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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엘리엇] Tuatha dé Danann or not 워렌 루 프라이어가 퀴디치 출전 정지를 받았다. 후플푸프 휴게실엔 해일처럼 소란이 일었다. 전후 사정은 후플푸프의 자랑스런 추격꾼인 워렌의 의사와 무관하게 파도를 타고 번져나갔다. 소문엔 살이 붙기 일쑤였다. 그가 멱살을 잡고 협박한 슬리데린 추격꾼의 언행은 한층 험악해지는가 하면, 워렌이 그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때려눕혔다는 얼토당토않은 영웅담으로 둔갑해 있을 적도 많았다. 타인이 발치에 가져다 바치는 찬사를 걷어차고 좌중에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았지만, 거짓을 옹호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휴게실 소파에 널브러져 누워 나뒹구는 소문을 일일이 수선했다. “그 자식이 라이더의 부모님을 욕한 건 맞지만, 수위가 그 정도는 아니었어.”, “아, 자기야. 내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띄워주면 안 돼. 귀여운 워렌은..
[필네] 그 기만적인 언어 숲은 지척인데, 언덕에 누워 멀거니 쳐다만 보았다. 하늘은 발밑에 도사리고 숲은 위로 솟았다. 테오필 페러그린이 하늘을 향해 몸을 두고 누운 까닭에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겨우내 숲과 교정은 낙엽을 모두 벗었다. 단단하게 언 흙냄새와 진한 물 냄새가 났다. 날이 추워 그런지, 혹은 호그와트 고성이 전장이 된 까닭인지 오가는 이가 없었다. 저만치 금지된 숲 앞에 주인을 잃은 숲지기의 오두막 문이 열렸다 닫히는 풍경에 무의미한 시선을 두고, 테오필은 느릿한 숨을 내뱉었다. 테오필 페러그린은 10대 소년 시절에도 불리해지면 꼭 숲이 보이는 자리로 도망 오곤 했다. 퀴디치를 사랑한 그 무렵의 소년치곤 별나게도 하늘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멜러디 카터는 그에게 “넌 퀴디치를 해야 해.”, 그렇게 말했지만..
[달팡님 커미션/자캐 1차] 페루노브나 창 너머로 낙조가 졌다. 시침은 시계를 한 바퀴 돌았고, 거실 가득 석양이 밀려들고서야 라스카는 하루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파에 널브러져 고개를 늘어뜨렸다. 거꾸로 뒤집힌 세상을 보았다. 노을로 얼룩진 겨울 하늘은 붉은 바다와 같고, 구름은 파도처럼 흘렀다. 숨이 차가웠다. 이 계절에 러시아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면 얌전히 난방 기구를 트는 편이 좋았다. 냉골 같은 방에서 하얗게 얼어붙은 숨을 토하던 라스카는 어리석은 계산을 두드렸다. 난로에 들어가는 기름과 편의점에서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술 중에 무엇이 더 ‘합리적인’ 가격일까? 고인은 그가 매일매일 유산을 조각낸 다음, 기름보다도 술을 사는 일에 비용을 더 들이고 있음을 알면 화를 내고 속상해할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살아 있..
[슬램덩크 팬픽션] 우리는 십수 년을 모르는 사이로 살았다. ※ 고민을 좀 하다가 인명이 한국 이름인 까닭에 오키나와를 제주도로 로컬라이징 했습니다. 글 쓴 사람이 로컬라이징 이름을 좋아해서요. ※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슬램덩크 원작 이야기가 뒤섞여 있습니다. 퍼슬덩을 3번을 봤지만, 뭔가 대사를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기억력의 한계로.) ※ 산왕전에서 파김치가 되어서도 "내가 누구인가"를 강조하는 정대만과 또 막상 원작에선 자기 얘기를 하나도 하지 않은 송태섭의 관계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커플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편하게 봐주셔도 무방합니다…. ※ 어디까지나 쓴 사람의 캐해석이 기반입니다. 개인적인 캐해석. “빌어먹게 무겁네.” 어쩌면 송태섭이 무거운 게 아닐지도 몰랐다. 정대만마저 취한 것일 수도 있겠지. 벌써 자정을 넘었다. 거리마다 술..
[미헤일/리뉴얼 로그] 인류애에 관하여 “체레텔리 씨죠?” 학기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항은 부산스럽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커피와 우리가 마실 음료를 사 오겠다며 잠시 짐을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다. 니콜로즈는 앉아 있기 심심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쫓아 카페로 나섰고, 나는 움직이는 것이 성가셨던 까닭에 두 사람 몫의 짐을 지키고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나를 안다는 그는 나보다 조금 연상으로 보였다. 모르는 얼굴이었고, 목에 걸린 카메라와 손에 쥐고 있던 관광 서적을 보아 타지에서 온 여행객으로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을 한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네, 체레텔리입니다.” 멋쩍었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그럴듯한지 아직 익히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유학했고, 논문을 준비..
