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229)
[라이언/4학년 STORY] 화마에 관하여 그웬 네메토나 가드너가 말했다. “비밀 결사 같은 데 들어갔다간 내가 네 허리를 반으로 접어줄 줄 알아.” 고목의 나뭇가지는 앙상했다. 호숫가에서 뻗어오는 바람에 아직 겨울 냄새가 짙었다. 호그와트엔 눈이 많이 내렸다. 라이언 크레드네 가드너는 보통 생각 없이 호그와트 급행에 몸을 실어버리곤 했으므로 그 열차가 북으로 달리는지 남으로 달리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곳이 잉글랜드인지 스코틀랜드인지조차 모른다. 다만, 호그와트가 런던보다 북부라고만 들었다. 성탄절이 지나고도 오래도록 부유하는 겨울 냉기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호그와트는 런던보다 조금 더 오래 눈발이 휘날리는 곳에 실존한다고. 라이언은 사실, 호숫가의 후미진 구석에 오래도록 서 있었던 버드나무 밑을 그웬과 공유할 마음이 없었다. 그 비밀 장소는..
[라이언/보가트] 그러나 여신은 그를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커튼을 드리운 교실은 어스름했고, 누군가 창문을 열어둔 것 같았다. 교수가 옷장을 여는 동안, 라이언 가드너는 발치에 드는 햇볕이 물결치는 모습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따뜻한 볕 아래로, 방금까지 그늘에 가려져 있는 줄도 몰랐던 먼지는 부유한다. 고성(古城)의 바닥은 돌로 이루어졌다. 걸으면 발소리는 남으나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메마른 얼굴을 했다. 머릿속으로만 천칭을 들고 가늠한다. 자신은 ‘소리는 남는 발소리’일까, ‘남지도 않는 발자국’일까? ‘보이지 않는 먼지’인가, ‘눈에 보이는 성가신 망점’인가? 고개를 들면 햇살로 짠 베일 너머로 시커먼 어둠을 삼킨 옷장의 문이 보였다. 교수는 그에게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괜찮을 것 같..
[라이언/4학년 과제] 그러하니 오늘부터는 태양이 돈다. 선생은 떠나고 교실에 한차례의 침묵이 밀려들었다. 누군가가 먼저 불만 어린 숨을 토하면 억눌렸던 불평이 해일처럼 교실을 휩쓸었다. 가히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다니시는군, 교수가 떠난 빈 칠판을 쳐다보며 라이언 가드너는 생각했다. 이럴 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는 어른 마법사들이 숱하게 오가는 다이애건 앨리에서 매해 여름을 나고 있었다. 어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귀동냥하기만 해도 마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추 큰 그림 정돈 알 수 있었고, 그런 마법부가 선별한 교수라면 최소 상식적인 인사는 아닐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수준일 줄만 몰랐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학생 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라곤 없는 양반께서 불필요한 반발을 일으키면 어떡하나? 그만큼 돌아가는 머리가 ..
[익명님 커미션/2차] 추론에 의한 존재증명 * 해당 글은 잔나비의 이라는 곡의 2차 창작입니다. 신청자 분의 곡 해석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호흡이 하얗게 얼어붙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하여 나는 그대가 왔음을 실감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이 몸 하나를 오롯이 파묻던 눈이 허벅허벅하게 녹았고, 어느 연못가에 끼었던 살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 그 밑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 따위를 들었습니다. 아직 나무는 앙상한 가지마다 하얀 눈을 이었지만, 나는 하루가 다르게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살을 에는 바람이 따뜻한 숨처럼 녹을 것이고, 동면하던 동식물이 깨어나 그대를 맞이하겠지요. 그리고 내게는 세 계절에 이르는 묵직한 수마(睡魔)가 닥칠 것입니다. 오래도록 포근하고 물기 어린 눈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Ulysses 그 남자는 패트로누스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이 더블린의 한적한 라이브 카페에서 토요일이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그를 이루는 가장 무의미하지만 흥미로운 조각이라고 제럴드 루빈스타인은 생각했다. “어째서? 어둠의 마법 방어법 공부는 좀 덜 하셨나? 방금 ‘그놈의 부엉이 시험’에서 낙제는 없었다고 했잖아.” “아뇨, 최고 성적이었는데요. 그런데도 N.E.W.T 과정이 끝나도록 똑바로 된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하진 못했어요.” 남자, 패트릭 칸은 턱을 괴고 흑맥주를 홀짝이다가 그의 비어버린 맥주잔을 쳐다보았다. “더 시킬까요?” 제리는 그래 주면 고맙다고 답했다. 그들은 서로가 마법사인 줄 몰랐다. 제리 루빈스타인에게 패트릭 칸은 언제나 같은 날, 같은 시간이면 라이브 카페에 출근해 주로 ‘퀸’의..
