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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4->7] 나이트 버스 전부 끝났다. 그렇게만 수식할 수 있을 밤이었다. 아직 후유증이 있었던 팔로 부엉이가 든 새장을 안고 학기가 끝나면 조금씩 불어나기 일쑤였던, 그러나 불어나도 다른 애들보단 분명히 든 것 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던 짐가방을 끌고 어둠이 내린 보도블록을 걸어 돌아왔더니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사라지고 없었다. 멀쩡하던 단칸방 집이 발이 달려서 달아났다는 말은 아니었다. 내가 그날 밤부터 그 비좁은 단칸방을 더는 집이라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의미였다. 현관이 열려 있었고, 엄마는 거기에 있었다. 그 집은 철로 만든 가느다란 계단을 올라가야 있었는데, 다른 집보다 단연 사정이 나쁜 티가 났다. 고작 밤 9시였다. 똑같은 단칸방이라도 다른 집은 그 시각에 하는 텔레비전 퀴즈쇼에서 나는 제법 즐거운 웃음소리..
[제임스/4] 백경 시끌벅적하던 사위가 고요해졌다. 널찍한 교실에 내려앉는 적막. 교수님은 저 너머 옷장 옆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 나를 시험하는 눈을 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그는 다른 학생에게 했던 그럴듯한 격려를 내게 건넸다. “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 열심히 해보려무나. 주문을 잘 기억하렴. 리디큘러스야.”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거의 유일하게 새것이었던 지팡이의 자루를 쥐고 속으로 발음만으로도 웃음이 날 것 같은 그 주문을 연이어 읊조렸다. 리디큘러스. 직관적인 주문. 자랑은 아닌데, 나는 이 수업에서 지팡이를 들고 남들보다 못한 성과를 보인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제기랄. 그래, 변명이다. 내가 오만했던 까닭에 무너졌다고. 교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제임스/1->4] 마지막. 올 여름에도 전기가 한 번 끊어졌다. 마을 어른은 우리 집에 와서 동네 일대가 정전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게 또 불법으로 부엉이를 사육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마술학교에서 선물받은 부엉이 드레이크 말곤 일절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떼었다. 솔직히 난 마법 세계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머글에게 마법에 관하여 함구하라면서 부엉이 우편을 유지하는 지점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숨기는 입장이 되어보란 말이다. 특히나 런던은 이제 더는 부엉이라곤 보기 어려울 환경이 된 지 오래였다. 가까운 파출소는 부엉이 때문에 못 살겠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이전에 한 번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 때문에 과거에 한번 부엉이 난리가 났던 우리집, 그러니까, 나를 의심했다. 뭐, 드레이크에게도 친구..
[제임스/1->4 방학] 그 마법사, 설리번 니키는 내가 개학하고 나서야 일하던 가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주말부터 아일라 할머니에게 등짝을 후려맞고 울며 겨자먹기로 나를 데리고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러 직장 있는 다이애건 앨리로 일찍 돌아온 셈이 되었다. 리키 콜드런의 바텐더는 니키를 알아보았고, ‘설리번의 피코드 호’는 아직 개장하려면 보름은 더 인테리어를 고쳐야 할 거라며 깔깔 웃고 니키를 놀리기 바빴다. 니키는 리키 콜드런에서 기어이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다이애건 앨리로 통하는 벽으로 향했다. “제기랄! 난들 그런 성실한 직원이 되고 싶겠냐고요. 가게 문도 안 열었는데 벌써 출근한다고 설리번이 돈 줄 것도 아니잖아요!” 니키가 지팡이로 벽을 누르면, 리키 콜드런의 벽은 다이애건 앨리를 향해 무너졌다. 학기가 임박한 다이..
[제임스/1->4] 어쩐지! 그날은 성탄절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기상 캐스터는 기록적인 폭염을 예고했고, 일기예보가 끝나면 수요일 아침부터 시작한 교통체증에 관한 지루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아일라 헤이스팅스는 구운 식빵에 땅콩버터를 바르며 조그마한 앞마당에 심은 붓꽃이 여름 햇살에 말라 죽게 생겼다며 걱정했고, 제임스는 제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읽으며 하품했다. “다른 도시에는 비가 온다는데요. 제 친구가 편지에 그렇게 적었어요.” 아일라는 잼을 잘 바른 식빵을 어린 제임스에게 건네며 말했다. “넌 여름마다 온갖 도시에서 편지가 오는구나, 제이미.” 이제 노부부는 그에게 양피지로 된 편지가 오는 일에 익숙해졌고, 부엉이에 놀라지 않게 되었다. 평온한 8월 1일이 될 예정이었다. 달리아 윈프리드는 간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
[제임스/1학년] 부디 저의 보물을 지켜주세요. (정갈하고 또박또박 적은 글씨. 양피지의 상단에 자리 잡은 도드라지게 큼직한 글씨.) 아일라 할머니께서 읽어주세요. 허버트 할아버지 말고요. 할아버지, 이미 편지 뜯으셨어요? 아이고. 어차피 글씨가 잘 안 보이시잖아요. 얼른 할머니께 가서 읽어달라고 그러세요. 이젠 건넛집에 내가 없으니까 편지 읽어줄 꼬마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아무튼, 양피지를 아껴야 하니까 다음 줄부터는 글씨를 작게 쓸게요. 할머니한테 읽어달라고 하세요! (밑줄) 코 박고 편지 읽거나 그러시면서 무리하시진 마시고요! 아! 양피지에 놀라지 마세요. 이 기숙학교에선 아직 양피지를 쓴다고 그러네요. 무지 낡은 학교라 그렇다나 봐요. 전통이 어쩌고 그런 거예요. 아마도.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제이미예요. 편지를 전하는 부엉이가 부디..