[미헤일/리뉴얼 로그] 불길은 솟는다. 1.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랜만에 만난 어린이 도서관 사서는 여전히 동그란 안경을 썼다. 그녀는 항상 스스로 재봉하여 만든 품이 넉넉한 원피스를 입었다. 캘리포니아는 여전했다. 해가 밝았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아직 도서관에서 근무한다는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로 따사로운 여름 해를 가렸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아무렇게나 누워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새 따위를 관찰하다가 산책하던 그녀와 마주쳤다. “많이 컸구나, 미샤.” 요즘 나를 만난 L.A의 어른들은 하나 같이 그런 빈말을 건넸다.―나는 니콜로즈보다 키가 자라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존슨 선생님.” 그래도 개중엔 그녀가 나았다. 존슨 선생님은 만나면 매번 가까운 편의점에서 순순히 콜라를 한 캔 사주셨으니까.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사담을 나누었다. 커다란..
[미헤일/0차 과제] 사랑하는 혁명가여, 만수무강하소서. 눈을 뜨니 저물녘이었다. 마구잡이로 펼쳐놓은 책장 위로 붉은 석양이 비쳤다. 고개를 드니 종이 낱장이 뺨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비가 그친 것 같았다. 창 너머로 먹구름 군데군데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들었다. 미헤일 체레텔리-통칭 ‘미샤’-는 잠에서 덜 깬 눈을 하고 한참을 물기 어린 창 너머 낙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숙제하다 도서관에서 엎어져 잠이 들다니, 어른스러운 11살다운 일이 아니다.-그는 스스로가 11살치고 어른이라고 믿었다.- 뭐가 됐든 오늘 안에는 한 바닥 정도 요약해 써내고 싶었다. 프로메테우스에 관하여. 근데 이거 나한테만 너무 불리한 숙제가 아닌가? 손을 뻗어 아무 책이나 앞으로 끌어왔다. 미샤는 도서검색대에서 프로메테우스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했고, 화면에는 영문 모를 책 제..
[미헤일/STORY]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줘 미헤일 체레텔리는 근래 수많은 실패를 쌓았다. 날이 무더웠다. 어딜 가든 그려 내도 좋을 남태평양이 뻗어 있었으나, 그는 단 한 장도 그리지 못했다. 엉망진창으로 종이를 찢어 교내에 있는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 버렸다. 학교로 돌아오니 동기들이 모여 있던 강당이 소란스러웠다. 실없는 말을 한다. 그것이 미헤일 체레텔리의 발전이다. 그는 남들보다 솔직했지만, 사람일진대 페르소나 한 장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나 하고, 별일 없었던 것처럼 군다. 놀랍게도, 말끝마다 재수 없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미헤일 체레텔리조차. 저녁을 챙겼다.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사지를 두고 누웠다. 화구를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벽마다 나붙은 그림이 창작자를 짓누른다. 그러게 되도 않을 풍경화 따위를 그리고..
[미헤일/리뉴얼 로그] 그 어떤 재난이 인류를 덮칠지라도 마천루는 높고 도시 틈새로 여름꽃은 만발했다. 리케이온이 있는 섬으로 돌아가려면 2주가 남았다. 해변엔 사람이 많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람 구경하기가 좋았다. 방학엔 남다 못해 헛돌기까지 하는 게 시간이다. 붓을 들었다가, 조각칼로 깎아내다가, 나도 사람일진대 그렇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부산스러운 식당을 빠져나왔다. 충동적으로 바닷가엘 왔다. 우연히 한 자리가 남은 카페에 냅다 자리를 잡고 앉아 선데 아이스크림 하나를 시켰고, 가게가 드리운 차양 아래에서 후덥지근한 무더위를 헤치고 씩씩하게 공을 던지며 노는 사람들을 두 눈에 담았다. 날씨가 좋았다. 내 고향은 늘 그렇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누가 물으면 태양은 타오르고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왔노라고..
[라이언] Happy new year, My dear world. R은 세상은 중심이 없이 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았다. 지구는 태양을 한가운데에 두고 공전했다. 태양은 또 은하를, 은하는 거대한 은하단, 우주의 개념에서 내려다보자면 에든버러 교외에 있던 공원이 불탄 일 같은 것은 어떤 의미로도 중심일 수가 없는 일이다. 이름 없는 오러가 사람을 죽여도 해는 저문다. 무명의 기사단원이 오러 사무국에서 7년을 버틴 오러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냅다 “인센디오,”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달은 하늘을 주행한다. R은 무사했다. 그를 책임져야 했던 넉 살 연상의 오러는 등에 커다란 화상을 입었지만, R은 어깨를 깊이 패고 들어간 자상(刺傷) 하나가 다였다. 숙소에 돌아와 천장을 바라보았다. 연쇄살인범을 잡으러 일주일을 뛰어다녀도 지치는 체력은 아니라고 자부했..