[콘젬] 난파선에 관한 공상 온종일 날씨가 좋았다. 하늘이 높고 봄을 맞아 가지마다 앉은 잎은 푸르렀으며, 검은 호수의 비단결 같은 수면을 스치는 바람은 기분이 좋을 만큼 온화했다. 성탄절을 지나 봄이었다. 다음 주면 부활절이고, 아침 식사할 적에 일제히 날아온 부엉이 중엔 벌써 달걀 모양 초콜릿이 한가득 담긴 바구니를 부지런히 실어나르는 놈도 있었다. 올해로 열세 살이 된 제임스와는 언제나 무관한 일이었다. 호그와트에 앉아 있다 보면 그의 의지 같은 것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계절은 미지근하게 흘러만 갔고, 남아 있는 퀴디치 경기는 소진되어 갔다. 여름 방학에도 호그와트에 남아 있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호그와트는 그럴 땐 학교보단 출입을 엄금한 고성(古城)처럼 굴었다. 그는 이미 지난 두 해 동안 그리핀도르 사감 교..
[제리] 제리가 돌아왔다. 1. ‘제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늦여름 해 저물녘의 일입니다. 그 애가 끈을 단 카메라 하나 덜렁 메고 요크셔에 돌아온 것입니다. 저는 우리 부모님께서 오랫동안 운영하고 계신 약국에 앉아 깜빡깜빡 졸고 있었는데, 약국엘 자주 방문해주시는 노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그토록 심성 곱고 착했던 청년이 사라지기 직전보다 더 미쳐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우리 마을은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다져왔고 까닭에 보수적인 구석이 있어 마을 청년들의 옷매무새 하나하나에 혀를 차는 노인분들이 많다지만, 어르신들이 그 애가 미쳤다고 수군거린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약국 문을 닫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 애를 우연히 마주쳤고, 빛이 들기 시작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저마저 확신했습니다..
[누아다/리뉴얼] 달바흐 녹턴의 장례식 기묘한 장례식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설프게 빌려 입었던 검은 정장은 그의 기장보다 짧아 손목이 드러났고, 생전 안 하던 넥타이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으나 그것 때문에 드는 위화감은 아닐 거였다. 탐정 사무소에서 사무 정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꼭 6개월 되던 날에 날아든 부고였다. 그는 미안한 일이지만 고용주가 상을 당한 바람에 당분간 사무소가 문을 닫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고 소식을 듣고 제럴드 리퍼는 난처한 까닭에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기도 뭐하고 안 가기도 뭐 했다. 아일랜드에 있는 연줄이라곤 그놈의 탐정뿐인 것을 고려하면 얼굴 한번 비추는 게 낫겠지만, 글쎄, 누아다 녹턴과 자신이 그만큼 친분이 있느냐 하면 애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아다 녹턴은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다. 제럴드 리퍼라고 ..
[제리] Heathcliff-기사도와 용기, 만용, 그리고 불굴에 관하여 나는 간밤의 포화와 살육에 관하여 생각했고, 그러고 나니 날은 밝았다. 호숫가에 앉아 동이 터오는 새벽하늘을 고개 들어 쳐다보았다. 물은 탁하고 하늘은 말갛다. 가방에 넣어 왔던 담배는 떨어졌고, 머리칼을 다시 넘겨 묶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저 탁한 물결 위로 뜨는 해가 빚어놓은 붉은 물그림자를 말없이 쳐다보다가, 불현듯 물이 아닌 지평선이 보고 싶다고, 나는 숲이 지척이고 여름이면 해바라기가 피는 곳에서 왔노라는 뜻 모를 확신이 들었다. 하나만 묻자. 아즈카반에서는 말하는 법마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가까운 곳에 다른 죄수가 있다면 사정이 나았지만, 죽음이나 출소 등 수많은 요인이 내 주변을 텅 비워버리면 나는 도리 없이 혼자 말해야만 했다. 말씀하세요. 답하는 이는 이곳에서..
[제리/리뉴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탐정이 더블린 탐정 사무소를 비운 목요일 오후였다. 제럴드의 상사인 그 탐정의 친척이라는 남자는 사무소를 찾았고, ‘그 빌어먹게도 재수 없는’ 탐정은 일요일 오후에나 사건 의뢰를 마치고 아일랜드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거 안 됐네, 당신 친척 동생이라는 그 양반은 영국엘 갔어. 사람 찾는 수사 의뢰를 받았다고 했거든. 가는 김에 영국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좀 처리하고 온대.” 사무소 문간에 선 제럴드 리퍼는, 고해하자면 한가한 사무소를 지키며 연락책 업무라는 핑계로 한잠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깨어난 참이었다. 길러둔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묶고, 아즈카반에 예절마저 두고 온 사람처럼 손님 면전에 대고 하품을 토해내면서. “이런, 우리 가주님께서 계실 줄 알고 왔는데 아일랜드까지 헛걸음하게 될 줄은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