짝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도망가야 직성이 풀렸고. 나는 무의미한 동선(動線)이 싫었다. 구두를 신은 발, 뒤꿈치를 구겨 신은 운동화, 눈앞에 어지럽게 사람들이 오가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담벼락에 기대어 멀뚱멀뚱 그들을 쳐다보아도 그들의 인지 속에 내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은 하나도 없다는 명백한 진실 앞에 나는 손쉽게 사람이 아닌 굴러다니는 돌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창 아래 도사리던 숲지기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터였다. 달리아 윈프리드 또한 무슨 생각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빗자루에서 추락하고 크게 다쳐도 그들의 사고와 일상에 아무런 변동을 일으킬 수 없었다. 다시 말하자, 나는 남의 이야기를 멀뚱히 쳐다보는 취미가 없다. 삶이 벅찼다. 매 순간에 파도처럼 닥치는 무의미가….
빗자루에서 추락했을 직후에는 일대가 소란스러웠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뇌리에 박혔다. 망했다. 퀴디치가 좋았다. 15년 살며 마주한 세상 속에서, 이 멍청하고 사랑스러운 스포츠의 세계에만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유령 같은 도덕과 윤리가 배회한다. 모두가 규칙을 지켰다. 반칙을 저지르면 벌을 받고, 재능과 노력은 치하받았다. 쿼플을 안고 골대로 돌진하는 일에 혈통과 부(富)는 무관하고, 경기장에선 평등이라는 가치가 널리 인정받았다. 나는 단 한 번의 추락으로 어쩌면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세계를 통으로 잃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나는 다시 무가치한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구나. 행복은 모래성과 같아 파도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고, 퀴디치가 아닌 세계는 불공정으로 가득하다. 조류에 떠밀리고, 파도에 흔들리는 이 빌어먹을 바다만이 나의 세계다. 사실, 지구는 절반 이상 바다로 덮여 있지 않던가…사람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고, 단단한 육지를 ‘생활의 기준(Standard)’으로 세우지만.
사건은 인간을 변하게 할 수 없다. 퀴디치가 나를 뿌리째 다른 사람으로 만들진 못했고, 아들이 다쳐도 달리아 윈프리드를 하루아침에 살가운 어머니로 바꿔놓진 못했듯이. 우리는 우울이라는 관성을 이기지 못한다. 하던 대로 살고, 울적함에 취해 오늘을 저주하고 내일을 비관하면서, ‘우연히 들이닥친’ 불행에 허우적댄다. 그 어떤 사람도 내 인생을 마법처럼 바꿔주지 않을 테고,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극적으로 변하게 만들 수는 없다지만,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고 어쩌면 영영 풀리지 않을 실타래를 들고 우린 모두 울고 있을 따름일지도 모른다지만,
병동 침대 하나하나를 독립된 공간으로 가르던 흰 커튼이 불현듯 걷힌다. 눈을 크게 깜빡이다 고개만 까딱 들어 쳐다보면, 병동의 깨끗한 창문에서 미끄러지는 달빛에 시꺼먼 그림자가 씻겨 나갔다. “야, 너 통금은 어쩌고,” 평소라면 그렇게 물었을 일이다. 오밤중에 기숙사에서 나눠준 잠옷 바람으로 병동까지 걸어온 콘라는 눈가가 새빨갰고,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말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나를 집어삼키려고 들이닥친 불행의 해일을 이해하려다 새벽까지 잠 못 들고 병동까지 숨어들어온 거였다.
“이해할 게 뭐가 있어? 그냥 벌어진 일이야.” 오른팔이 불편했던 까닭에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 못했다. 하얀 침대 베개에 힘없이 고개를 묻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도로 흰 커튼을 드리우는 콘라의 큼직한 등을 쳐다보았다. 참 맥 빠지는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잠이 안 왔어.”
“내가 왜 퀴디치 하다가 추락했는지, 그런 걸 고민하느라고 잠을 못 잤다니 진짜 웃기네. 그새 종교라도 생겼어? 신의 뜻을 가늠하고 싶어지게.”
“멀린 맙소사.” 콘라는 꼭 그런 표현으로 신앙을 부정하곤 했다. 병동 선생님께 들키면 꼼짝없이 그리핀도르의 모래시계에서 100점만큼 루비가 줄어들 일이지만, 우리로선 아무래도 좋았다. 콘라는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애가 한잠 자러 왔다고 짐작했다.
“…왠지 제이미도 못 자고 있을 거 같길래 온 거야. 병동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잖아.”
“아하, 우리 엄마가 호그와트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편지했다는 소식을 또 어디서 주워들었군.”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였어?”
“난들 내 소문을 통제할 순 없으니 상관없어. 별일도 아닌데 네가 마음 쓰다 운 것 같이 보이는 건 좀 신경 쓰이지만.”
“네 일이니까 당연히 눈물이 나지.” 콘라는 말했다. “너는 네 일을 잘 돌보려 들지 않으니까 내가 돌보는 거야. 가족이니까.”
사건은 인간을 변하게 할 수 없고, 더군다나 사람은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무턱대고 주어진 관성에 의하여 나아가며, 공감과 다정은 콘라의 뿌리일 터다. 나를 만나 그 애가 특별히 다정해진 것일 리가 없었다.
“그래도 와주니 좀 낫네.” 그리고 이것도 아마, 나의 타고난 면일 것이다. “안 그래도 잠이 안 왔어. 망할 놈의 불면증 말이야, 알잖아….”
나는 외로운 게 죽을 만큼 싫었다. 불면의 원인이요, 우울의 단초, 내 모든 불행의 근간이다.
“우울한 얘긴 됐으니까 네 얘기나 좀 해봐. 요즘 수업에서 재밌는 일 없었냐?”
“아, 그러고 보니 마법약 수업에서 말인데….”
콘라의 다정과 선량함이라고 무한히 솟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결국, 본질적으로 해적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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