[콘젬] 질투는 나의 힘 제임스 윈프리드는 콘라 헥사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퀴디치 훈련장에 붙어 있는 탈의실에서나 들었다. 단단히 여몄던 보호대를 풀고 새빨간 퀴디치 유니폼 로브를 벗는 동안 오가는 짤막한 잡담의 화제에 제임스의 가장 가까운 친우인 그 애가 올라온 거였다. 슬리데린의 어느 고귀한 순수혈통 아가씨와 연애한다더라. 그 밖에 오가는 단편적인 정보. 그 여자애의 머리칼 색이라거나, 생김새, 제임스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도리가 없는 높으신 집안 어르신들 이야기…. 그 애의 연애사는 제임스만 까맣게 모르고 있던 것으로, 떠들썩하게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화제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이 별나게도 들지 않았다. 스웨터를 벗고 교복 셔츠의 단추를 잠가내면서 그저 쫑긋 청각만을 열어두는 것이다. 허리까지 긴 머리칼을 다시 흐트러짐..
[콘젬] 성냥불은 타오른다. 제임스 와이엇 윈프리드는 여전히 담배를 피웠고, 여전히 불면하는 것이 분명했다. 배는 정박했고 별빛 어른거리는 파도는 뱃전에 부딪혀 부서지는데, 이토록 어둑한 밤에 선장이란 작자는 갑판에 나와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거였다. 콘라 데본셔 헥사 퀸턴은 그 남자와 몇 발자국 떨어져 섰다. 21세기 현대 영국에서 온 콘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챙 넓은 모자를 쓰지 않았고, 붉은 코트 같은 것을 걸치지 않았다. 그저 흰 셔츠에 검은 바지, 높이 올라오는 부츠를 신어 어쩐지 21세기에 있었던 그보다 조금 더 포멀해 보이기까지 해서, 자신이 그새 다시 21세기로 돌아온 건 아닐까 착각마저 들게 하는 모습. 그의 곁에 날 선 레이피어가 없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도구가 성냥이 아니었더라면 영락없이 꿈이구나 짐작했을 ..
Mother 별은 맑고 파도는 만으로 밀려들었다. 에밀 레녹스 고다밍은 배의 갑판에 등을 대고 쓰러져 누워 메마른 감상을 떠올렸다. 선상 반란 이후 2년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몸에 밴 습관이 빠지질 않는다. 이질감이 가실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를테면, 별이 총총한 야심한 시각, 그가 갑판에서 밤하늘 따위를 쳐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낯설었다. 재작년이었더라면 그는 오늘 밤도 나탈리 호의 창고 앞에서 불침번을 서야 했을 것이다. 소년 선원의 일상은 늘 그러했으니까. 친우가 눈을 붙이면, 한 사람은 눈을 벌겋게 뜨고 복도를 내다보아야만 한다. 샬레 선장을 위시한 폭력적인 어른 선원이 언제 불시에 잠든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붙들고 끌고 갈지 알 수 없으므로. 특히나 그 우악스런 손길이 샬레 선장의 것이라면, 그날부로..
[달바흐/모리안] 그리하여, 사랑이란 무엇인가? 1. 나룻배를 타고 커다란 강을 건너면 석벽을 세워 만든 고성이 거기에 있었다. 학교는 스코틀랜드에 있다고 했다. 가을 첫머리였고,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크거나 그만큼 작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숲지기가 치켜든 불빛을 따라 걷는 내내 살갗에 닿는 공기가 습하고 차가웠다. 지하 계단을 오르면 밝게 빛이 쏟아지는 복도가 나왔다. 벽마다 걸린 액자.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피고 그림 속 망령들은 벌써 거나하게 셰리주를 퍼마셔 붉은 얼굴을 했다. 그들은 그림 같은, 사실 본질적으로 유화 물감일 잔디밭에 엉겨 붙어 쓰러져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올해도 신입생이 오는군.”, “올해 슬리데린은 몇 명일까? 그리핀도르는?”, “내기할까? 1갈레온 씩 거는 거야….” 그리고 시작되는, 무의미한 도박 여러 판. 아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